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연구팀, ‘부실특허’ 현상 보고
AI 기반 저분자 화합물 개발… 안전성 검증 없이 특허 남발
‘생체 내 실험’ AI 기업 23%뿐… 일반 기업 응답의 절반 수준
“기술 선점 전략으로 남용 땐… 연구개발-특허 생태계 위협”
● ‘인 비보’ 검증 없이 특허 출원 남발
아르티 K 라이 미국 듀크대 법대 교수 연구팀은 AI 기반 저분자 화합물 특허 출원의 어두운 이면을 확인한 연구 결과를 지난달 30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저분자 화합물은 분자 질량과 크기가 작아 생체 내 이동이 용이한 화합물로 신약 개발에 활용되는 물질이다.
AI는 학습한 데이터를 토대로 신약 후보물질을 예측하기 때문에 데이터가 부족하면 예측 정확도가 떨어진다. AI가 도출한 후보물질은 유효성과 안전성을 충분히 검증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의미다.연구팀은 AI를 단순히 도입하는 수준을 넘어 AI 없이는 사업 모델 자체를 유지할 수 없는 ‘AI 네이티브 기업’ 가운데 AI에 의존해 신약 후보물질을 찾는 기업 116곳을 추렸다. 이 중 AI 기반 저분자 화합물로 미국 특허를 받은 31곳을 선별한 연구팀은 기업들이 ‘인 비보(in vivo)’ 실험을 진행했는지를 확인했다. 분석 결과 전통적인 실험실 실험을 통해 저분자 화합물을 발굴한 기업은 특허 출원 전 47%가 인 비보 실험을 거친 반면 AI 기반 기업은 23%만 인 비보를 진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제대로 된 검증 없이 특허 출원을 하는 일이 반복되면 신약 개발 생태계를 해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연구팀은 “기업들은 다른 기업이 특허를 보유한 물질에 대해서는 투자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며 “특허 출원으로 법적 독점권이 부여된 물질은 다른 기업들이 활용하기 어려워진다”고 설명했다.
● 특허 출원 의미 퇴색… 심사 시 ‘엄격성’ 중요 국내 전문가도 인 비보 없이 특허를 출원하는 것은 연구개발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할 것이란 우려를 나타냈다.단백질 구조 예측 AI 분야 국내 권위자인 백민경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AI 기반으로 저분자 화합물을 발굴한 뒤 인 비보 실험 없이 특허를 출원하는 것은 기술 발전에 따른 자연스러운 흐름이지만 몇 가지 문제점을 내포한다”며 “특허의 본질적 목적은 ‘공개를 대가로 한 일정 기간의 독점권 보장’인데 생체 내 효능 정보가 없는 특허는 기술 구현 가능성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의 공개로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무분별한 특허는 오히려 연구개발의 방해물이 될 수 있다. 백 교수는 “실험적 검증이 부족한 상태에서의 특허 남발은 나중에 실제 후보물질 개발을 시도하는 연구자나 기업에 ‘특허 장벽’이 될 수 있다”며 “특허 청구 범위를 광범위하게 설정하면 연구개발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업으로선 기술 선점이 필요하므로 특허 출원 취지를 부정적인 시선으로만 평가해서도 안 된다고 조언했다. 백 교수는 “AI가 제안한 분자가 기존에 알려지지 않았던 작용 메커니즘이나 구조를 갖는 경우 일단 특허로 확보해 두는 것이 일종의 기술 선점 전략으로 이해될 수 있으니 부정적으로만 보기는 어렵다”며 “결국 관건은 특허의 범위와 기술 구현 가능성이 충분히 뒷받침되는지의 여부, 그리고 특허 심사 과정에서 이러한 요소들을 얼마나 엄격하게 평가하느냐에 달렸다”고 말했다.
인 비보(in vivo) 실험 |
‘in vivo’는 ‘생체 내’라는 의미로 살아있는 세포를 활용한 실험을 뜻한다. 개발한 신약 후보물질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테스트하려면 임상시험 진입 전 전임상시험(동물실험) 단계인 인 비보 실험이 필요하다. |
문세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moon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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