[신문과 놀자!/인문학으로 세상 읽기]11세 아들 잃은 슬픔에서 희곡 ‘햄릿’이 나왔다

4 hours ago 2

죽은 아들의 이름으로 쓴 비극
“사느냐 죽느냐…” 명대사 속엔
가족 잃은 고통 절절히 묻어나
서로 보듬고 기대며 이겨내길

영국의 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인생을 다룬 영화 ‘햄넷’의 한 장면. 유니버설픽처스 제공

영국의 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인생을 다룬 영화 ‘햄넷’의 한 장면. 유니버설픽처스 제공
몇 년 전 제자들과 4시간에 걸쳐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햄릿’ 전문을 낭독했습니다. 학생들은 희곡을 다 읽고 햄릿 왕자가 우유부단하다고 하는 세간의 평에 반박했습니다. 특히 아버지를 죽인 왕이 기도하는 틈에 그를 죽일까 하다가 “지금 기도 중인데, 그래 지금 할 거야. (사이) 그럼 놈이 천당 간다. … 악당이 내 아버질 죽였는데 그 대가로 유일한 아들인 내가, 바로 그 악당놈을 천당으로 보낸다”, “아서라 칼아, 더 끔찍한 상황을 만나자”라고 읊는 부분에서는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게 아니라 복수를 위해 참는 자의 극심한 분노를 느꼈다고 했습니다. 휘장 뒤에 숨은 폴로니어스(연인의 아버지)를 죽인 뒤에 바로 어머니에게 독설을 날리는 햄릿의 모습은 슬픔에 휩싸여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불덩이 같다고 했고요. ‘처절한 슬픔을 죽음으로 끝내는 비극이었다’는 결론을 내리면서, 1600년대 쓰인 작품이 지금까지 공연되는 이유에 대해 한참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런데 그 해답을 얼마 전 찾게 됐습니다.

● 셰익스피어 인생을 다룬 소설 햄닛, 영화 햄넷

셰익스피어의 인생을 다룬 ‘Hamnet’이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이는 매기 오페럴의 소설을 클로이 자오 감독이 동명의 영화로 제작한 것인데, 우리나라에서 소설은 ‘햄닛’으로 영화는 ‘햄넷’으로 번역됐습니다.

그런데 영화 시작에 이런 정보가 나옵니다. “햄닛과 햄릿은 사실 같은 이름이다.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초 스트랫퍼드의 기록 문서에서는 보통 혼용됐다.” 결국 희곡 ‘햄릿’과 같은 이름이었던 거죠. 셰익스피어는 세 명의 아이들(큰딸 수재나, 쌍둥이 남매 햄닛과 주디스)이 있었는데 남자아이 햄넷(햄닛)이 열한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고, 4년 정도 지난 뒤 희곡 ‘햄릿’이 세상에 나왔다는 사실이 ‘Hamnet’의 출발점입니다.

영화의 중반 이후부터 누구보다 사랑스럽고 건강했던 아들을 잃은 부부의 아픔이 중심을 이룹니다. 아들이 죽어갈 때 병약한 딸 주디스에게 온통 정신이 팔렸던 셰익스피어의 아내는 런던에서 급히 돌아온 셰익스피어에게 ‘당신은 어디 있었냐’며 힐난합니다. 당신이 있었더라면 두 명을 돌볼 수 있었을 것이라는 원망, 아이가 떠나는 순간 부재했던 남편에 대한 미움, 집 안에서 아들을 놓쳐버린 스스로에 대한 분노가 집약된 질문입니다.

아내가 처절하게 슬픔의 독 속에 갇혀 있을 때 셰익스피어는 혼심을 다해 아들을 위한 극을 씁니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같은 아픔을 겪는 중이었던 거죠.

●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유명한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대사 뒤에 “누가 이 세상의 채찍과 비웃음, 압제자의 잘못, 잘난 자의 불손, 경멸받는 사람의 고통, 법률의 늑장, 관리들의 무례함, 참을성 있는 양반들이 쓸모없는 자들에게 당하는 발길질을 견딜 건가? 단 한 자루 단검이면 자신을 청산할 수 있을진대, 누가 짐을 지고, 지겨운 한 세상을 투덜대며 땀 흘릴까”라는 문장을 처절하게 외치는 셰익스피어의 모습은 죽음의 유혹을 이겨가며 절망을 쏟아내는 명장면이었습니다. 죽음 뒤에 어떤 잠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고, 그 잠의 꿈속에서 아들의 부재를 느끼는 영원한 고통이 기다릴지도 모르니, 이 끔찍한 현실을 마주하겠다는 다짐이었습니다.

가족을 잃은 슬픔은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가장 극심한 고통입니다. 그러나 부모든 연인이든, 심지어 자녀까지 잃을 수 있는 게 인생입니다. 언제나 당연하게 생각했던 아이들의 북적이는 소리, 웃음소리가 언제든 거둬질 수 있는 것임을 명심하라는 영화의 대사는 섬찟한 가르침을 줍니다.

마음을 도려내는 듯 아픈 고통을 겪으면서 왜 살아야 하냐고 묻고 싶을 때, ‘햄릿’은 처방전을 줍니다. 비극을 보고 실껏 울고, 슬픔을 온몸으로 만나 처절하게 죽어간 주인공들을 보며, 이제는 살아야겠다 생각해 보라고요. 공연을 본 공동체가 함께 울고, 손을 뻗어 위로했던 손길을 잊지 말라고요.

우리는 비극을 보며 고통, 상실, 그리움, 허망, 자책 등을 마주합니다. 극이 끝나고 주인공들이 떠난 자리에 현실이 돌아오고 우리는 다시 살아갑니다. ‘외로운 황홀한 심사’를 만난 뒤 ‘산새처럼 날아간’ 사랑하는 이들을 떠올리면서요.

조현정 세종과학고 교사

©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