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영화 '기생충'으로 세상을 뒤집은 봉준호 감독이 로버트 패틴슨과 함께 6년 만에 신작 '미키17'을 내놓는다.
'미키17'은 얼음으로 덮인 우주 행성 개척에 투입된 복제인간의 이야기를 그린 SF물이다. 미국 작가 에드워드 애슈턴의 소설 '미키 7'을 바탕으로 로버트 패틴슨과 스티븐 연, 나오미 아키에, 토니 콜렛, 마크 러팔로 등이 출연했다.
로버트 패틴슨은 1인 2역처럼 보이는 극과 극의 두 ‘미키’를 연기했다. 그는 차기작 촬영으로 바쁜 일정 중임에도 봉준호 감독의 고국인 한국에는 꼭 오고 싶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내 첫 내한이 성사됐다.
20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봉준호 감독은 "SF영화이지만 인간 냄새가 가득한 인간적인 SF"라며 "미키라는 평범하고 힘없는, 불쌍한 청년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새로운 느낌의 SF라서 여러분을 만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로버트 패틴슨은 극 중 위험한 일에 투입되는 익스펜더블(소모품)을 연기한다. 그는 17번째 죽음의 위기에 놓인 미키17과, 그가 죽은 줄 알고 프린트된 미키18까지 1인 2역처럼 보이는 극과 극의 미키를 연기했다.
봉준호 감독은 "미키는 불쌍한 인물이다. 직업 자체가 반복적으로 죽어야 하기 때문이다. '미키17'은 미키가 열 일곱번 죽었다는 뜻이다. 그는 죽고 나면 또 새롭게 출력된다. 기존의 클론과 상당히 다르다. 프린트에서 서류를 뽑듯 인간이 출력된다. 그 자체가 비인간적이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이어 "원작 소설의 핵심 콘셉트도 휴먼 프린팅인데, 매번 출력되는 분이 로버트 패틴슨이다. 이 분이 출력된다고 생각하면 보기만 해도 가슴이 아프지 않나. 극한에 처한 노동자 계층이라 계급의 문제도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거창하게 계급 간의 투쟁을 다룬다는, 정치적인 깃발을 내건 것은 아니고 미키가 얼마나 불쌍한지, 그가 어떻게 힘듦을 헤쳐 나가는지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 재밌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원작보다 10번 더 미키를 죽게 한 것에 대해 "원작은 7번 죽이는데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했다"며 "더 일상적으로, 더 다양한 죽음을 통해 출장을 10번 더 나가는 노동자의 느낌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원작과의 차이에 대해 봉 감독은 "원작은 하는 SF라 과학기술 설명이 아주 많다. 제가 과학에 큰 관심이 없어서 그런 부분은 빠지고 땀 냄새나는 인간의 이야기로 각색을 채웠다. 그 과정에서 미키도 노동 계층이 되고 외롭고 가엽고 불쌍한 친구가 됐다. 그런 친구가 계속 출력되면 더 외로울 것 같더라. 미키에게 유일한 친구가 있다. 스티븐 연이 연기하는 티모. 유일한데 그다지 유익하지 않다"고 했다.
로버트 패틴슨은 봉준호 감독의 '성덕'(성공한 덕후)가 됐다. 그는 이 작품에 출연한 이유로 봉 감독의 극본을 꼽았다. 그는 "처음 읽었을 때부터 심플하게 크레이지하게, 빨리 읽히는 대본이었다"며 "미키의 이면을 들여다보니 복잡해지더라. 휴먼이 녹아있었다. 실제 캐릭터를 보면 자신감이 1도 없는 캐릭터나 연민은 없다. 여러 영감이 있었지만, 훈련이 안 되는 개를 연기한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이어 "전 세계에서 봉 감독님과 같은 레벨은 네 다섯 분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배우들이 함께 일하고 싶어 하는 감독"이라고 존경심을 드러냈다.
아울러 "이러한 규모의 거대한 스케일의 영화에 이러한 캐릭터, 이러한 유머를 찾기 쉽지 않다"며 "어떻게 보면 스타워즈처럼 보이는 세트장에서 일하다가 그 안에서 가볍고 재미있는 장면을 촬영하는 유머를 잃지 않는 SF 영화는 흔치 않다고 생각한다"고 극찬했다. 그러면서 "봉 감독에 대해 "용감한 감독"이라고 치켜세웠다.
로버트 패틴슨은 봉 감독이 배우들을 한계에 도전하게 하는 감독이라고 했다. 그는 "시퀀스 자체를 짧게 찍었다. 처음에 당황했으나 몇주 지나고 나니 익숙해져서 스스로 자유를 느꼈다. 한 번에 짧게 찍으면 에너지를 집중시킬 수 있어 좋다. 배우들 모두 '이렇게 찍고 지나간다고?'라는 반응을 보이다 이후 '이 현장이 최고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고 했다.
'살인의 추억'을 언급하며 봉 감독에 대한 팬심을 드러낸 로버트 패틴슨은 봉 감독의 영화 중 가장 좋아하는 영화에 대한 질문에 "'미키17'이 제일 좋아하는 영화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봉 감독은 "사실, 솔직히 말하면 25년 감독 경력 최초로 사랑 이야기가 나온다. 주인공 미키와 나샤의 러브스토리가 있다. 인간이 출력되는 와중에 러브스토리가 나오는 거다. 정재일 씨가 만든 사랑 테마 음악도 있다. 멜로 영화라고 이야기하면 뻔뻔할 것 같지만 사랑의 장면이 있어 뿌듯했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미키17'은 워너브라더스의 조정 끝에 여러 차례 개봉이 밀렸다가 오는 2월 28일 한국에서 전 세계 최초로 개봉한다. 북미에선 3월 7일 개봉한다.
일부 외신은 봉 감독과 워너 측이 편집권에 이견이 있어 개봉일이 밀렸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봉 감독은 "이번에 개봉 날짜 변동이 커서 익사이팅했다. '살인의 추억'때부터 항상 개봉일 변경이 있었다. 이 영화가 주목을 많이 받아서 그런 건지 배급사가 고민을 많이 했다"고 언급했다.
그는 "할리우드 현지 인더스트리의 상황과 배우 조합의 파업 때문에 할리우드의 많은 영화가 재편집한다거나 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그렇게 복잡한 건 없었다. 애초에 감독의 최종편집권으로 계약이 된 영화고 워너 브러더스에서도 제 컨트롤을 존중했다."며 "상호존중 하는 가운데 순탄히 잘 끝냈고, 결과적으로 한국에서 먼저 개봉하게 되어 기쁘다"고 덧붙였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