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우리 교육도 일부는 비슷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 정해진 시간 안에 똑같은 내용을 배우고, 쉼 없이 몰아세워 빠른 속도로 다음 단계로 이동하게 된다. 그러나 현실에서 모든 아이가 같은 속도로 배우지는 않는다. 최근 경계선 지능, 흔히 ‘느린 학습자’라고 불리는 아이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들은 배우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고 표현하는 데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기다리는 데 익숙하지 않은 우리 교육 현장에서는 느림을 종종 학업 실패로 여기고, 이를 개별 학습자의 책임으로 귀인하는 악순환에 빠진다. 결국 아이들은 ‘느린 학생’이 아니라 ‘문제 학생’으로 남겨질 수 있다.
느린 학습자 교육은 더 빨리 따라오게 만드는 교육이 아니다. 오히려 자기 속도로 배우더라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교육에 가깝다. 패스트푸드와 대비되는 슬로 푸드를 떠올려 보면 이해를 도울 수 있다. 단순히 천천히 먹는 것이 아니다. 내가 먹고 있는 음식의 원재료 모습을 떠올리고, 조리 과정에 대해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것이 필요하다. 역시 속도보다 이해를, 경쟁보다 관계를, 결과보다 과정을 중요하게 여긴다.이런 의미에서 느린 학습자를 위한 ‘SLOW’ 교육 접근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몰아세우거나 남들이 세운 기준에 맞추지 않고 지속 가능하고(Sustainable), 학교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살고 있는 공공 및 민간 공동체에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Localized), 연령 및 발달 단계에 눈을 맞추어 체계적으로 구성하고(Organized), 학습·정서·사회성을 전인적으로(Whole) 다뤄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학령기 초기 개입이다. 느린 학습자의 어려움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더 축적돼 나타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공공부문에서는 교육부와 17개 시도교육청이 초중등 느린 학습자를 위한 제도적 기반과 진단 및 교육 프로그램을 본격적으로 준비해 시행하고 있다.
민간부문 교육 주체들의 참여 또한 확장되고 있다. 느린 학습자 관련 부모단체에서도 자녀들의 교육적 요구를 이해하고 인식을 확산하고자 노력하고 있으며, 다양한 지역사회 중심 지원 모델들도 주목받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 가운데 하나가 기업과 복지법인의 사회공헌사업으로 진행되고 있는 ‘천천히 함께’ 교육 지원이다. 접근성이 높은 지역사회 자원인 퇴직 교원과 경력 강사를 연계해 느린 학습자에게 학습뿐만 아니라 정서와 사회성 프로그램을 함께 제공하는 지속 가능한 개별화 프로그램으로 구성된다.본질에 충실한 교육혁신이 ‘함께 기다리며 우리 아이가 이해할 때까지 천천히’ 다시 시도할 기회를 주고, 관계를 이어가는 격려와 균형의 모습으로 완성되길 기대한다.
김동일 서울대 평생교육원 원장·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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