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고흐 탄생 170주년, 파리서 30km '오베르'로 떠난 예술 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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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 삶의 마지막 챕터, 오베르 예술 순례

파리에서 30km 남짓 떨어진 오베르 쉬르 우아즈(Auvers-sur-Oise)는 후기 인상주의의 거장,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가 생애 마지막 시기를 보낸 곳이다. 반 고흐를 지지했던 가셰 박사의 집(Maison du docteur Gachet)부터 두달 반 가량 머물렀던 허름한 여관까지, 마을 곳곳에는 그의 흔적이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 비극적인 운명의 끝자락에서 강렬한 예술혼을 불태우며 역작들이 탄생한 이곳은 역설적이게도 영원한 영감의 장소로 기억된다.

까마귀가 있는 밀밭을 그린 장소. / 사진. ⓒ 유승주

까마귀가 있는 밀밭을 그린 장소. / 사진. ⓒ 유승주

빈센트 반 고흐와 그의 동생 테오도루스 반 고흐의 무덤. / 사진. © Château d'Auvers

빈센트 반 고흐와 그의 동생 테오도루스 반 고흐의 무덤. / 사진. © Château d'Auvers

가셰 박사의 집, 두 남자의 만남

1890년 5월 20일, 반 고흐는 새로운 희망을 품고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 도착했다. 생레미 드 프로방스의 요양원에서 1년 여간의 치료를 마친 뒤였다. 당시 파리에서 그의 작품이 주목받기 시작했기에, 수도에서 가까우면서도 자연 속에서 안정을 찾을 수 있는 지역을 선택한 것이다. 이곳에서 그는 동생 테오도루스 반 고흐(Theodorus van Gogh)의 주선으로 폴 가셰 박사(Docteur Paul Gachet)를 만난다. 우울감(Melancholy)을 주제로 박사 학위 논문을 썼을 만큼 인간의 정신에 대한 이해를 지녔던 의사이자 열정적인 예술 애호가였던 가셰는 반 고흐의 정신 질환을 보살피는 동시에, 고뇌에 찬 예술가의 창작 활동을 적극적으로 도우며 교감했다. 같은 해, 37세의 나이로 눈을 감기 전까지 70일이 채 되지 않는 짧은 기간 동안 반 고흐는 무려 74점에 달하는 그림을 남겼다.

한편, 오베르 쉬르 우아즈는 1846년 철도 연결로 파리에서의 접근성이 크게 향상되면서 예술가들의 신 거점으로 떠올랐다. 전원적 풍경과 농민들의 생활을 있는 그대로 화폭에 담으려 했던 선구적인 화가들에게 매력적인 배경이 된 것이다. 특히 오베르에 정착했던 바르비종(Barbizon) 학파의 주요 인물인 샤를-프랑수아 도비니의 존재는 다른 예술가들을 이곳으로 이끄는 중요한 요인이었다. 카미유 피사로, 폴 세잔, 아르망 기요맹, 피에르-오귀스트 르누아르, 외젠 뮈레 등 수많은 예술가들이 교류했던 가셰 박사의 집은 사랑방과도 같았다. 목가적인 경치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정원은 자연의 평온함을 넘어 빛과 색을 탐구하는 실험실의 역할을 했다. 이러한 환경은 반 고흐의 창작 세계에도 영향을 주었다. 가셰 박사의 집 입구에는 국가 문화유산임을 알리는 ‘역사 기념물(Monument Historique)’과 ‘위대한 인물의 집(Maisons des Illustres)’이라는 팻말이 나란히 붙어있다.

닥터 가셰의 집 입구. / 사진. © 유승주

닥터 가셰의 집 입구. / 사진. © 유승주

닥터 가셰의 집. / 사진. © Arthenon

닥터 가셰의 집. / 사진. © Arthenon

올해 3월 29일 대대적으로 단장한 이 집은 반 고흐가 지내던 시기와 흡사하게 재현되어 있다. 좁고 길게 이어진 복도를 따라 좌우로 방들이 나뉘는 구조로, 저택 1층은 반 고흐가 가셰의 딸인 마르그리트를 그렸던 응접실은 물론, 주방과 다이닝 룸 등으로 구성되며, 반 고흐와 가셰 가족의 친밀한 삶을 그려보게 한다. 세월이 깃든 낡은 나무 계단을 오르면, 의사가 아닌 폴 반 리셀(Paul van Ryssel)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한 아마추어 화가로서 그의 다양한 회화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또, 폴 반 리셀 본인과 반 고흐를 비롯한 당대 예술가들이 판화 작업에 활용했던 오목판화 인쇄기(Intaglio Printing Press)가 원형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다. 이는 반 고흐의 사망 후 임종 모습을 담는 데에도 사용되었다.

