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개혁신당 대선 후보와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모두 경의를 표한 의사가 있다. 지난 3월 한 TV 예능 프로그램 출연으로 유명해진 최현욱 우리연합의원 원장(39)이다. 최 원장은 강원 인제군 기린면에서 유일하게 개업의로 활동하고 있는 의사다. 혼자서 하루 평균 100명 이상의 환자를 본다고 한다. 그는 이 프로그램에서 “동네 사람들이 내가 서울 여자를 만나 떠날까 봐 걱정한다”며 “제가 없으면 안 돼서 떠나진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방송이 나온 직후 이 후보는 SNS를 통해 “헌신에 경의를 표한다”고 했고, 이 총재는 지역균형발전을 주제로 한 포럼에서 “깊은 존경심을 느꼈다”고 했다.
황폐화한 지방 의료
최 원장의 사례는 지방 의료의 처참한 현실을 보여준다. 기린면에는 지난해 기준으로 5138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국내 인구 1000명당 평균적으로 의사 2.7명이 있다는 통계청 집계를 감안하면 다른 지역 대비 의사가 12~13명 적은 셈이다. 인제군에 있는 병원과 의원은 우리연합의원을 포함해 모두 여섯 곳에 불과하다. 남·상남·서화면 등 세 개 면에는 아예 병의원이 없다.
지방에서 의사 구하기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강원 속초의료원은 올해 들어 전문의 다섯 명 중 두 명이 사직하면서 응급실 운영에 파행을 겪었다. 4억원대 연봉을 제시하고도 수개월간 충원에 실패하다 이달 들어 전문의 한 명을 채우는 데 그쳤다. 경북 상주적십자병원은 지난해 8월 담당 의사의 사직으로 이비인후과 진료를 중단했다. 후임자 채용에 어려움을 겪으며 아직까지 진료를 재개하지 못하고 있다.
농어촌 의료취약지의 보루 역할을 하던 공중보건의도 찾아보기 힘들다. 인제군뿐만이 아니라 강원도 더 나아가 전국적으로 숫자가 급감하고 있어서다. 병무청에 따르면 지난해 642명이던 공보의 선발 인원은 올해 250명에 그쳤다. 복무 기간이 길어 지원자가 줄어드는 데다 의정 갈등이 겹친 탓이다. 이 때문에 공보의 없이 운영되는 보건지소가 급증하고 있다.
비대면진료라도 허용해야
전라남도는 보건지소 216개 가운데 공중보건의가 없는 곳이 126개로 절반이 넘는다. 지난 1년 사이 42곳이 더 비었다. 인근 지역 공보의가 순회 진료를 하다 보니 운영일이 1주일에 1~3일에 불과한 곳들이다.
지방의 의료 공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1차적으로 의사 수를 늘려야 한다. 윤석열 정부가 추진한 의대 증원은 대한의사협회의 반대와 전공의들의 집단행동에 막혀 사실상 원점으로 돌아왔다. 당분간 추진 동력을 얻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의사 수 확대가 쉽지 않다면 비대면진료라도 터줘야 한다. 의료공백 지역의 주민들이 인근 지역이나 도시로 원정을 떠나지 않더라도 집에서 전화나 화상으로 편안히 진료를 받으면 된다. 비대면진료는 코로나19 사태 당시 한시적으로 허용했다가 2023년 6월 시범사업으로 전환했다. 이후 아직까지 제도화되지 않았다. 이 역시 의사들의 직역 이기주의가 작용한 결과다. 기존 병원 생태계가 재편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크기 때문이다.
의대 증원도, 비대면진료도 안 된다면 그냥 이대로 지방 의료의 붕괴를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 최 원장 같은 의사가 하루에 200명, 300명의 환자를 본다고 한들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의협이 그리는 K의료의 미래는 어떤 모습인지 궁금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