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치지 말아달라"…추모로 시작한 서울시향의 신년

17 hours ago 2

서울시향 신년 음악회에서 여객기 참사 추모곡을 연주하겠다고 말하는 음악감독 얍 판 츠베덴.  서울시향 제공

서울시향 신년 음악회에서 여객기 참사 추모곡을 연주하겠다고 말하는 음악감독 얍 판 츠베덴. 서울시향 제공

“2주 전에 발생한 끔찍한 사고의 희생자와 유가족을 추모하기 위해 이 곡을 연주하겠습니다. 연주가 끝난 뒤엔 박수를 자제해 주시고, 잠시 침묵을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지난 10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신년 음악회에선 무안 제주항공 참사 희생자를 애도하기 위한 특별한 시간이 마련됐다. 굳은 표정으로 무대를 걸어 나온 얍 판 츠베덴 서울시향 음악감독은 마이크를 잡고서 이렇게 말했고, 곧이어 엘가의 ‘수수께끼 변주곡’ 중 ‘님로드’를 들려줬다. 다이애나 영국 왕세자빈,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장례식 등에서 사용된 추모곡이다. 서울시향은 ‘님로드’ 특유의 따뜻하고도 처연한 악상을 섬세하게 그려가며 슬픔에 빠진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졌고, 청중들은 묵념으로 그 뜻에 동참했다.

추모를 마친 뒤에는 예정대로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첫 작품은 멘델스존 교향곡 4번 ‘이탈리아’. 이 곡은 멘델스존이 이탈리아 풍경에서 얻은 영감을 바탕으로 작곡한 만큼 강한 햇살에서 느껴지는 활기, 역동적인 파도에서 비롯된 생동감 등을 얼마나 음향적으로 잘 묘사할 수 있느냐가 관건인데, 츠베덴은 유연하면서도 절제된 지휘로 고유의 이미지를 선명하게 전달했다.

클래식 전용 홀이 아닌 만큼 불분명하고 답답한 음향은 감상을 저해하는 요소 중 하나였으나, 1악장에서 현악의 정교한 움직임과 명징하게 뻗어나가는 목관의 선율, 금관의 부드러운 울림이 조화와 균형을 이루면서 발산하는 밝고 우아한 에너지는 꽤 인상적이었다. 다만 마지막 악장에선 때때로 현과 관의 아티큘레이션이 첨예하게 맞물리지 못하고 소리가 어긋나는 구간들이 생겨났는데, 이 때문에 4악장의 핵심인 타란텔라 리듬이 날카롭게 드러나지 못하고 악상이 다소 투박하게 조형된 점은 아쉬움을 남겼다.

올해 신년 음악회 협연자는 2023년 만 14세의 나이로 스위스 티보르 버르거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에서 최연소 우승을 차지해 세계의 주목을 받은 바이올리니스트 김서현이었다.

그가 들려준 작품은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 김서현은 첫 소절부터 지극히 차가우면서도 신비로운 음향으로 북유럽 특유의 오묘한 서정을 생생하게 불러내며 발군의 기량을 보여줬다. 현에 가하는 장력, 보잉과 비브라토 속도 등을 예민하게 조절하면서 선율 하나하나에 풍부한 색채를 덧입혀 소리를 내는 실력은 만 16세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탁월했다. 아직 성장기에 있는 연주자인 만큼 폭발적 에너지를 내뿜어야 하는 순간 다소 힘이 부족하거나 고음 음정이 흔들리는 구간이 더러 생기긴 했지만 전체 흐름을 방해할 정도는 아니었다. 충분한 온기와 울림을 머금은 독보적 음색과 세밀한 표현력만 봐도 그가 정경화와 사라 장(한국명 장영주)의 뒤를 이을 만한 기대주로 꼽히기에 손색없는 바이올리니스트라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끝으로 서울시향은 빈 필하모닉 신년 음악회의 단골 레퍼토리로도 유명한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오페레타 ‘박쥐’ 서곡과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를 연주하며 새해의 희망, 활기를 연신 불어넣었다. 음악은 세상에서 인간에게 닿을 수 있는 가장 포근한 위안이자, 가장 단단한 응원이다. 시대가 변해도 결코 바뀌지 않는 음악 본연의 힘을 다시금 깨닫게 하는 100분간의 무대였다.

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