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집만 봐도 벌벌… ‘유추 감정’ 일으키는 메커니즘 밝혀

2 weeks ago 9

日 연구팀, 연상 작용 뇌 원리 확인
내측 전전두엽, 편도체로 신호전달
불안장애-트라우마 질환 이해 넓혀

말벌이 벌집을 들락날락하는 모습을 평온하게 바라보던 어린이가 말벌에게 쏘인 뒤에는 벌집만 봐도 불안한 감정을 느낀다. 이를 ‘유추 감정’이라고 한다. RIKEN 제공

말벌이 벌집을 들락날락하는 모습을 평온하게 바라보던 어린이가 말벌에게 쏘인 뒤에는 벌집만 봐도 불안한 감정을 느낀다. 이를 ‘유추 감정’이라고 한다. RIKEN 제공
집 근처 숲에서 놀던 어린이가 말벌이 벌집을 드나드는 모습을 발견했다. 아이는 말벌이 사람을 공격할 수 있는 독침을 가진 곤충이라는 점을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말벌과 벌집을 평온하게 바라볼 수 있다. 그러다 어느 날 말벌에 쏘이는 공격을 당한다면 아이는 말벌이 무서운 존재라고 인지하게 된다. 주변에 말벌이 없더라도 벌집을 보는 것만으로 불안해지거나 경계심이 생기게 된다.

말벌에게 쏘인 부정적 경험과 벌집이라는 시각적 존재를 연결해 벌집만 봐도 불안해지는 이 같은 감정을 ‘유추 감정’이라고 한다.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맥락을 이해한 뒤 느끼는 감정이다. 입은 웃고 있지만 눈빛이 슬퍼 보이는 사람, 즐겁다고 말하고 있지만 다리를 떠는 사람 등 행동, 표정, 말투, 상황 등을 통해 맥락을 파악하면 고차원 감정인 유추 감정이 일어난다.

과학자들이 이 같은 유추 감정을 처리하는 뇌 신경 메커니즘을 밝혀냈다. 조슈아 조핸슨 일본 이화학연구소(RIKEN) 뇌과학센터 연구원 연구팀은 동물 실험을 통해 뇌의 전두엽과 편도체의 조화가 유추 감정을 일으킨다는 점을 확인하고 연구결과를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14일(현지 시간) 발표했다.

연구팀은 쥐 실험을 통해 유추 감정에 관여하는 뇌 회로를 최초로 발견했다. 연구팀은 우선 쥐에게 이미지 ‘A’와 소음 ‘B’가 연관이 있다고 인지하도록 학습시켰다. 이후 이미지 A를 보는 동안 전기자극과 같은 불쾌한 경험을 겪도록 만들었다. 그 결과 쥐는 소음 B에서 불쾌한 경험을 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B를 들었을 때 몸이 얼어붙으며 두려움을 느끼는 반응을 보였다. A와 B가 연관이 있다는 맥락을 통해 유추 감정이 일어난 것이다.

연구팀은 뇌 회로를 살피는 영상 기술인 ‘칼슘 이미징’을 통해 쥐의 내측 전전두엽(mPFC)의 신경세포 활동 변화를 분석해 mPFC가 유추 감정이 발생하는 영역이라는 점을 확인했다. 쥐가 A와 B가 연관이 있다는 점을 학습할 때 mPFC의 신경세포에 A와 B에 공통적으로 반응하는 태그(생리학적 표시)가 부여된다는 사실이 발견됐다. B는 불쾌한 경험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지만 B가 A와 연관이 있다는 태그가 뇌에 존재하기 때문에 A에서 느낀 공포 반응이 B에서도 일어나는 것이다.

연구팀은 광유전학 기술을 이용해 쥐가 불쾌한 경험을 할 때 mPFC에서 편도체로 신호가 전달되는 것을 차단하면 B에서 공포 반응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도 확인했다. 광유전학 기술은 빛으로 특정 신경세포를 제어하는 기술이다.

mPFC에서 편도체로의 신호 출력을 막으면 이미지, 소음, 불쾌한 경험 사이에 연결성이 생기지 않아 불쾌한 경험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이미지에서는 공포 반응이 일어나지만 소음에서는 공포를 느끼지 못하게 된다는 분석이다. mPFC와 편도체로 구성된 뇌 회로가 모두 정상적으로 작동해야 유추 감정이 발생한다는 의미다. 연구팀은 “mPFC가 유추 감정이 발생하는 중추 영역이라면 편도체는 유추 감정을 저장하는 중요한 부위”라며 “이번 연구는 불안장애 등 정신질환과 관련이 있는 고차원적 감정을 일으키는 신경 메커니즘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문을 열었다”고 설명했다.

문세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moon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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