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만에 한국에 돌아가 성남아트센터(7월 26~27일)에서 지젤 2막 파드되에 처음 도전합니다. 설레고 기쁜 마음으로 준비하고 있어요. 부상 때문에 지난해에 참가하지 못했는데, 이 기회가 더없이 소중합니다."
네덜란드국립발레단에서 활동하는 박상원(21)은 지난 22일 아르떼와 전화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혔다. 만 18세던 2023년 2월 초, 그는 스위스 로잔 콩쿠르에서 3위(여자 중 1위)를 차지하며 여러 발레단의 주목을 받은 인물이다. 그해 공동 1등이 주니어였기 때문에 박상원이 발레단에 바로 입단할 수 있는 무용수 중 등수가 가장 높았다.
콩쿠르 당시 파이널 무대가 끝난 직후, 커튼이 닫히자 네덜란드국립발레단 관계자가 달려왔다. 바로 입단 계약을 하자는 것이었다. "당시 한국예술종합학교 진학을 앞두고 등록금을 낸 상태였어요. 갑작스런 제안이었지만 발레 무용수로 뛸 수 있는 시간을 재어보니 하루라도 빨리 프로무대에 나가야겠더라고요. 그 해 8월 주니어컴퍼니로 입단했습니다."
네덜란드국립발레단은 다국적 단원, 다채로운 레퍼토리와 한스 판 마넨과 같은 저명한 상주 안무가를 보유한 세계적인 단체다. 한국에는 영국 로열발레단이나 프랑스 파리오페라발레단과 같은 인지도는 아니지만, 글로벌 무대를 꿈꾸는 '춤꾼'들은 이곳 입단을 선망한다. 2000년대 초반에는 김지영(전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가 수석무용수로 뛰었고, 유니버설발레단의 솔리스트 한상이도 이곳을 거쳤다. 현재는 한국인 발레리노로 최초 수석무용수가 된 최영규가 간판스타로 활약 중이다.
박상원은 암스테르담에서 시즌을 마무리하고 여름에 한국에 온다. 성남아트센터에서 열리는 '발레스타즈' 갈라 공연과 유니버설발레단의 티칭 프로그램에 초등학교 2~3학년을 가르치는 선생님으로 참여하기 위해서다. 통상 주니어 컴퍼니 2년을 거친 뒤 정단원이 되지만 박상원은 1년만에 네덜란드국립발레단 정단원에 올라섰다. 올해 4월 정단원이 됐는데 이 소식은 지난 연말 호두까기 인형을 준비할 때 일찌감치 예술감독으로부터 전해들었다. 박상원은 "발레단이 수도 없이 공연을 올리고, 한 무용수당 보통 대여섯개의 작품 안무를 익히도록 한다"며 "이 도전적인 과정이 정말 좋다"고 했다.
길면서 우아한 신체 조건, 유난히 둥글게 여문 발등, 우아한 춤선에 많은 사람들은 그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발레를 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가 발레리나가 되기로 맘먹은 건 초등학교 6학년부터였다. "대구의 동네 문화센터에서 발레를 배우다가 전공하려고 서울로 가니 다른 입시생과 격차가 너무 컸어요. 준비 7개월만에 다행히 선화예중에 진학할 수 있었고, 그 후로 발레리나의 꿈이 변한 적은 한번도 없었어요."
네덜란드행도 7개월만에, 예중 입시도 7개월만에 해치웠던 저력이 있어서일까. 그의 발레에 대한 집중력은 어마어마하다. 전화 인터뷰가 이뤄진 날에도 연습실에서 10개 작품의 안무를 익혔다고 했다. "오늘은 '라 바야데르'와 같은 고전 발레, 테드 브랜드슨(단장)의 체어맨 댄스 등 컨템퍼러리 작품까지 다양하게 연습하다 왔어요. 기량이나 표현력이 압축적으로 성장하는 게 느껴져요. 단원들을 보며 많은 자극도 받고요."
박상원에 따르면 네덜란드국립발레단은 무용수의 개성을 가장 중요시한다. "예술감독님은 '각도를 맞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각자의 스타일이 보였으면 좋겠다'고 항상 말씀하세요. 그 점이 한국에서 배웠던 발레랑 많이 달랐죠. 그런데 이젠 러시아, 프랑스, 모나코공화국…. 전부 다른 곳에서 발레를 배워온 사람들이 모였으니 개성을 존중하는 건 당연한 문화라고 생각해요."
콩쿠르에서 이미 최고 기량이 판가름난 덕에 그가 요즘 더 몰두하는 건 연기력이다. 그래서 박상원이 도전하고 싶은건 '로미오와 줄리엣', '오네긴', '마농' 등 드라마 발레다. "2023년 유니버설발레단의 '심청'에서 객원 주역을 했는데, 제 감정이 객석에 전달될 때 전율을 느꼈어요. 이곳에서도 주역 캐스팅을 받아 그 경험을 꼭 해보고 싶습니다."
롤모델이 있을까. 박상원은 바로 옆자리 탈의실을 쓰고 있는 올가 스미르노바를 꼽았다. 스미르노바는 러시아 볼쇼이 발레단의 프리마 돈나였는데 전쟁을 일으킨 조국에 환멸을 느꼈다. 볼쇼이를 등진 그는 2022년 네덜란드국립발레단에 입단했다. "올가 스미르노바를 볼때마다 경외심이 들어요. 클래스를 할 때도, 같이 무대에 설 때도 항상 눈길이 갑니다. 자신의 실력을 믿기에 신념에 따라 미련없이 새로운 곳에서 도전하는 결단력을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이해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