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닝타임 7시간19분' 그 영화, 26년 만에 전주에서 다시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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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애살'의 한 장면. 전주국제영화제 제공

영화 '애살'의 한 장면. 전주국제영화제 제공

미국 영화사를 할리우드 중심으로만 보는 것은 반쪽짜리 시각이다. 1990년대 힙합 음악이 각각 투팍과 비기로 대표되는 웨스트코스트와 이스트코스트로 양분돼 서로 다른 스타일을 만들어냈듯, 1960~1970년대 미국 영화계는 상업성과 대중성으로 산업을 이끈 할리우드에 대응해 뉴욕을 중심으로 한 ‘언더그라운드 시네마’가 독특한 문법을 만들어냈다.

이 흐름을 주도한 인물을 꼽으라면 영화감독 로버트 다우니 시니어가 앞단에 거론된다. 도발적인 저예산 영화를 선보여 폴 토마스 앤더슨 같은 후대 감독들에게 영향을 줬다. 물론 국내에선 아이언맨으로 유명한 할리우드 스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부친 정도로만 알려진 낯선 인물이다. 그의 작품이 국내 관객과 만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뉴욕 언더그라운드 시네마의 아이콘이자 풍자극의 전형을 빚어낸 다우니 시니어의 영화적 세계관이 한국에 소개된다. 오는 29일 개막하는 ‘제27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다. 백인 일색 광고 에이전시에서 흑인 간부가 사장으로 선출되는 상황을 통해 백인 중심의 대중문화 권력구조를 전복하는 작품인 ‘퍼트니 스워프’, 아들인 다우니 주니어의 데뷔작이기도 한 ‘그리저의 궁전’ 두 편이 ‘특별전: 뉴욕 언더그라운드-더 매버릭스’ 이름을 달고 상영된다. 다우니 시니어와 비슷한 시기를 함께했던 잭 스미스 감독, 시각예술가 캐롤리 슈니먼의 작품도 함께다.

'제27회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인 영화 '나의 사적인 예술가'의 한 장면. 전주국제영화제 제공

'제27회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인 영화 '나의 사적인 예술가'의 한 장면. 전주국제영화제 제공

맛의 고장 전주가 5월을 앞두고 영화로 입맛을 돋운다. 영화제 조직위원회에 따르면 올해는 54개국 237편(장편 154편·단편 83편)이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 등 5개 극장에서 다음 달 8일까지 상영된다. 월드 프리미어(세계 첫 공개)는 78편, 아시아 프리미어는 54편으로 전년과 비슷한 규모다.

주류를 벗어난 독립·대안 영화를 소개하는 데 중점을 두고 출발한 영화제답게 전주에선 늘 실험적인 작품들이 돋보였다. 올해도 비슷한 기조가 이어진다는 평가다. 민성욱 영화제 공동집행위원장은 “전주영화제에서 오래 일해왔지만, 올해 프로그램이 가장 뛰어나지 않을까 싶다”고 강조했다.

뉴욕 언더그라운드 특별전과 함께 ‘홍콩귀환: 시네마+아방가르드’ 특별전이 대표적이다. 무협과 액션코미디로 인식되는 경향이 강한 홍콩 영화사 밑단의 숨은 독립예술영화를 조명한다. 홍콩 최초의 아트하우스 영화 중 하나인 탕슈쉬엔의 ‘동부인’(1968), 왕가위의 멘토로 알려진 탐가밍의 ‘애살’(1981) 등이 대표적이다. 홍콩을 대표하는 현대미술기관인 엠플러스(M+) 미술관의 복원프로젝트를 통해 4K로 복원됐다. 올해 초 세상을 떠난 배우 고 안성기를 기리는 회고전에선 ‘기쁜 우리 젊은날’(1987) 등 7편의 작품을 상영한다.

영화 '사탄탱고'의 한 장면. 전주국제영화제 제공

영화 '사탄탱고'의 한 장면. 전주국제영화제 제공

가장 눈길을 끄는 영화는 다음달 4일 CGV전주고사에서 상영되는 벨라 터르의 ‘사탄탱고’(1994)다. 지난 1월 별세한 터르는 영화사에 ‘느림의 미학’을 새긴 영화감독으로 기억된다. 헝가리 출신으로 34년간 9편의 장편을 남긴 그는 정교하게 설계된 롱테이크, 흑백의 긴 시퀀스, 극단적으로 느리게 흐르는 리듬 등 상업 영화의 문법을 탈피한 파격적 스타일을 선보였다.

대표작이 바로 ‘사탄탱고’다. 오랜 예술적 동지이자 지난해 노벨문학상을 받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동명 장편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러닝타임이 무려 439분(7시간19분)에 달한다. 웬만한 씨네필도 쉽게 정복하지 못한 영화로 손꼽히는 이유다. 2000년 영화제 첫 회때 이 영화를 선보인 전주영화제는 터르를 기리고자 올해 다시 상영키로 결정했다.

올해 영화제 개막작은 켄트 존스의 ‘나의 사적인 예술가’다. 빈 모더니즘 대표작가인 아르투르 슈니츨러의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로, 지난해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월드 프리미어로 공개됐다. 현대 뉴욕을 배경으로 예술가의 삶 뒤에 숨겨진 허영을 드러내고 신비로움을 벗겨낸다. 유명 배우 윌럼 더포와 ‘패스트 라이브즈’를 통해 잘 알려진 한국계 배우 그레타 리가 주연을 맡았다. 폐막작은 김현지 감독의 ‘남태령’이다.

유승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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