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행성에서 내려온 어린 왕자
크리스마스와 연말 휴가 기간에 프랑스 남서부 보르도에 위치한 바생 데 뤼미에르에서 열린 디지털 아트 전시 '어린 왕자'에 다녀왔다.
컬처스페이스(Culturespaces)와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Succession Antoine de Saint Exupéry) 재단의 공동 기획으로 보르도 바생 데 뤼미에르(Bassin des Lumières) 전시장을 위해 특별히 제작된 이 작품은 수백 개의 영상 프로젝터와 디지털 이미지 그리고 음악이 조화되어 어린 왕자의 시적인 동심의 세계로 관객들을 초대한다.
이 몰입형 아트 전시에서는 책으로만 대했던 어린 왕자의 세계를 새로운 각도에서 재발견하고 체험할 수 있는 기회였다. 벽과 바닥에 생생하게 펼쳐지는 생텍쥐페리의 수채화 그림과 글들은 방문객들을 꿈과 상상의 세계로 안내한다. 장미, 여우 그리고 뱀이 어린 왕자와 대화를 나누고, 사막에서 초원으로 행성에서 행성으로 별다른 어려움 없이 여행을 떠나게 된다.
이 시적인 세계에 둘러싸여 우리는 주변 세계를 이해하고 서로를 길들이기 위한 어린 왕자의 여행에 동행한다. 이 여행은 질문과 대답, 어린이와 어른, 행복과 슬픔, 사랑과 우정, 눈에 보이는 것과 감추어진 이야기 그리고 의미와 관계에 대한 시간을 초월하는 우리 자신의 여행이다.
어린 왕자는 관객들에게 상상력, 호기심, 연민의 중요성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며 각자의 내면에 숨어 있는 동심을 깨어나게 한다.
[어린 왕자 전시 티저 영상]
예술과 문화의 명소가 된 보르도의 노고존(No go Zone)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프랑스 남서부 도시 보르도는 고대 시대부터 가론(Garonne)강을 통해 전 세계에서 들어오는 무역 선박을 맞이할 수 있는 거대한 부두를 갖추고 있어서 국제적인 무역항의 역할을 해오고 있다. 대형 선박들의 안전한 정박을 위해 보르도 시내 북쪽 가론 강변에 바다의 썰물과 밀물로부터 수위를 조절하기 위해 건축된 바생 아 플로(Bassin a Flot) 지역은 몇 년 전만 해도 치안이 좋지 않아 꾸쁘 고르지(Coupe Gorge = 목을 자르다)라고 불릴 정도로 위험한 구역이었다.
그러나 200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보르도 시내 재개발 사업으로 가론강 강변 지역 개발 공사와 문화와 예술 공간 복원 및 재건축으로 보르도는 새롭게 탄생하였다. 무엇보다도 한낮에도 갈 수 없었던 위험했던 항구 바생 아 플로 구역에 2016년 최현대식 포도주 박물관인 씨떼 뒤 뱅(Cite du vin)이 오픈되었고 2018년 바다 해양 박물관(Musée mer marine) 그리고 몰입형 디지털 아트 전시관인 바생 데 뤼미에르(Bassin des lumieres)가 2020년에 오픈되어 보르도의 명소가 되었다.
몰입형 아트의 선두 기업 컬처스페이스
몰입형 미디어 아트는 관람객에게 독특한 예술적 경험을 선사하는 디지털 아트이다. 수십, 수백 대의 빔프로젝터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과 영상 작품을 통하여 관람객들은 자유롭게 이동하며 작품을 감상하고 전시 공간에 몰입되는 새로운 예술 체험을 하게 된다.
컬처스페이스는 프랑스 유형 문화유산, 박물관 및 예술 센터 운영과 전시 기획 분야에서 선도적인 민간 운영업체로 지난 30년간 프랑스뿐 아니라 전 세계의 예술과 몰입형 미디어아트 센터 운영으로 연간 460만 명의 방문객을 유치하고 있다.
2012년 프랑스 남부 지역의 레 보드프로벙스(Les Baux-de-Provence)에 70년간 방치되어 있던 채석장에 첫 번째 몰입형 아트 전시장 '까리에르 데 뤼미에르'( Carrières des Lumières)를 오픈하였다. 2018년에는 파리 11구의 낡은 철제 주조공장에 '아틀리에 데 뤼미에르'(Atelier des lumières)를 오픈하여 6개월 만에 관람객 백만 명을 돌파하는 대성황을 이루었다. 또한 2018년 제주도에 '빛의 벙커'(Bunker des Lumières)를 오픈하고 2022년 서울에 '빛의 시어터'(Théâtre des Lumières) 를 오픈하여 프랑스와 한국에서 몇 달 차이로 같은 전시를 관람할 수 있게 되었다.
세계 최대 규모의 몰입형 아트 전시관 바생 데 뤼미에르
컬처스페이스는 2020년 보르도에 세계 최대 규모의 디지털 아트 센터인 바생 데 뤼미에르를 오픈했다. 코로나의 영향으로 오픈 초기 큰 어려움을 겪었으나 2022년부터 관람객 수가 서서히 증가하여 현재 연평균 65만 명의 방문객을 맞이하여 정상적인 궤도에 올라섰다고 한다.
[2020년 바생 드 뤼미에르에서 진행된 전시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이 프랑스 대서양 연안에 건축한 잠수함 기지에 세워진 바생 데 뤼미에르에서는 미술사 대가들의 작품과 현대 디지털 아트 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1940년 6월 말 보르도가 독일군에게 점령되었고 독일은 이 잠수함 기지 '라 바즈 수마린'(La Base sous-marine)을 19개월 동안 건축하였다. 보르도는 대서양에 인접하고 항구 시설이 잘 정비되어 있으며 영국 적군과의 거리가 멀어 독일군들에게는 전략적인 면에서 훌륭한 요지였기 때문이다.
잠수함 기지의 총면적은 45,000m2이며 그중 바생 데 뤼미에르 전시장 총면적은 14 500m2로 서울의 빛의 시어터의 5배, 파리의 아틀리에 데 뤼미에르의 5배, 까리에르 데 뤼미에르의 3배로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몰입형 아트 전시관이 되었다.
2025년 2월 말부터는 '파라오의 이집트 - 쿠프스부터 람세스 2세까지'(Egyptian Pharaohs From Cheops to Ramesses II)와 '오리엔탈 리스트 - 앵그르, 들라크루아, 제롬...'(The Orientalists Ingres, Delacroix, Gérôme...) 전시를 예정하고 있다. 서울의 빛의 시어터와 제주도의 빛의 벙커의 전시 프로그램이 프랑스와 몇 달 차이로 같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2025년 봄쯤에 이 두 전시를 한국에서도 관람할 수 있게 될 것 같다.
그러나 깊이를 알 수 없는 검은 물속에 윤슬과 같이 반사되는 영상들은 다른 어느 디지털 아트 전시관에서도 볼 수 없는 보르도 전시관에서만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예술적 경험으로 기억될 것이다.
정연아 패션&라이프스타일 컨설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