닥터 가셰의 집에서 큐레이터의 설명을 듣는 모습. / 사진. © 유승주

닥터 가셰의 집에서 큐레이터의 설명을 듣는 모습. / 사진. © 유승주

닥터 가셰의 집. / 사진. © Jean-Yves Lacôte CDVO

닥터 가셰의 집. / 사진. © Jean-Yves Lacôte CDVO

오베르에 새겨진 예술혼

인상주의 작품의 홍보와 확산에 공헌 한 가셰 박사의 집을 나와 꽃과 식물로 단정히 가꿔진 마을을 거닐다 보면, 800m 거리에 오베르 성(Château d’Auvers)이 위용을 드러낸다. 성은 1635년 메디치 가문의 마리 왕비 궁정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프랑스에서 활동했던 이탈리아인 금융가 자노비 리오니(Zanobi Lioni)의 의뢰로 르네상스 빌라 양식에 맞춰 건축되었다. 이곳에서는 지난 2023년, 반 고흐의 탄생 17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 <반 고흐, 마지막 여정(Van Gogh, les derniers voyages)>이 성황리에 진행되었다. 원래 2024년 9월 말까지로 예정되었던 전시는 내부 보수 공사를 거쳐 더욱 확대된 규모로 돌아왔다. 30여 점의 작품을 추가해 반 고흐의 생애 마지막 4년간의 행적을 조명하며, 오는 11월 2일까지 관람객을 맞이한다. 큐레이팅은 반 고흐에 정통한 바우터 반 데르 빈(Wouter van der Veen) 박사가 맡았다.

오베르 성. / 사진. © Le Square

오베르 성. / 사진. © Le Square

전시 큐레이팅 담당한 바우터 반 데르 빈(Wouter van der Veen) 박사. / © Wouter van der Veen

전시 큐레이팅 담당한 바우터 반 데르 빈(Wouter van der Veen) 박사. / © Wouter van der Veen

유서 깊은 성 안, 전시의 첫 번째 갤러리는 ‘하나의 삶을 위한 두 형제(Deux Frères Pour Une Vie)’를 주제로, 반 고흐 형제가 지향했던 당대 예술의 발전과 대중 전파라는 공동의 목표가 어떻게 이들의 삶을 이끌었는지 되돌아보는 자리다. 최초의 자동차가 달리고 전화가 울리며 사진이 현상되던 격동의 시대, 미술상으로서 기회를 모색하던 테오와 네덜란드 시골에서 체류하다 파리로 온 반 고흐는 몽마르트 르픽 거리(Rue Lepic)의 한 아파트에서 함께 지냈다. 도시의 다채로운 요소들은 반 고흐에게 풍부한 창작의 자양분이 되었고, 그는 곧 지역 사회에서 독창성을 인정받게 된다. 이 무렵, 수십 점의 자화상을 그리며, 드로잉 기술을 완벽하게 다듬기 위해 스스로를 엄격히 훈련했는데, 이는 치열했던 자기 성찰의 시간으로 기록된다.

이어지는 갤러리에서는 반 고흐의 예술가 친구들을 소개한다. 그중, 앙리 드 툴루즈-로트레크(Henri de Toulouse-Lautrec)는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그림을 그릴 때만큼은 빈센트에게 도저히 다가가기 힘들었죠. 그토록 집중력이 뛰어난 사람은 처음 봤습니다. 하지만 그 외의 시간에서 빈센트는 파티광으로, 술도 잘 마셨고 해박한 지식을 자랑했습니다. 유머러스한 그 덕분에 많이 웃고 울었습니다.” 파리에서의 역동적인 나날을 뒤로하고, 반 고흐는 신선한 자극을 찾아 프로방스로 떠났다. 일본이 국경을 개방한 지 20여 년이 흐른 1870년대 파리에서는 일본풍의 물건을 뜻하는 자포네즈리(Japonaiseries)가 예술계와 부르주아 계층에서 유행하고 있었다. 반 고흐 역시 이에 영향을 받아 작렬하는 햇살과 선명한 색채가 넘실대는 남프랑스에서 염원하던 일본의 이미지를 발견하고자 했다. 그곳에서 동생에게 보낸 편지에 담긴 “이곳은 나에게 일본과 같다”라는 구절은 그가 자포니즘에 얼마나 빠져들었는지를 여실히 증명한다. 이를 구현한 ‘프랑스의 일본(Le Japon Français)’ 갤러리는 연상적인 이미지들로 양쪽 벽면을 가득 채우며 압도적인 시각적 효과를 선사한다.

