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위기 대응 위해 시급한 금융감독 개편

1 week ago 11

[다산칼럼] 위기 대응 위해 시급한 금융감독 개편

많은 국가가 주기적으로 금융위기를 겪는다. 이를 사전에 완전히 방지할 방안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위기마다 교훈을 되새겨 제도를 보완하고 재발을 막는 것이다.

1997년 외환위기는 우리 금융감독체계를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금융감독위원회가 신설됐고, 한국은행의 감독 기능은 대폭 축소됐다. 당시에는 금융기관 간 연계성이 높아지며 기존 업권별 감독체계로는 위기 대응이 어렵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에 따라 은행, 증권, 보험을 통합해 감독할 수 있는 금융감독원이 출범했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또 다른 도전 과제를 던졌다. 개별 금융기관의 건전성에만 초점을 맞춘 미시건전성 감독체계가 금융시스템 전반의 불안정을 간과했음을 보여줬다. 따라서 거시적 안목에서 금융 안정을 도모하는 ‘거시건전성 정책’의 중요성이 부각됐다. 하지만 금융위기의 진앙이 선진국이었고 한국은 직접적 위기를 겪지 않았기에 제도 개선의 시급성을 느끼지 못했다.

뒤늦게나마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정부 부처 개편과 함께 금융감독체계 개편이 논의되고 있다. 핵심은 금융위 재편과 함께 금융감독 기능을 건전성과 소비자 보호로 분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개편만으로는 기존의 구조적 문제들을 해결하기 어렵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그 이유는 주로 한은의 역할과 관련이 있다.

첫째, 현재 논의는 미시감독 기능에 집중돼 있어 금융시스템 전체의 안정성을 책임질 거시건전성 정책의 주체가 명확하지 않다. 다수 선진국은 중앙은행이 건전성 감독 기능을 전담하거나 상당 부분을 분담하면서 거시건전성 정책의 핵심 기관으로 기능한다. 한국은 금감원이 영국 금융감독청(FSA)을 본떠 도입됐지만 정작 영국은 2013년 이후 FSA를 폐지하고 건전성 감독 기능을 영국 중앙은행으로 이관했다.

둘째, 거시건전성 정책과 통화정책이 조화롭게 작동할 수 있는 체계가 마련돼 있지 않다. 2011년 개정된 한은법은 법적으로 한은의 목적 조항에 물가 안정뿐만 아니라 금융 안정을 명시함으로써 한은이 금융 안정을 고려해 통화정책을 운영하도록 했다. 하지만 금융 안정의 핵심 거시건전성 수단인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이나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등은 여전히 금융위가 독점하고 있다. 이런 제도적 미비는 2024년 초 보금자리론 확대와 DSR 유예에서 분명히 드러났다. 당시 자영업자 등 취약차주 보호와 부동산시장 연착륙이라는 분명한 정책적 목적이 있었지만, 유기적 협력 부재로 부동산 과열과 가계부채 증가라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이에 경기 둔화 우려에도 불구하고 한은은 금리 인하를 주저했다. 당시 상황을 고려할 때 스트레스 DSR 확대 적용을 예정대로 시행함으로써 거시건전성을 확보하고 통화정책의 유연성을 높일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금융감독체계 개편 논의에는 한은을 거시건전성 감독 주체 중 하나로 명시적으로 포함시킬 필요가 있다. 한은은 거시경제를 고려한 통화정책을 수행하는 기관인 만큼 시스템 리스크를 다루는 데도 강점을 지닌다. 이런 특성은 다른 정책기관과의 협력에서 더욱 중요하게 작용한다. 특히 금융 안정 정책은 여러 부처의 이해와 정책 목표가 충돌할 수 있는 영역이므로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유관 부처 간 긴밀한 협력이 필수적이다. 한은이 법적으로 금융 안정 책무를 부여받았음에도 금융 불안정 시 정부와의 정책 공조에 소극적이었다거나 특정 정책 수립에 주저했다는 지적도 제기돼왔다. 따라서 한은이 거시건전성 정책 결정에 제도적으로 참여하도록 보완해 책무와 수단을 명확히 하고, 통화정책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기획재정부, 금융위, 금감원 그리고 한은이 각기 다른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하는 현재 구조로는 금융위기를 사전에 막기 어렵다. 최근까지 운영돼온 이른바 ‘F4 모임’은 법적 근거가 없는 데다 의사결정의 투명성과 책임도 불분명하다. 이 협의체는 구성원의 성향이나 역량에 따라 운영이 좌우되기 쉬우며 2024년의 정책 혼선은 그 한계를 명확히 드러낸 사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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