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 무역적자와 미로 속의 제조업[한재진의 차이나 딥시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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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첫 적자 이후 고착화, 올 상반기에만 69억달러
韓제조업 체질변화 속도 못내, 글로벌 '산업장벽'에 갇힌 꼴
늦기 전 산업지도 새로 그려야

  • 등록 2025-07-28 오전 5:00:00

    수정 2025-07-28 오전 5:00:00

[한재진 법무법인 지평 전문위원]2025년 상반기 한국의 대중국 무역수지 적자는 벌써 69억 달러에 이르렀다. 이는 지난해 한 해 동안 기록한 전체 적자 규모에 버금가는 수준이다. 2023년 31년 만에 처음 기록한 이후 대중 무역적자가 반복되며 이제는 일시적인 경기 변동이 아닌 구조적 고착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진단이 더 힘을 얻는다.

이런 적자 흐름 이면에는 단순한 수출 부진을 넘어 산업의 뿌리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는 불편한 진실이 깔려 있다. 무엇보다 중국 첨단 제조업의 가파른 성장과 기술·가격 경쟁력의 무차별적 강화가 결정적이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전기차, 2차전지 등 핵심 산업에서도 중국은 빠른 속도로 수직적 공급망 관계를 수평적 경쟁 구도로 변화시키고 이제는 일부 분야에서 주도권마저 가져갔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2022년 기술수준평가’에 따르면 50개 국가전략기술 중 28개는 이미 중국이 한국을 앞서고 있고 기술 격차 역시 미국 대비 한국과 중국이 각각 3년, 2.2년으로 한·중간 기술 격차가 사실상 사라지고 있다.

여기에 미국의 통상압박과 글로벌 공급망 재편까지 덮치며 ‘대중 무역 흑자’라는 단어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실제로 2025년 상반기 총수출에서 미국과 중국의 비중은 각각 18.6%, 18.1%로 집계돼 22년 만에 최대 수출국의 자리가 미국으로 돌아서는 판도 변화를 예고한다. 단순한 순위 교체 이상의 변화, 한국 제조업 기반의 체질적 전환 신호로 이해해야 할 순간이다.

이제 오랫동안 한국의 중간재가 필요했던 중국은 2016년 ‘중국제조 2025’로 첨단기술 중심 국가 도약을 선언한 이후 산업경쟁력이 급상승한 면모를 보이고 있다. 그 결과 부품 등 자급률이 높아지며 중간재 수출 경쟁력도 강화한 게 사실이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수입하는 중간재 비중은 2016년 27.3%에서 2023년 31.3%로 올라섰다. 중국이 중간재 수입국에서 중간재 수출국으로 ‘질적 탈피’를 준비하는 동안 한국은 제조업 부문의 체질 변화 속도를 내지 못한 셈이다.

유엔산업개발기구(UNIDO) 제조업 경쟁력지수(CIP)에서도 이런 추세가 명확하다. 2023년 기준 경쟁력 상위국은 독일·중국·아일랜드·한국 순이었지만 글로벌 제조업 부가가치 점유율(MVA) 기준으로는 중국이 28%로 압도적인 1위, 한국은 약 2.5%에 머물렀다.

고착화한 대중 무역적자 흐름 속에서 조금씩 제조업 위기의 전조가 보인다. 그런데도 해법은 ‘수출시장 다변화’, ‘연구개발(R&D) 확대’, ‘신흥시장 개척’ 같은 익숙한 단어에 머물고 있다. 하지만 이제 모든 시장은 한국만의 독점 무대가 아니며 중국과 미국의 거대한 산업장벽 앞에서 한국은 ‘미로에 갇힌 쥐’처럼 출구를 찾기 위해 쉼 없이 벽을 두드릴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아세안, 인도, 중동, 아프리카 등 잠재시장은 이미 글로벌에서 치열한 각축장이 된 상황이다. 이제 우리는 ‘수출강국’이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 제조업의 뿌리가 되는 과학기술·혁신역량 자체를 근본적으로 점검하고 스스로의 정체성을 더 냉정하게 재정립해야 한다.

한국경제와 중국경제의 관계도 한때의 커플링에서 점차 디커플링의 시대를 맞고 있다. 우리 경제가 나쁘다고 중국경제도 나쁜 건 아니다. 최근 발표된 중국의 2분기 국내총생산(GDP) 속보치는 5% 이상의 성장을 다시 기록하며 미국발 관세 압박에도 투자만 일시 위축됐을 뿐 소비와 수출은 회복세를 보였다고 전했다. 1% 성장에 그치며 저성장에 고착된 우리 현실과 대비된다.

이제 중요한 것은 미로에서 반복적으로 벽만 두드리다가 지치기 전에 산업의 지도를 새롭게 그리고 체질과 뿌리부터 다시 묻는 제로베이스 전략(Zero-based Strategy)을 모색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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