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상호무역' 서명 … 무역전쟁 전선 대폭 확대
韓 화평법·법률시장 등 타깃
美기업 걸림돌 폐기 압박할 듯
한미FTA 재협상 요구할 수도
트럼프, 연설중 韓 두차례 언급
정부, 4월까지 대책 마련해야
에너지·반도체 장비 수입 거론
◆ 관세전쟁 확전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서명한 '상호무역과 관세(Reciprocal Trade and Tariffs)' 메모랜덤(각서)은 관세전쟁의 전선을 특정 산업과 품목에 국한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교역·환율 정책, 규제 등 비관세 장벽으로 확대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특히 "수년간 미국은 우방국과 적국 모두의 무역 파트너로부터 불공정한 대우를 받아왔다"며 "우리 노동자와 산업은 불공정 관행과 해외 시장 접근 제한의 피해를 입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안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한국을 두 차례나 직접 거론했다.
홍지상 국제무역통상연구원 동향분석실장은 "당초 우려했던 보편관세 시나리오보다는 상황이 조금 완화됐지만 예측이 쉽지 않은 비관세 장벽이 부각되면서 향후 상황을 예단하기가 어렵게 됐다"고 진단했다.
미국 정부는 미국 기업의 한국 시장 진출에 장애가 됐던 각종 정책을 폐기하라고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표적인 것이 한국의 '플랫폼공정경쟁촉진법'(플랫폼법)이다. 이 법은 거대 온라인 플랫폼 기업들의 반경쟁행위를 차단하자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미국 상공회의소 등은 이 법이 중국 기업은 건드리지 않으면서 애플과 구글, 아마존, 메타 등 미국 기업을 규제할 것이라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한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면서 관세·통상 압박에 나설 가능성도 거론된다. 미국 정부는 비관세 장벽 중 하나로 환율 정책을 살펴보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트럼프 정부 1기 당시인 2019년 8월에도 미국은 중국을 25년 만에 환율조작국으로 전격 지정하며 무역전쟁에 불을 붙였다. 한국은 2023년 관찰대상국 리스트에서 빠졌다가 지난해 11월 다시 지정됐다.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되면 대미 수출은 타격을 입게 된다. 고율 관세 부과의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아울러 국가신용등급과 외국인의 국내 투자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미국 무역당국이 줄기차게 요구해온 한국의 농축산 시장 추가 개방도 다시 거론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매년 국가별 무역장벽보고서(NTE)를 발간하는데, 한국의 30개월 미만 소고기 수입 월령 제한 조치와 블루베리, 체리, 사과 등 농산물에 대한 시장 진입 제한 조치 등을 문제 삼아왔다.
투자 시장 개방에 대한 요구도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법률 시장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무역장벽보고서에서 미국 무역당국은 외국 로펌의 소유 지분을 49% 이하로 제한하고, 업무 범위에 제한을 두는 것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해당 보고서에서는 육류도매업과 지상파방송, 전력, 간행물 발간 등과 관련된 투자 제한도 문제 삼았다. 조성대 한국무역협회 통상연구실장은 "한국과 미국은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으로 관세가 거의 없기 때문에 비관세 장벽을 들여다보겠다는 미국의 발표는 우리에게 압박이 크다"며 "4월 1일까지 미국 행정부의 조사가 진행되기 때문에 그 전까지 비관세 무역 장벽에 대한 정부 차원의 상당한 논의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통상 전문가들은 다만 미국이 세계 각국에 미국이 원하는 카드를 제시하는 데 필요한 시간을 준 것으로 평가한다. 트럼프 1기 행정부 때도 미국 정부는 전 세계를 대상으로 무역 압박을 하면서 각국과 개별 양자협상을 진행하는 과정을 통해 긴장 수위를 낮췄다.
미국산 에너지 수입 확대는 한국이 제시할 수 있는 대표적인 협상 카드로 꼽힌다. 액화천연가스(LNG)의 경우 계약이 종료됐거나 종료되는 물량을 미국산으로 돌릴 수 있다는 판단이다. 한국가스공사가 체결한 LNG 장기 계약 중 지난해 종료된 물량은 총 898만t이다. 카타르산 492만t, 오만산 406만t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 중에 올해부터 신규 도입 계약을 체결한 물량 358만t을 제외하면 540만t의 수입 여력이 생긴다.
에너지 부문 외에 반도체 장비 등도 대미 수입액을 늘릴 수 있는 품목으로 꼽힌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구축이 본격화되면 반도체 업체들의 미국산 장비 구매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농산물 시장 개방과 같은 과감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조언이 나왔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은 무역 흑자를 내는 나라들을 공격 대상으로 보는데, 그와 맞물려 한미 FTA까지 재협상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며 "이상기온으로 농산물 가격이 많이 올라 우리나라도 어느 정도의 시장 개방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FTA 협상 카드로 농산물 분야를 활용하는 방안을 고려해볼 만하다"고 조언했다.
[유준호 기자 / 문지웅 기자 / 워싱턴 최승진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