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 인근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윤태인 씨(35)는 소개팅 장소인 평촌으로 가기 위해 기후동행카드를 찍고 지하철 4호선에 몸을 실었다. 범계역에서 내려 기후동행카드를 찍었지만 개찰구를 통과할 수 없었다. 범계역은 기후동행카드 서비스 범위에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할 수 없이 그는 역무원을 호출해 교통카드 기능이 있는 다른 카드로 요금을 냈다.
코레일 구간 추가 징수액만 월 3000만원
10일 한국철도공사(코레일)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기후동행카드 이용자들이 작년 12월 한달 간 하차 불가능역에서 추가로 낸 요금만 총 2861만원에 달했다. 윤 씨와 같은 사례는 1만5902건 집계됐다. 약 87%인 2487만원은 선·후불교통카드로 결제됐고, 무통장 입금(245만원)과 현금 지급(139만원)한 경우도 있었다.
기후동행카드는 월정액 6만2000원(따릉이 포함 시 6만5000원)으로 서울 지하철, 버스 등을 무제한 탈 수 있는 교통카드다. 이용범위는 서울교통공사가 관리하는 서울 지하철역·김포골드라인·진접선·별내선·수인분당선, 고양시·과천시·남양주·구리 구간, 서울시 면허 시내·마을버스, 따릉이다.
코레일이 관리하는 1~8호선·경의중앙·경춘·서해선의 일부 구간, 민자 철도 신분당선, 그리고 공항철도 208개역은 제외됐다. 이용범위 내 역에서 승차해도 범위 밖에 있는 역에서 하차할 경우 역무원이 별도로 요금을 징수하는 게 원칙이다.
신분당선과 공항철도 노선 등까지 합하면 매달 징수하는 금액은 수억원에 이를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기후동행카드 사업을 전담하는 서울시 교통정책과에도 정보공개를 청구했지만 "기관에서 보유·관리하지 아니하는 정보"라며 부존재 처리했다.
단체장 정책 경쟁에 시도민들만 피해
기후동행카드 서비스를 지원하지 않는 역사가 있는 건 수도권 지방자치단체와 운송기관들이 사업 참여에 미온적이어서다. 대중교통 할인 정책은 요금을 충전하는 방식인 서울시의 기후동행카드와 일정 횟수 이상을 이용하면 요금을 환급해주는 국토교통부의 K패스로 나뉜다. 경기도와 인천시는 K패스를 연계해 지역 내 주민을 대상으로 혜택을 확대한 '경기패스'와 'I패스'를 내놨다.
당초 서울시는 "서울로 출퇴근 하는 수도권 인구도 서울시민"이라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신념에 따라 수도권 교통수단을 모두 이용할 수 있는 정기권을 출시한다는 구상이었다. 서울·경기·인천은 수도권 교통체계를 아우르는 정기권으로 시·도민들 부담을 낮춰야 한다는 데 공감했지만 방식을 두고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해 독자 노선을 걷게 됐다.
이용자들은 손해를 보는 느낌이라고 하소연한다. 윤 씨는 "서울과 생활권을 공유하는 경기권 지역에 갈 때마다 1400원씩 추가로 내는 게 아깝다는 생각"이라고 토로했다. 의정부에서 지하철 10분거리에 있는 서울 도봉구 방학역으로 통근하는 곽모 씨(55)는 "한달 교통비만 10만원이 넘어 K패스보다 정액제인 기후동행카드를 쓰는 게 이득인데 선택권마저 없는 게 아쉽다"고 하소연했다.
수도권 시민들의 교통 복지를 위해선 기후동행카드 용처가 더 확대돼야 한다는 게 서울시의 입장이다. 그러나 수익성을 극대화해야 하는 민간 철도 기업에까지 교통비 할인으로 인한 운송손실금을 보전하려면 예산 부담이 크게 늘 수 밖에 없다. 서울시와 교통 정기권 정책 경쟁을 벌이고 있는 경기도가 사업에 참여할 가능성도 낮다는 게 중론이다. 경기도 관계자는 "전국 모든 대중교통 이용 시 20~53%를 환급해주는 경기패스에 집중하는 기조는 변함없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경기도 시군 단위의 지자체와 개별적으로 업무협약을 맺고 있다. 인천, 김포, 군포, 과천, 고양, 남양주, 구리, 의정부, 성남 등 오 시장과 같은 당 소속 단체장이 있는 총 9개 지자체와 손을 잡았다.
최해련 기자 haery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