오베르 성 전시 내부. / 사진. © 유승주

오베르 성 전시 내부. / 사진. © 유승주

Vincent van Gogh Le pont sous la pluie (d’après Hiroshige), 1887. Huile sur toile. Musée Van Gogh, Amsterdam. / © Van Gogh Museum, Amsterdam (Vincent van Gogh Foundation)

Vincent van Gogh Le pont sous la pluie (d’après Hiroshige), 1887. Huile sur toile. Musée Van Gogh, Amsterdam. / © Van Gogh Museum, Amsterdam (Vincent van Gogh Foundation)

암스테르담 반 고흐 뮤지엄의 특별 에디션도 볼거리다. ‘해바라기Les tournesols’(1888), ‘침실La chambre à coucher’(1888), ‘추수La moisson’(1889), ‘꽃 피는 아몬드 나무Branches d’amandier en fleurs’(1890)를 포함하는 유명 작품들이 고화질로 재현되었다. 이와 더불어 1888년 10월부터 12월까지 아를에서 반 고흐와 폴 고갱의 일화와 귀를 자르는 참혹한 에피소드에도 사람들의 시선이 모인다. 1889년 생레미 드 프로방스에 머문 기간도 비중있게 다룬다. 극심한 정신적 고통에도 불구하고 ‘별이 빛나는 밤La nuit étoilée’과 같은 걸작이 이때 완성되었다. 이 외에도, 샤를-프랑수아 도비니와 장-프랑수아 밀레의 유산과 그들의 그림을 재해석한 반 고흐의 작품들을 함께 전시해, 자신만의 화풍을 개척해 나가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Vincent van Gogh (1853-1890) La moisson, 1888. Huile sur toile. Musée Van Gogh, Amsterdam. / © Van Gogh Museum, Amsterdam (Vincent van Gogh) Foundation).

Vincent van Gogh (1853-1890) La moisson, 1888. Huile sur toile. Musée Van Gogh, Amsterdam. / © Van Gogh Museum, Amsterdam (Vincent van Gogh) Foundation).

오래된 사진과 엽서들, 여기에 오베르주 라부(Auberge Ravoux) 여관 주인의 맏딸로, 반 고흐가 사망하기 전 마지막까지 곁을 지킨 인물 중 한 명인 아들린 라부(Adeline Ravoux)와 16세 때 그를 직접 맞이했던 가셰 박사의 아들 폴-루이 가셰의 인터뷰는 몰입도를 높인다. 전시의 대미는 360도 프로젝션으로 상영되는 애니메이션이 장식한다. 이 영상은 반 고흐의 첫 사후 전시를 기획한 테오의 아내, 요한나 봉허(Johanna Bonger)가 직접 들려주는 이야기 형식으로 전개되어 생생한 여운을 남긴다.

걸작이 된 풍경, 풍경이 된 예술가

오베르 성에서의 관람 이후, 반 고흐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 길은 그 자체로 흥미로운 여정이다. 그가 지내던 여관 근처에는 최후의 유작으로 알려진 ‘나무뿌리들Les racines’(1890)의 실제 나무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한 세기 이상 베일에 싸여 있던 이 놀라운 사실은 바우터 반 데르 빈 박사의 집념 어린 탐구로 몇 해 전 세상에 공개되었다. 수목이 우거진 언덕을 오르면, 드넓은 밀밭이 펼쳐지는데, 바로 ‘까마귀가 있는 밀밭Champs de blé aux corbeaux’(1890)을 그린 장소다. 이어, 반 고흐가 가셰 박사에게 보여준 첫 번째 그림의 소재였던 오베르 쉬르 우아즈 교회(L’église d’Auvers-sur-Oise)를 지나면 비로소 형제가 영면한 묘지에 당도하게 된다. 싱그러운 계절, 묘소를 뒤덮은 담쟁이덩굴은 가셰 박사의 집 정원에서 가져온 것이며, 정원의 담쟁이덩굴은 지금도 생명력을 과시하듯 푸르다. 이토록 고요한 자연의 몸짓은 둘 사이의 각별한 유대감을 상기시키며, 소중한 이들의 영원성을 암시한다.

오베르 쉬르 우아즈 교회와 빈센트 반 고흐가 교회를 그린 그림. / © Jarry Tripelon, CRT IDF/ © Wouter van der Veen

오베르 쉬르 우아즈 교회와 빈센트 반 고흐가 교회를 그린 그림. / © Jarry Tripelon, CRT IDF/ © Wouter van der Veen

밀밭 및 묘지로 향하는 길. / 사진. © 유승주

밀밭 및 묘지로 향하는 길. / 사진. © 유승주

오베르=유승주 미술칼럼니스트· 아르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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