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와 노래로 대중의 사랑을 받아온 스타들이 무대와 스크린을 넘어 '책'이라는 또 다른 매체를 통해 자신만의 이야기를 전한다.
박중훈은 데뷔 40년 만에 첫 수필집을 선보였고, 뮤지컬 배우 김소현과 박상준, 가수 겸 배우 이창섭, 배우 임병기와 류수영 등도 최근 잇달아 책을 출간하며 출판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들은 연기자로서의 경험과 내면의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며 독자와 새로운 방식의 소통을 시도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흐름을 "배우의 활동 영역이 영상에서 출판으로 확장된 사례"라고 분석한다.
1980~90년대 충무로의 대표 배우 박중훈이 데뷔 40년을 맞아 오는 29일 수필집 '후회하지마'를 출간한다. '반성은 하되 후회는 하지 말자'는 인생 모토를 담은 이번 책에는 배우로서 겪어온 희로애락과 지난 세월의 감사, 그리고 인간 박중훈의 솔직한 고백이 담겼다.
박중훈은 "그동안 쉬면서 책을 많이 읽고 작품 구상도 했다"며 "60살쯤 돼서야 책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올해 유난히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한여름 내내 대관령 기슭에서 글을 썼다"고 말했다.
그는 1986년 영화 '깜보'로 데뷔해 '미미와 철수의 청춘 스케치', '칠수와 만수', '게임의 법칙', '마누라 죽이기', '투캅스' 시리즈 등 50여 편의 작품에 출연하며 충무로 대표 흥행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대종상과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그는 2013년 영화 '톱스타'를 연출하며 감독으로도 변신했다.
박중훈은 오는 11월 4일 정동1928 아트센터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15일과 23일에는 교보문고 광화문점과 강남점에서 사인회 및 북토크를 진행할 예정이다.
뮤지컬 배우 김소현은 최근 에세이 '그래도 나니까'를 출간했다. 2001년 '오페라의 유령'으로 데뷔해 '명성황후', '엘리자벳' 등 수많은 무대에 오른 그는 이번 책에서 화려한 무대 뒤에 숨겨진 불안과 성실, 그리고 무대와 삶을 지탱해온 진심을 풀어냈다.
김소현은 책에서 "무대는 알수록 낯설고, 익숙해질수록 두려움이 깊어진다"고 털어놓으며 완벽을 향한 긴장과 두려움 속에서도 자신을 다잡는 배우의 내면을 기록했다.
그의 글에는 가족에 대한 따뜻한 시선도 담겼다. 남편이자 뮤지컬 배우 손준호는 아내의 글에 화답하는 편지를 책 말미에 실어 두 사람의 신뢰와 애정을 드러냈다. 김소현은 "어설픈 일상 속에서도 자신을 성실히 다듬어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위로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그룹 비투비의 멤버이자 뮤지컬 배우 이창섭은 첫 번째 에세이 '적당한 사람'으로 주요 서점 주간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른 바 있다.
책 '적당한 사람'에는 완벽을 향한 집착 대신,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적당함'의 미학이 담겼다. 이창섭은 "모든 것이 과하거나 부족하지 않게, 내게 알맞은 균형을 찾기 위한 시간이었다"고 밝혔다.
뮤지컬 배우 박상준은 첫 에세이집 '너에게 잠겨 지금에 머무르다'를 통해 와인과 인생의 여정을 겹쳐 썼다. 대학로 무대에서 '조선의 복서'에 출연 중인 그는 "무대와 글, 두 세계 모두에서 진심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배우 임병기는 시집 '천년의 그리움'을 통해 50년 연기 인생을 문학으로 옮겼다. KBS '태조 왕건', '용의 눈물', '대조영' 등 다수의 사극에서 역사 인물을 연기한 그는 이번 시집에서 "무대 위에서 느낀 고난과 환희를 시로 기록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임병기는 "이 시집은 나의 기록이자, 함께 시대를 살아낸 동료 배우들의 이야기"라며 "배우라는 존재가 어떻게 예술과 역사의 경계를 넘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배우 류수영은 예능 프로그램 '편스토랑'을 통해 선보인 요리 실력을 바탕으로 요리책 '류수영의 평생 레시피'를 출간했다. 책에는 4년에 걸쳐 완성한 79가지의 집밥 레시피가 실렸다.
류수영은 "소설책은 머리로 들어가지만 요리책은 입으로 들어간다"며 "틀리면 민망하고 죄송할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이어 "없는 레시피를 새로 만들고 직접 실험하며 완성했다. 출간까지 4년이 걸렸다"고 밝혔다.
해당 책은 출간 직후 중쇄를 거듭하며 11쇄에 돌입했다. 인세 수입은 1억 원을 돌파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요리는 내게 또 다른 표현의 언어"라며 "누구나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집밥이야말로 가장 진심 어린 음식"이라고 말했다.
스타의 저서는 과거 '이름값에 기대 만든 책'이라는 편견과 달리, 높은 공감도와 진정성을 기반으로 대중의 호응을 얻고 있다. 일부 작품은 출간과 동시에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인세 수익만 수천만 원에서 억대에 이르는 경우도 나타났다.
특히 인지도가 높은 연예인들은 화제성 면에서 초기 마케팅이 수월하며 팬덤의 구매력 또한 판매량에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유명세만으로는 성공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이 출판계의 공통된 견해다. 기본적인 글쓰기 능력과 공감할 수 있는 메시지, 책의 완성도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
한 연예계 관계자는 "이들의 책은 단순한 팬 서비스를 넘어, 자신을 객관화하고 표현하려는 진지한 시도의 결과물"이라며 "이는 배우의 지식재산권(IP)이 스크린을 넘어 출판으로 확장된 사례"라고 말했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