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모자’로 시즌 시작한 섬 소녀들의 반란…“LPGA 투어 첫 우승 해냈다”

5 days ago 12

LPGA 투어 ‘2인 1조’ 경기 다우 챔피언십서 첫 우승
작년 루키로 데뷔했지만 예상 외 저조한 성적
메인 후원사 없이 2025시즌 시작
임진희는 무명→한국 다승왕 오른 ‘노력의 아이콘’
“미국서 살아남겠다”던 이소미, 시즌 중에도 체력 훈련
“美 무대 선배님들 보며 꿈 키워…이제 우리도 챔피언”

  • 등록 2025-07-01 오전 12:00:00

    수정 2025-07-01 오전 12:00:00

[이데일리 스타in 주미희 기자] 올해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2년 차가 된 임진희, 이소미는 시즌을 시작하고도 메인 후원사를 구하지 못하고 있었다. 임진희는 기존 후원사였던 안강건설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후원이 끊겼고, 이소미도 대방건설과 재계약을 이루지 못했다.

임진희(왼쪽)와 이소미가 30일 미국 미시간주 미들랜드의 미들랜드 컨트리클럽에서 열린 LPGA 투어 다우 챔피언십 최종 4라운드에서 우승을 차지한 뒤 트로피를 들고 환하게 미소짓고 있다.(사진=AFPBBNews)

결국 임진희는 용품사 타이틀리스트 모자를 썼고 이소미는 모자 정면에 로고가 없는 ‘빈 모자’로 시즌을 시작했다. 모자 정면의 후원사 로고는 프로 선수들의 자존심이다. 임진희는 시즌 개막 후인 올해 4월 신한금융그룹과 후원 계약을 맺었지만 이소미는 여전히 메인 후원사가 없다.

그런 임진희와 이소미가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2인 1조’ 팀 경기 다우 챔피언십(총상금 330만 달러)에서 마침내 첫 우승을 합작했다. 이들은 30일(한국시간) 미국 미시간주 미들랜드의 미들랜드 컨트리클럽(파70)에서 끝난 대회 최종 4라운드까지 합계 20언더파 260타를 기록해 우승했다.

렉시 톰슨·메건 캉(이상 미국) 조와 연장전을 치른 임진희·이소미는 연장 첫 홀인 18번홀(파3)에서 버디를 잡아 미국 무대 첫 우승을 확정했다. 임진희가 먼저 3m 버디 퍼트를 집어넣었고, 더 짧은 버디 기회를 남긴 캉의 버디 퍼트가 홀을 외면하면서 희비가 엇갈렸다.

“죽어도 한국에 돌아가지 않겠다”…무기는 성실함

임진희와 이소미는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정상급 선수들이었다. 임진희가 통산 6승, 이소미가 5승을 거뒀다.

지난해 나란히 LPGA 투어에 진출했는데 예상보다 적응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소미는 지난 시즌 LPGA 투어 27개 대회에서 ‘톱10’을 한 번밖에 기록하지 못할 정도로 고전했다. 임진희는 24개 대회에서 준우승 1번을 기록했지만, KLPGA 투어에서 활동할 때와 비교하면 초라한 성적이다.

이들은 경기 불황과 기대 이하의 성적이 겹쳐 후원사가 없는 상황에서 시즌을 맞았다. 하지만 속상함도 잠시, LPGA 투어 첫 우승을 향해 연습에 매진했다.

임진희는 KLPGA 투어에서 뛰던 때부터 ‘노력의 아이콘’이었다. 2016년 프로로 데뷔해 5년 동안 무명으로 지내다가 2021년 KLPGA 투어 BC카드·한경 레이디스컵에서 생애 첫 우승을 거뒀다. 2023년엔 시즌 4승을 거두며 KLPGA 투어 다승왕까지 차지했고, LPGA 투어 퀄리파잉 시리즈를 거쳐 미국에 진출해 신인상 랭킹 2위를 기록했다.

한국에서 활동할 때는 스마트폰도 없이 생활하며 훈련에만 집중했다. 임진희의 성실함을 눈여겨본 신한금융그룹 측이 남자 선수만 후원해 온 기존 방침을 바꿔 4월부터 임진희를 후원했다.

이소미는 골프 환경이 열악한 전라남도 완도 출신이다. 어린 시절 오래된 연습장에서 스윙을 다듬고 백사장 모래를 벙커 삼아 샷 연습을 하면서 실력을 갈고 닦았다. 이소미는 우승 후 인터뷰에서 “우리 둘 다 지난해 힘든 루키 시즌을 보냈기에 이번 우승이 너무 행복하다”고 말했다. 특히 이소미는 극심한 스트레스에 포기하려는 마음을 먹기도 했다. 하지만 ‘절대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겠다’, ‘죽어도 미국에서 죽겠다’는 굳은 각오로 이를 악 물었다.

이소미는 전지훈련 기간 부족한 샷과 체력 훈련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그는 △오전 체력 훈련·쇼트게임 각 2시간 △오후 18홀 연습 라운드 △저녁 달리기·보충 운동을 반복했다. 시즌을 시작하고는 운동과 훈련 강도를 더 높였고 루틴을 충실하게 지켰다. 시즌 중에도 개인 트레이너와 꾸준하게 체력 훈련을 한 결과 LPGA 투어 첫 우승이라는 달콤한 열매를 맺었다.

LPGA 투어 50·51번째 한국인 챔피언 등극

제주도 출신인 임진희와 완도 출신인 이소미는 섬에서 태어났다는 뜻에서 팀명을 ‘BTI’(본 투 비 아일랜드, Born To be Island)로 지었다. 이소미가 임진희에게 동반 출전을 제안했다. LPGA 투어 첫 우승을 합작한 이들은 올해 김아림(2월 힐튼 그랜드 베케이션스 토너먼트 오브 챔피언스), 김효주(3월 포드 챔피언십), 유해란(5월 블랙 데저트 챔피언십)에 이어 4번째 한국인 우승자가 됐다.

뿐만 아니라 LPGA 투어 역대 한국 국적의 챔피언 명단에 50, 51번째로 이름을 올렸다. 한국인 첫 LPGA 투어 우승은 1988년 3월 고(故) 구옥희 전 KLPGA 협회장이 스탠더드 레지스터에서 달성했다. 이후 박세리가 1998년 US 여자오픈 메이저 대회에서 2차례 우승하며 본격적인 한국 선수 LPGA 투어 선봉장이 됐다.

2021년 10월 부산에서 열린 BMW 레이디스 챔피언십에선 고진영이 우승하면서 한국 국적 선수 통산 LPGA 투어 200번째 금자탑을 세웠다. 이후 유해란이 49번째 한국인 우승자가 됐고 임진희와 이소미가 동시에 50호 챔피언 고지를 밟았다. LPGA 투어 무대에서 한국 선수들의 통산 우승 횟수는 217승으로 늘었다. LPGA 투어 무대에서 한국 선수들의 통산 우승 횟수는 217승으로 늘었다.

이소미는 “LPGA 투어에서 뛰는 한국 선수들의 경기를 많이 봤고 꿈을 꿨다. 이제는 제가 LPGA 투어에 진출해 마침내 첫 우승을 해냈다“고 말하며 크게 기뻐했다.

임진희(왼쪽)와 이소미가 30일 미국 미시간주 미들랜드의 미들랜드 컨트리클럽에서 열린 LPGA 투어 다우 챔피언십 최종 4라운드 5번홀에서 버디를 넣은 뒤 기뻐하고 있다.(사진=AFPBBNews)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