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불로뉴 숲 아클리마타시옹 공원에 자리한 루이비통 재단은 데이비드 호크니의 기념비적인 초청전을 4월 9일부터 8월 31일까지 진행 중이다. 호크니의 친구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공간의 11개 갤러리를 모두 할애한 전례없는 규모는 두 세기를 관통하며 진화를 멈추지 않은 대가의 빛나는 궤적을 재조명한다.
1955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400여 점의 엄선된 작품들은 유성 및 아크릴 물감, 잉크, 목탄 류의 전통적인 매체는 물론, 디지털 아트와 비디오 설치 같은 현대적인 형태를 아우른다. 재단의 예술 감독이자 총괄 큐레이터인 수잔 파제(Suzanne Pagé)의 지휘 아래, 호크니 스튜디오의 장피에르 곤살베스 드 리마(Jean-Pierre Gonçalves de Lima), 조너선 윌킨슨(Jonathan Wilkinson)과의 협업은 창조적 여정의 정수를 담아낸다. 약 2년간의 준비에 거장도 적극 참여했다는 사실은, 이번 전시가 회고전을 넘어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여전히 열정 넘치는 혁신가의 현재진행형 예술 세계와 긴밀하게 맞닿아 있음을 시사한다.
성장의 궤적
영국 웨스트 요크셔의 산업 도시, 브래드퍼드(Bradford)의 전후 풍경에서 성장한 호크니의 예술적 삶은 1959년 런던 왕립예술대학에 입학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1960년대, 아트 신의 지형을 뒤흔든 젊은 혁명의 흐름을 타고 그는 주목할 만한 핵심 인사로 떠오른 바 있으며, 확고한 구상적 양식(Figurative Style)을 구축했다. 그렇게 그의 초기 작품들은 마치 그라피티를 연상시키는 듯 날것 그대로의 생생한 매력을 발산한다. 전시는 연못 층(Pond Level) 2번 갤러리에서 그 막을 올린다. 첫 판매 작이자, 따뜻한 시선이 담긴 ‘아버지의 초상(Portrait of My Father)’(1955)은 앞으로 펼쳐질 광활한 연대기적 탐구의 서막을 알린다.
1964년 캘리포니아로의 이주는 중대한 변환의 기폭제가 되었다. 향락주의적 무드와 강렬한 햇살, 자유로운 공기를 마시며 그는 복잡한 구성을 해체하고, 전에 없었던 대담한 색채와 단순화된 평면을 채택했다. 때로는 사진적인 시각성을 가미하기도 했다. ‘더 큰 첨벙(A Bigger Splash)’(1967)과 ‘더블 포트레이트(Double Portrait)’ 연작은 이러한 양식적 변모를 명징하게 보여준다. 점차 자연은 그의 관심사로 부상했으며, 60개의 캔버스에 걸쳐 가로 길이가 7m가 넘는 웅장한 파노라마 ‘더 큰 그랜드 캐니언(A Bigger Grand Canyon)’(1998)은 대표적인 사례이다. 도약의 과정에서, 그는 1970년대 중후반 파리의 저명한 미술관 전시 통해 국제적인 입지를 다졌으며, 1980년대 초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무대 디자인에 참여하며 창의적 스펙트럼을 확장해 나갔다.
요크셔, 익숙함의 재발견
“자연은 끝없는 무한과 같아요. 결국엔 늘 자연으로 회귀하죠. 제가 요크셔에서 했던 일도 자연으로 돌아가는 과정이었어요.”
1999년 모친의 별세 이후, 호크니는 익숙한 장소인 요크셔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다. 완만한 들판과 구불거리는 길은 경험했던 미국의 환경과는 현저히 달랐다. 이러한 가운데 제기된 “끊임없이 변하는 풍경의 본질을 어떻게 포착할 것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은, 다채로운 시각적 표현 기법을 실험하는데 중요한 동인이 된다. 귀환을 환영하며, 갤러리 1은 ‘요크셔로 돌아가다(Return to Yorkshire)’를 주제로 구성되었다. 18세기 영국의 풍경화가 존 컨스터블(John Constable)과 조지프 말로드 윌리엄 터너(Joseph Mallord William Turner)의 정신을 계승하며, 야외로 나가 수채 및 유화 물감, 목탄 회화뿐만 아니라 사진과 디지털 기술을 능숙하게 활용해 찰나의 순간을 영원히 남기고자 했다. 계절의 순환적 리듬에 대한 고찰은 ‘와터 근처의 더 큰 나무들 또는 새로운 포스트-사진 시대를 위한 모티브에 관한 회화(Bigger Trees Near Warter or/ou Peinture sur le Motif pour le Nouvel Age Post-Photographique)’(2007)에서 정점에 이른다.
내면으로의 시선
앞서, 부친을 향한 친밀한 묘사는 가족 구성원에서 전담 간호사, 친구, 동료 작가로 이어졌다. 아크릴 회화, 아이패드 드로잉, 나아가 광학 기기인 카메라 루시다를 이용해 다층적인 세계를 창조했다. “얼굴은 가장 인상적인 대상입니다. 이는 타인의 내면으로 통하는 관문이며, 모든 것을 함축적으로 드러냅니다”라는 그의 말은 갤러리 4를 가득 채운 60여 점의 초상화를 이해하는 주요한 단서다. 갤러리 내부, 그리고 다수의 작품에서 일관되게 보이는 푸른색 배경은 초기 캘리포니아 회화와의 미묘한 연관성이 있다. 전시는 존재에 관한 대대적인 서사를 지나, 아이패드로 그린 15점의 개성 강한 자기표현인 ‘자화상(Self Portraits)’(2012)으로 마무리된다. 한편, 2008년 컴퓨터를 작업에 도입한 이래로, 직관적인 기술의 출현은 호크니가 창작의 날개를 펼칠 수 있도록 미학적 지평을 열어주었다. 흥미롭게도, 그의 디지털 초상화와 전통적인 작품 사이에는 차별성이 나타난다. 전자는 개인의 고유성을 과감하고 즉각적으로 표출하며, 익살스러운 캐리커처에 근접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후자는 모델에 대한 존경과 애정을 명확하게 전한다.
