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 셋째 날인 지난 17일(현지시각) 오전 10시. 행사가 열리고 있는 메세 프랑크푸르트 입구부터 바로 위층 입장권 구매처까지 관람객들이 꼬리를 물고 줄지어 섰다. 이날부터 일반 관람객 대상으로 입장권 판매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도서전 측은 초반에는 출판권 거래를 중계하는 에이전트 등 업계 관계자에게만 입장권을 판다. 통상 2~3일이 저작권의 시간이다. 후반부에는 일반 관람객에게도 입장권을 판매한다.
일반 관람객들이 도서전에 입장하는 첫날인 이날, 평일인데도 인파가 몰리자 테러 등을 우려한 경비도 삼엄해졌다. 경호원들은 입장 직후 큰 가방을 맨 관람객은 따로 불러내 가방을 열고 위험한 물건이 있는지 검사했다.
獨 대표 신문사들도 독자 맞이해
현지 관람객들이 몰린 건 역시나 독일 출판사들이 모여 있는 3홀이었다. 독일을 대표하는 세계적 예술·디자인 전문 출판사 타셴은 두껍고 무거운 '벽돌책'을 전면으로 내세워 독자들의 발길을 묶어뒀다. 한 관람객은 오랫동안 서서 책을 들여다보다가 다리에 쥐가 나 바닥에 누운 채 현장 요원의 응급처치를 받기도 했다.
지역 신문들도 부스를 차리고 현장 관람객 한정 구독권 배포, 유명 인사 강연 같은 행사를 이어갔다. 비치된 종이신문에는 도서전 기간에 맞춘 기획 기사가 대대적으로 실렸다. 독일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신문 중 하나로 프랑크푸르트에 본사를 둔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FAZ)', 독일에서 널리 읽히는 주간지 '디 차이트(Die Zeit)' 등의 부스에는 독자들이 몰려 주변을 지나갈 수 없을 정도였다.
도서전에 4년째 참가하고 있다는 한 한국 출판 에이전트는 "매년 주말에는 특히나 독서광들이 몰린다"며 "책 속 등장인물로 분장한 코스튬 플레이어들도 만나볼 수 있다"고 전했다.
출판권 거래 '막바지 총력전'
도서전이 일반 관람객 행사로 전환됐다는 건 출판권을 거래하는 출판 에이전트나 스카우터에게는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의미다. 홍보 부스에 관람객이 밀려들고 전시된 책을 구매하기 시작하면 전문적인 계약 논의를 이어가기 쉽지 않아서다. 영미권이나 유럽 '큰손'들은 초반 며칠만 도서전 자리를 지킨 뒤 책상을 정리하고 떠난다.
이날 6홀 3층(현지 기준 2층)에 마련된 '문학 에이전트 및 스카우트 센터(LitAg)'에 들어서자 마치 벌떼를 마주한 것처럼 웅웅대는 큰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125개국에서 참가한 출판인들이 591개 책상에서 판권을 팔 책을 홍보하고 또 사들이고 싶은 책에 대해 문의하는 대화가 울려 퍼졌다. 한 한국 에이전트는 "빈손으로 귀국할 수 없기 때문에 막판 논의가 더욱 치열한 것 같다"고 했다.
출판 에이전트 등은 15분 또는 30분 단위로 약속을 잡고 서로의 책상으로 달려가 자료를 건네고 회의를 진행했다. 한강에 이어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까지 2년 연속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의 판권 계약을 대행하고 있는 로렌스 랄루요 RCW 국제부문장(문학 에이전트)에게는 대화의 틈이 좀처럼 허락되지 않았다. 그를 만나기 위해 각국 출판인들이 여름부터 줄줄이 약속을 잡아둬서다. 이어지는 회의 끝에 잠시 책상에서 일어선 그에게 인터뷰를 요청하자 "크러스너호르커이와 통화를 해야 한다. 시간이 너무 없다. 정말 미안하다"며 어딘가로 달려 나갔다.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 주최 측은 이날 "올해 도서전 초반 3일간 참여한 출판 전문가가 전년 같은 기간보다 3% 이상 늘어 마지막 날까지 총 11만8500명에 이를 것으로 예측된다"며 "LitAg에는 32개국에서 온 321개 에이전시가 자리 잡았다"고 발표했다.
주최 측에 따르면 이번 행사에서 영미권 5대 출판사 중 하나인 하퍼콜린스는 세계적 베스트셀러 SF 작가 R. F. 쿠앙의 신작 4권을 계약하고, 파버 출판사는 올해 부커상 최종후보로 호명된 소설가 벤 마르코비츠의 신작 <스타팅 아웃(Startiong Out)>을 2027년 봄께 출간하기로 했다.
팔레스타인 문제로 보이콧 움직임도
주최 측은 올해 도서전의 성과를 강조하지만, 뒤편에서는 임대료 부담, 공간 재배치와 정치적 문제를 둘러싼 갈등도 있다.
FAZ는 이날 '높은 부스 임대료와 새로운 계획이 불만을 불러일으키다'는 제목의 온라인 기사를 내보냈다. 도서전 주최 측은 일반 관람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내년부터 일반 관람객이 많은 출판사들에 낮은 층을 배정하기로 했다. 이를 둘러싸고 출판사나 기관별로 입장차를 보이는 것이다. 이 기사는 코로나19 이후 부스 임대료가 인상돼 부담이라는 소규모 출판사들의 지적도 담았다.
참가자들 사이에서는 올해 관람객들이 앉아 쉴 수 있는 '릴랙스 존(relax zone)'이 늘어난 건 부스 판매가 저조했기 때문이라는 얘기마저 나왔다. 한 출판계 관계자는 "홍보 부스를 마련하지 않고 LitAg에서 저작권 계약 논의만 하는 게 '남는 장사'라는 얘기가 많다"고 했다.
이날 도서전 행사장인 메세 프랑크푸르트 길 건너에서는 팔레스타인 국기를 단 채 '보이콧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 시위 겸 행사가 열렸다. 도서전 주최 측은 2023년 팔레스타인 작가 아다니아 쉬블리에게 상을 수여하기로 했다가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을 이유로 시상식을 미뤘다. 이때부터 지금까지 '도서전이 이스라엘과 유대계에게 포섭됐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도서전 참가 거부·불매 운동도 벌어진다.
주최 측은 갈등 해소를 위한 노력 중이다. 오랜 전통을 깨고 올해부터 전체 행사 기간에 관람객에게 전시된 책을 판매할 수 있도록 했다. 부스 임대료 부담을 그렇게라도 덜어주려는 것이다. 또 이스라엘 정부의 검열에 맞서고 있는 팔레스타인 서점 주인 마흐무드 무나 등을 연사로 초청했다.
프랑크푸르트=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