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사는 50대 A 씨는 얼마 전 보이스피싱 조직에게 속아 예금 8000만 원을 송금하기 직전이던 아버지를 가까스로 막았다. 놀란 아버지는 “이제는 내가 돈을 관리할 자신이 없다”며 예금 전부를 아들 명의 통장으로 옮겨 관리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후 생활비는 아들이 필요할 때마다 송금하거나 체크카드로 결제하는 방식으로 생활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아들 통장에 들어 있는 8000만 원은 누구의 돈일까. 자녀 통장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아들의 재산이 되는 걸까, 아니면 형제들과 나눠야 할 상속재산일까.보이스피싱 피해를 우려해 고령 부모가 자녀 명의 계좌에 돈을 맡겨 관리하는 사례가 늘면서, 부모 사망 이후 이 돈의 법적 성격을 둘러싼 상속 분쟁도 적지 않게 발생하고 있다.
● 자녀 통장에 있어도 부모 재산일 수 있다
이승환 변호사(법무법인 효민)는 “자녀 명의 통장에 돈이 들어 있다는 사실만으로 곧바로 자녀의 재산이 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부모가 단순히 보관이나 관리 목적으로 돈을 맡긴 것이라면 예금의 실질적인 소유자는 여전히 부모에게 있다. 이 경우 부모가 사망하면 해당 돈은 상속재산으로 봐야 한다.반대로 부모가 생전에 “이 돈은 네가 가져라”는 의사로 증여했다면 해당 돈은 자녀의 고유재산이 돼 상속재산에 포함되지 않는다.문제는 실제 분쟁에서는 이를 구별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이 변호사는 “증여 사실을 뒷받침할 명확한 증거가 없다면 부모와 자녀 사이의 내부 법률관계를 종합적으로 판단하게 된다”며 “증여를 주장하는 자녀가 그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부모가 통장이나 인감, OTP를 계속 관리했는지, 자금을 실제로 누가 사용했는지, 부모가 거래를 실질적으로 지배했는지 등이 중요한 판단 요소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 문자·카카오톡도 중요한 증거…형제간 상속분쟁으로 번질 수도실무에서는 다양한 자료가 판단 근거가 된다.
이 변호사는 “문자메시지와 카카오톡 대화, 녹취, 메모는 물론 통장 거래내역, 자금 사용처, 이체 시점과 규모, 사망 직전 집중적으로 돈이 이동한 정황 등도 모두 종합적으로 살펴본다”고 말했다.
결국 “잠시 맡아 달라”는 취지였는지, “네가 써라”며 증여한 것인지를 객관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자료가 분쟁의 핵심이 된다.
이 변호사는 이런 유형이 상속재산 분할이나 유류분 분쟁에서 상당히 빈번하게 발생한다고 설명했다.특정 자녀 명의 통장으로 부모의 돈이 옮겨져 있으면 다른 형제들이 “부모 돈을 임의로 가져간 것 아니냐”고 문제를 제기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결국 자금의 성격을 둘러싼 다툼이 상속 분쟁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 분쟁 막으려면 ‘기록’을 남겨야
부모의 재산을 대신 관리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사후 분쟁을 예방할 장치를 미리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변호사는 “보관이나 관리 목적으로 자금을 맡긴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문서나 문자 등을 남겨두는 것이 좋다”며 “전용 관리계좌를 만들어 사용 범위를 명확히 하고 월별 사용 내역을 정리해 두면 향후 분쟁 예방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이어 “고령으로 재산관리가 어려운 경우에는 성년후견제도를 활용하는 것도 사후 분쟁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 팩트필터|부모 돈을 대신 관리한다면
·자녀 통장에 있다고 모두 자녀 재산이 되는 것은 아니다.
→ 실제 소유관계와 부모의 의사가 중요하다.
·‘보관’과 ‘증여’는 법적으로 다르다.
→ 증여를 주장하는 사람에게 입증책임이 있다.
·문자·카카오톡·녹취도 중요한 증거가 된다.
→ 통장 거래내역과 자금 사용처도 함께 살핀다.
·부모 돈을 대신 관리한다면 전용 관리계좌를 활용하는 것이 좋다.
→ 사용 목적과 범위를 남겨두면 분쟁 예방에 도움이 된다.
·형제간 상속 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
→ 관리 사실과 부모의 의사를 기록으로 남겨두는 것이 안전하다.
상속리포트 >
이런 구독물도 추천합니다!
-
박연준의 토요일은 시가 좋아
-
오늘과 내일
-
딥다이브
최현정 기자 phoebe@donga.com
©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좋아요 0개
- 슬퍼요 0개
- 화나요 0개

1 week ago
7















English (U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