노르망디에서 전한 희망의 메시지
2019년부터 2023년까지, 호크니는 노르망디의 목가적인 경관에 푹 빠져 있었다. 글로벌 팬데믹으로 인한 고립의 시기에서, 그의 아이패드는 지인들에게 희망을 전하는 매개체였다. 오가는 메시지 속 수선화 그림과 함께 처음 등장한 “기억하세요, 그들은 봄을 막을 수 없습니다(Do remember, they can’t cancel the spring)”라는 낙관적인 문구는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전시의 부제로서 긍정적인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당시 그는 노르망디의 변화무쌍한 날들을 꾸준히 기록하며, 220점의 디지털 연작을 남겼다. ‘2020년을 위한 220(220 for 2020)’이라는 적절한 제목의 이 일련의 작품은 갤러리 5를 장식한다. 이처럼 아이패드는 그에게 시간을 붙잡고, 반복되는 자연의 면면을 놀라운 속도로 부각하는 강력한 도구가 되었다. 더욱이 시야를 넓혀 밤의 모습을 섬세하게 담아낼 수 있게 했으며, 공간에 최적화된 크기를 원활히 조정하는 유연성도 제공했다. 작가의 요청으로 마련된 달의 방(Moon Room)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오직 황금빛에서 차가운 백색으로 변화하는 달빛만이 은은하게 감돈다.
고요한 명상의 여운을 지닌 채 마주하는 갤러리 6은 아크릴 회화 속으로 대중을 인도한다. 늦여름의 사과, 배, 모과나무 그림은 빈센트 반 고흐를 떠올리게 한다. 그는 “반 고흐가 그랬듯 나도 그림을 그릴 때 제일 행복하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갤러리 7에서는 자신이 머물렀던 노르망디 페이 도주(Pays d’Auge) 지방의 저택과 주변 풍경을 그린 잉크 드로잉 대작 ‘라 그랑드 쿠르(La Grande Cour)’(2019)를 감상할 수 있다. 그림자와 소실점을 배제해 원근감을 최소화한 것이 특징인데, 호크니가 작품의 탄생 직전, 감명 깊게 보았던 바이에유 태피스트리(Bayeux Tapestry: 1066년 노르망디 공 윌리엄의 잉글랜드 정복을 기록한 태피스트리)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갤러리 9는 호크니의 지적 호기심을 심층적으로 들여다보며, 프라 안젤리코(Fra Angelico), 클로드 로랭(Claude Lorrain), 폴 세잔(Paul Cézanne),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같은 선구자들과 조우를 시도한다. 갤러리 10은 ‘호크니, 무대를 그리다(Hockney paints the stage)’에 맞춰 드라마틱한 다성음악 창작(Polyphonic Creation)이 울려 퍼진다. 오페라 애호가로, 그는 1960년대부터 이미 커튼, 무대 디자인, 화려한 의상의 등장인물들을 그려왔다. 현장에서는 어린 시절 처음 접한 자코모 푸치니(Giacomo Puccini)의 라 보엠(La Bohème)과 직접 세트와 의상을 제작했던 이고르 스트라빈스키(Igor Stravinsky)의 난봉꾼의 행각(The Rake’s Progress), 더불어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의 마술피리(The Magic Flute) 등 여러 오페라 주요 장면들을 융합해 소개한다. 갤러리의 높은 천장고는 몰입감을 증폭시키고, 감동을 오래도록 간직하려는 이들은 연신 휴대전화와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극적인 시청각 경험의 절정에서, 마지막 갤러리 11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덜 알려진 것(Less is Known than People Think)’을 주제로, 런던에서의 최신작을 공개한다. 에드바르트 뭉크(Edvard Munch)와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에서 영감을 받은 그의 그림들은 다소 심오하게 느껴질 수도 있으나, 그 심연의 의미를 탐색하도록 관람객의 발길을 끌어당긴다. 이와 나란히 놓인 성찰적인 작품 ‘극 속의 극 속의 극 그리고 담배를 든 나(Play wihtin a Play within a Play and Me with a Cigarette)’는 호크니의 친근하면서도 사적인 면모를 엿볼 수 있는 자화상이다. 해당 작품은 공식 포스터에도 반영되었다. 런던 자택의 정원에서 트위드 정장을 입고, 무릎 위에는 작업 중인 콜라주를 올려두었다. 트레이드마크인 동그란 안경테는 노오란 수선화처럼 희망찬 봄의 도래를 알리는 것 같다. 재킷 깃에 단 노란 배지에는 권위적인 억압이나 위세를 이제 그만 멈추라는 단호한 외침 ‘End Bossiness Soon’이 선명히 새겨져 있다. “예술은 공유에 관한 것입니다. 경험이나 생각을 나누고자 하지 않는다면 예술가라 칭할 수 없죠.” 호크니는 우리 모두에게 생동하는 봄의 감각을 일깨우고 교감하고자 한 것이다.
파리=유승주 미술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