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아들의 이름으로 쓴 비극
“사느냐 죽느냐…” 명대사 속엔
가족 잃은 고통 절절히 묻어나
서로 보듬고 기대며 이겨내길
● 셰익스피어 인생을 다룬 소설 햄닛, 영화 햄넷
셰익스피어의 인생을 다룬 ‘Hamnet’이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이는 매기 오페럴의 소설을 클로이 자오 감독이 동명의 영화로 제작한 것인데, 우리나라에서 소설은 ‘햄닛’으로 영화는 ‘햄넷’으로 번역됐습니다.
그런데 영화 시작에 이런 정보가 나옵니다. “햄닛과 햄릿은 사실 같은 이름이다.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초 스트랫퍼드의 기록 문서에서는 보통 혼용됐다.” 결국 희곡 ‘햄릿’과 같은 이름이었던 거죠. 셰익스피어는 세 명의 아이들(큰딸 수재나, 쌍둥이 남매 햄닛과 주디스)이 있었는데 남자아이 햄넷(햄닛)이 열한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고, 4년 정도 지난 뒤 희곡 ‘햄릿’이 세상에 나왔다는 사실이 ‘Hamnet’의 출발점입니다.영화의 중반 이후부터 누구보다 사랑스럽고 건강했던 아들을 잃은 부부의 아픔이 중심을 이룹니다. 아들이 죽어갈 때 병약한 딸 주디스에게 온통 정신이 팔렸던 셰익스피어의 아내는 런던에서 급히 돌아온 셰익스피어에게 ‘당신은 어디 있었냐’며 힐난합니다. 당신이 있었더라면 두 명을 돌볼 수 있었을 것이라는 원망, 아이가 떠나는 순간 부재했던 남편에 대한 미움, 집 안에서 아들을 놓쳐버린 스스로에 대한 분노가 집약된 질문입니다.
아내가 처절하게 슬픔의 독 속에 갇혀 있을 때 셰익스피어는 혼심을 다해 아들을 위한 극을 씁니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같은 아픔을 겪는 중이었던 거죠.
●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유명한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대사 뒤에 “누가 이 세상의 채찍과 비웃음, 압제자의 잘못, 잘난 자의 불손, 경멸받는 사람의 고통, 법률의 늑장, 관리들의 무례함, 참을성 있는 양반들이 쓸모없는 자들에게 당하는 발길질을 견딜 건가? 단 한 자루 단검이면 자신을 청산할 수 있을진대, 누가 짐을 지고, 지겨운 한 세상을 투덜대며 땀 흘릴까”라는 문장을 처절하게 외치는 셰익스피어의 모습은 죽음의 유혹을 이겨가며 절망을 쏟아내는 명장면이었습니다. 죽음 뒤에 어떤 잠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고, 그 잠의 꿈속에서 아들의 부재를 느끼는 영원한 고통이 기다릴지도 모르니, 이 끔찍한 현실을 마주하겠다는 다짐이었습니다.가족을 잃은 슬픔은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가장 극심한 고통입니다. 그러나 부모든 연인이든, 심지어 자녀까지 잃을 수 있는 게 인생입니다. 언제나 당연하게 생각했던 아이들의 북적이는 소리, 웃음소리가 언제든 거둬질 수 있는 것임을 명심하라는 영화의 대사는 섬찟한 가르침을 줍니다.
마음을 도려내는 듯 아픈 고통을 겪으면서 왜 살아야 하냐고 묻고 싶을 때, ‘햄릿’은 처방전을 줍니다. 비극을 보고 실껏 울고, 슬픔을 온몸으로 만나 처절하게 죽어간 주인공들을 보며, 이제는 살아야겠다 생각해 보라고요. 공연을 본 공동체가 함께 울고, 손을 뻗어 위로했던 손길을 잊지 말라고요.
우리는 비극을 보며 고통, 상실, 그리움, 허망, 자책 등을 마주합니다. 극이 끝나고 주인공들이 떠난 자리에 현실이 돌아오고 우리는 다시 살아갑니다. ‘외로운 황홀한 심사’를 만난 뒤 ‘산새처럼 날아간’ 사랑하는 이들을 떠올리면서요.
조현정 세종과학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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