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중국의 희토류 수출 통제에 맞서 중국에 핵심 기술 수출을 차단하는 보복에 나섰다. 미·중은 지난 12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고율 관세를 90일간 115%포인트씩 낮추는 안에 합의한 뒤 휴전에 들어갔지만 양국 갈등이 공급망을 둘러싸고 다시 확대되고 있다. 세계 최대 경제 대국인 미국과 중국의 디커플링(공급망 분리)이 본격화되면서 무역 전쟁이 확전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 반도체 소프트웨어 수출도 통제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국 상무부가 반도체 설계에 사용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자국 기업에 중국 수출을 금지하는 명령을 내렸다고 2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상무부 산하 산업보안국은 시놉시스, 케이던스디자인시스템스, 지멘스EDA 등 반도체 설계 자동화(EDA) 업체에 중국으로 기술을 공급하는 것을 중단하라는 서한을 발송했다.
EDA는 반도체 설계 과정에서 쓰는 핵심 소프트웨어다. 반도체 산업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낮지만 차세대 반도체를 설계하고 테스트하는 데 필수적이기 때문에 공급망에서 매우 중요하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지난해 이들 3개사는 세계 EDA 시장 점유율이 74%에 달했고, 중국에선 약 80%를 차지할 정도로 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이 같은 조치는 미국이 중국 반도체 굴기를 차단하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지난 13일 미국은 “전 세계 어디에서든 화웨이 어센드 칩을 사용하면 미국의 수출 통제를 위반하는 것”이라며 중국산 인공지능(AI) 칩이 세계 시장에서 입지를 넓히지 못하도록 했다.
중국 정부는 이른바 ‘중국 제조 2035’로 볼 수 있는 새 국가 전략에서 반도체에 초점을 맞출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화웨이가 엔비디아의 고성능 AI 반도체를 대체할 자체 AI 반도체를 개발하는 등 설계, 생산, 패키징 등 전 공정을 중국에서 해결하려고 하자 미국이 중국 반도체 장비에 이어 설계 부문까지 통제하고 나선 것이다.
◇ 공급망 두고 무역전쟁 전면전
미국과 중국이 공급망을 두고 전면적인 무역 전쟁이 벌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이번 조치는 중국이 지난달 4일 미국의 상호관세에 대응하기 위해 발표한 희토류 수출 통제를 겨냥했기 때문이다. 당시 중국은 전기차와 풍력 터빈, 전투기 등의 제조에 필요한 희토류 원소 7종과 희토류로 만든 영구 자석을 통제 대상으로 지정했고, 제네바 무역 협정 이후에도 희토류 수출 통제는 유지하고 있다. 제네바 협정 당시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은 “양측 모두 디커플링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 공통된 견해”라고 밝혔지만 양국은 강경 조치를 이어가고 있다. 크리스토퍼 존슨 전 중앙정보국(CIA) 중국 담당 분석관은 FT에 “이번 수출 통제는 미·중 관세 휴전의 본질적 취약성을 드러낸다”고 평가했다.
또 미 상무부는 중국 국영 항공기 제조업체 중국상용항공기공사(COMAC·코맥)에 대한 미국 기업의 일부 핵심 부품과 기술 수출을 일시 중단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같은 날 전했다.
한경제 기자 hanky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