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놀자!/이야기로 배우는 쉬운 경제]자회사 지배하는 지주회사… 구글 위에는 ‘알파벳’

3 hours ago 4

자회사 주식 소유하며 그룹 관리
여러 회사 하나로 묶어 운영 가능
경제력 집중되며 규제 대상되기도
韓, 지주회사 만들기 불법이었지만 IMF 이후 금융-산업 분리해 설립

게티이미지코리아

게티이미지코리아
‘서학개미’라는 신조어가 등장할 정도로 국내 투자자들의 해외 주식 투자 열기가 뜨겁습니다. 저도 호기심에 ‘구글’ 주식을 사 보려고 검색했습니다. 그런데 의외의 결과가 나왔습니다. 구글 대신 ‘알파벳’이라는 낯선 이름의 회사가 나타났습니다. 그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아는 구글은 검색엔진과 유튜브 같은 서비스를 운영하는 자회사이고, 그 위에 구글을 거느린 지주회사 ‘알파벳’이 따로 존재한다는 사실을요.

최근 상법 개정 이후 일부 지주회사 주가가 올랐습니다. 주주 이익을 지키라는 압력이 커지면서 경영진 책임은 한층 무거워집니다. 그만큼 지배구조 개선에 적극적인 지주회사가 앞으로 유망한 투자처로 떠오를 것이라는 기대감이 반영된 것입니다.

● 지주회사의 ‘조상’은 19세기 후반 미국 기업들

오늘은 지주회사가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한자부터 알아볼까요. 가질 지(持), 나무 주(株)를 씁니다. ‘지’는 ‘보유하다’라는 의미이고, ‘주’는 주식의 준말입니다. ‘지주(持株)’란 글자 그대로 주식을 갖고 있다는 뜻입니다. 영어로는 ‘홀딩 컴퍼니(Holding Company)’라고 하지요.

직접 물건을 만들거나 서비스를 판매하기보다는, 자회사 주식을 보유하며 그룹을 지배하는 것을 본업으로 합니다. 한국에는 LG, SK, CJ 같은 굵직한 그룹이 이미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했고, 금융권에서는 KB금융지주, 신한금융지주 등이 있습니다. 법적으로는 ‘공정거래법’에서 지주회사를 ‘다른 회사의 주식을 소유함으로써 그 회사를 지배하는 것을 주된 사업으로 하는 회사’라고 정의합니다. 즉 지주회사는 기업 집단을 한데 묶어 관리하는 ‘큰 뿌리’와 같은 존재입니다.

지주회사의 기원은 산업화 시기 미국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19세기 후반 미국은 산업혁명으로 눈부시게 커지고 있었습니다. 철도 회사는 수천 km 철로를 뻗어 여러 주(州)를 오갔고, 통신업체는 전신선을 촘촘히 깔며 거대한 네트워크를 만들고 있었지요. 그런데 회사가 많아지고 지역도 넓어지다 보니 각각의 회사를 따로따로 운영하기엔 비효율이 너무 커졌습니다. “어떻게 하면 여러 회사를 하나로 묶어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 끝에 나온 해법이 바로 ‘홀딩 컴퍼니’, 즉 지주회사였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1890년대 뉴저지주는 기업들이 자회사 주식을 사들여 지배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법률을 제정했습니다. 제너럴 모터스(General Motors)가 초기 자동차 회사들을 인수·지배하면서 여러 회사를 한 기업 그룹 아래 묶는 지주회사 형태를 취한 사례도 있습니다. 이처럼 지주회사는 단순한 소유·지분 보유를 넘어, 여러 회사의 경영을 묶고 조율하기 위한 조직 구조로서 제도화되었습니다.● 투명한 기업 구조가 경제 성장의 뿌리

지주회사가 처음 생겨났을 때부터 사람들은 “이거 독점 아니야?” 하는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당시 새로 만들어진 법은 “다른 회사를 지배하려면 그 회사의 주식을 사들이면 된다”는 방식을 합법적으로 열어 주었고 굵직한 기업들이 주식을 사 모으며 경쟁사를 하나둘 손아귀에 넣기 시작했습니다. 1901년 금융 사업가 JP 모건은 카네기 철강을 비롯한 여러 회사를 한데 묶어 당시 최대 규모인 ‘US스틸’을 만들었습니다.

석유 산업의 거인 존 D 록펠러도 ‘스탠더드 오일’을 설립해 시장을 사실상 장악하다가 결국 1911년 법원 판결로 회사를 여러 개로 쪼개야 했습니다. 이렇게 지주회사는 기업을 키우는 강력한 도구였지만, 다른 한편으론 경제력 집중 상징으로 비판을 받으며 규제 대상이 되었습니다.

1929년 대공황은 미국 경제 약점을 그대로 드러낸 사건이었습니다. 은행들이 산업자본과 얽혀 무리한 대출을 해 주거나, 증권시장에 직접 뛰어들면서 위험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진 것이지요. 결국 금융 시스템 전체가 흔들리자, 정부는 ‘이제 금융과 산업은 선을 그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그 결과 1933년 글래스-스티걸법이 제정돼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이 분리됐고, 예금보험 제도가 도입되었습니다. 대공황은 지주회사가 무한히 확장할 수 없도록 국가가 제도적으로 제한해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 계기였습니다.

한국에서는 한동안 지주회사가 재벌의 힘을 더 키우는 도구가 될 거라는 걱정이 컸습니다. 그래서 공정거래법으로 지주회사 설립을 아예 막아 두었지요.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기업 구조조정이 시급했고, 글로벌 경쟁에서도 뒤처지지 않으려면 새로운 틀이 필요했습니다. 그때 비로소 지주회사 제도가 도입됐고, 동시에 ‘금융’과 ‘산업’을 철저히 구분하는 금산분리 원칙도 함께 자리 잡았습니다. 금융 시스템이 산업의 사금고로 이용되는 것을 막으면서, 금융 시스템 안정성을 지키려는 조치였습니다.

이후 국내 지주회사는 두 갈래로 나뉘게 됩니다. LG·SK·CJ처럼 제조와 서비스를 묶은 일반 지주회사, 그리고 KB금융·신한금융처럼 은행·보험·증권을 묶은 금융 지주회사가 그것입니다. 일반 지주회사가 금융사를 거느릴 수 없고, 금융 지주회사가 비금융 회사를 소유할 수 없는 이유도 바로 이 원칙 때문입니다.

지주회사는 기업을 키우는 든든한 뿌리이기도 하지만 잘못 운영되면 경제력 집중과 불투명성의 상징이 될 수도 있습니다. 앞으로는 기업 지배구조를 더욱 투명하게 해 회사가 성장하면서도 소액주주에게 공정하게 이익이 돌아가는 길을 열어가야 합니다.

이철욱 방산고 교사

©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