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미 대표의 기업 커뮤니케이션으로 살아남기 〈2〉수천억을 흔든 글로벌커뮤니케이션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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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미 ㈜더컴퍼니즈 대표 (기업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문경미 ㈜더컴퍼니즈 대표 (기업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2025년 4월은 잔인한 달이었다. 적어도 한국 바이오 업계를 가르는 한 상장사의 회생 가능성만 놓고 본다면 그렇다. 임상 실패의 충격은 단순한 기술 리스크를 넘어, 기업 커뮤니케이션의 총체적 실패로 이어졌다. 시장이 등을 돌린 건 결과 자체가 아니라, 그 결과를 설명하는 방식이었다.

글로벌 기업에게 언어는 단순한 수단이 아니다. 그 말의 무게는,글로벌이라는 시장의 무게만큼이나 무겁다. 많은 기업이 글로벌 진출을 말하지만, 실제로는 출발점부터 글로벌 기준의 언어를 갖추지 못한다. 글로벌을 선언하는 데는 익숙하지만 기업 커뮤니케이션의 설계부터 글로벌 감각으로 접근하는 기업은 드물다.

글로벌 기준은 단지 언어의 '번역'이 아니라, 책임을 감수할 수 있는 구조화된 말의 방식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기업의 언어는 곧 공시이며, 메시지는 투자자와 시장, 때로는 법적 판단의 근거가 된다. 어떤 단어를 썼는가보다, 어떤 방식으로 내용을 전달했는가가 더 중요한 이유다.

최근 상장 바이오기업 한 곳의 커뮤니케이션 실패는 이 점을 정확히 보여준다. 해당 기업은 아직 발표되지 않은 글로벌 임상 2상 결과에 대해 시장에 낙관적 신호를 먼저 전달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난 뒤 공개된 공식 결과는 실패였다. 새로운 기대를 제시할 후속 발표 없이, 기대감은 실망으로 바뀌었다.

문제는 결과보다, 그 결과를 전달하는 방식에 있었다. 긍정적 암시는 오히려 투자자의 등돌림으로 이어졌다. 실패를 리스크 헷징의 기회로 전환하지 못한 채, 과도한 기대만을 부각했던 기업은 임상 실패보다도 잘못 유통된 기대 때문에 더 큰 신뢰의 타격을 입었다.

문제는 단순한 해명 부족이 아니다. 해당 기업은 글로벌 시장에서 신약개발 기업이 어떤 언어로 미래 가치를 설명해야 하는지를 간과했다. 사전 안내 없이 실패를 발표한 것이 아니라, 충분한 설명 없이 과도한 기대를 조성한 점이 결정적인 실수였다.

글로벌 기준의 언어는 '희망'보다는 '사실' 위에 구축돼야 한다.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 예측 가능한 방향성, 준비된 메시지가 함께 갖춰져야 한다. 'first-in-class', 'best-in-class'와 같은 표현조차, 미국 증권시장에서는 과장된 정보 제공으로 간주되어 투자자 집단소송이나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Securities and Exchange Commission)의 사후 조치로 이어질 수 있는 리스크 요인이 된다. 글로벌 상장사에게 언어는 단순한 말이 아닌 법적 책임 대상이다.

국내 상장사 대부분은 여전히 기업 언어를 콘텐츠 수준으로만 관리한다. 대표 인터뷰는 기획사가 맡고, IR 자료는 외주 컨설팅이 작성한다. 그러나 글로벌 스탠더드는 다르다. 기업의 말은 일관된 설계와 승인 체계를 거쳐야 하며, 시장과의 신뢰는 말의 진폭을 예측 가능하게 만드는 구조 안에서 형성된다.

한 주 만에 시가총액 수천억이 날아간 해당 사례는, 그 체계를 갖추지 못한 기업이 어떻게 흔들리는지를 보여주는 업계의 뼈아픈 교훈이다. 글로벌 커뮤니케이션의 실패는 곧 글로벌 진출 자체의 신뢰를 잃는 결과로 이어진다. 특히 바이오테크 기업일수록 기술보다 말을 먼저 설계해야 한다. 임상은 언제든 실패할 수 있다.

글로벌 기준의 커뮤니케이션은 단순히 문장을 영어로 옮기는 것이 아니다. 투자자 대상 발표자료, 과학자 대상 학술자료, 고객 대상 콘텐츠 모두에서 일관성과 톤 조절이 요구된다. 글로벌 기업은 동일한 사실을 다른 언어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동일한 메시지를 시장과 이해관계자에 맞춰 구조화하는 훈련이 되어 있다.

무엇을 언제 말할 것인지, 그 '타이밍'도 중요하다. 글로벌 스탠더드는 '말해야 할 때'와 '말하지 말아야 할 때'를 구분한다. 특정 바이오 기업이 발표 전 미리 장외에서 신호를 흘린 것은, SEC 기준상 사전 공시로 간주될 수 있는 문제였으며, 결과 발표 전에 기대를 조성한 점 역시 IR 관점에서 중대한 실수였다.

기업의 언어는 결국 메시지 전략의 문제다. 글로벌 커뮤니케이션은 '진실을 말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진실을 어떻게 설명하느냐'의 문제다. 메시지는 정직해야 하지만, 전달 방식에는 전략이 필요하다. 체계 없는 말은 쉽게 오해되고, 곧장 왜곡된다.

글로벌 시장은 숫자보다 설명의 구조를 본다. 결과보다 그 결과를 어떻게 말했는가를 판단한다. 말의 무게를 가볍게 여긴 기업은 결국 시장의 신뢰를 무겁게 잃게 된다.

글로벌은 단순히 해외 시장 진출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글로벌은 '말하는 방식'부터 달라야 한다. 정제된 표현, 검증된 정보, 예측 가능한 구조. 그것이 진짜 글로벌 기업이 사용하는 언어다.

문경미 (주)더컴퍼니즈 대표 (기업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chloemoon@thecompanies.co.kr

길재식 기자 osolgil@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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