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경 국내에서 공부 우등생의 필수 능력으로 ‘메타 인지’라는 개념이 유행했다. ‘내가 무엇을 알고 모르는지, 내 실력을 정확히 자각하고 있느냐’로 요약된다. 미국 심리학자 존 플라벨이 처음 제시했고, 한국도 서울 대치동을 시작으로 전국에 퍼지기 시작했다.
인공지능(AI) 시대가 되자 한 발 더 나갔다. 자신의 내면과 감정을 직시하고 조절하는 능력을 강조한 ‘메타 필링’ 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지난 15일 국내 출간된 저서 <메타필링 :성공과 행복을 결정짓는 감정의 기술>을 통해서다.
○교육사업가·학자의 의기투합
메타필링은 초·중등 영어학원 브랜드 ‘최선어학원’으로 잘 알려진 DYB교육그룹의 송오현 회장과 김성태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가 수년간 머리를 맡대며 치열하게 공부한 끝에 나온 개념이다.
송 회장은 지난 23일 “20·21세기 초반 교육은 지식을 쌓으며 내 머릿속에 얼마나 많은 것을 채워넣고 외우는지가 중요했다”며 “인공지능(AI) 시대에는 모르는 것을 잘 받아들이고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같은 반 친구들과 경쟁해서 앞서나가는 것을 강조하던 시대, 나만 잘하면 되는 시대가 끝이 나고 있다”며 “팀워크에 기여하면서, 상처받은 마음을 빠르게 회복할 수 있는 탄력성을 갖춘 사람이 대우받게 된다”고 말했다.
송 회장은 고려대 중어중문과를 졸업한 후 헬싱키경제경영대학원 석사, 숭실대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포스코에서 근무하다 서울 대치동에서 영어학원을 시작해 32년간 사교육 시장을 이끌었다. 최선어학원은 현재 직영·가맹을 포함 전국에 30곳이 넘는다.
김 교수는 고려대에서 미디어학부 학생들을 대상으로 데이터 인문학, AI와 빅데이터 분석 등을 가르치고 있다.
교육사업가와 대학교수가 의기투합한 것은 각자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느낀 갈증 때문이었다. 1988년도에 군 생활을 함께 한 구면이었지만 실제로 함께 공부하기 시작한 것은 30년 뒤였다. 지인 소개로 4년여 전 다시 만나 송 회장의 개인 공부방과 카페 등에서 함께 공부하기 시작했다. 매주 1~2차례 만나 2시간씩 영어 원서나 영자신문 기사를 함께 읽었다. 미래 인재교육에 도움이 되는 주제면 가리지 않고 읽고 토론했다. 술이나 골프로 시작하는 중년 남성의 친목도모가 아니었다. 오로지 공부와 식사만 하는 ‘이문회우(以文會友)’ 과정이었다.
○지식의 성(城) 보다, ‘감정의 우물’ 깊게 파야
두 사람은 4년에 걸친 스터디를 통해 “지식의 성을 쌓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뜻을 모았다. 인내심을 강조해온 그간 교육법 대신, 학생들이 행복하게 성장할 수 있는 방법론을 찾자는 것이었다. 송 회장은 “메타인지 개념을 국내 사교육 현장에 처음으로 적용해 큰 효과를 봤다”며 “어떤 환경을 조성해주느냐, 학습을 받을 아이들의 감정상태를 미리 살폈느냐에 따라 자녀들의 학습효과가 크게 달라지는 모습을 봤다”고 했다. 메타인지에 이어 AI시대에 맞춰 교육의 판도를 바꿀 새로운 키워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인공지능이 갖추지 못한 인간만의 매력을 강조하며 “인공지능은 있어도 인공지혜 라는 것은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책에는 메타필링의 중요성과 방법론을 자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빨리 털어버리고 일상을 찾는 ‘회복탄력성’을 어떻게 가질 것인지에 대한 방법도 실었다. 동기부여와 공감,경청 등의 키워드를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기복이 덜한 탄탄한 감정상태와 건강을 유지한다면 학습능력이 크게 배가된다는 과학적 근거도 수록했다. 김 교수는 “각주로 인용한 국내·외 참고문헌만 600편이 넘는다”며 “가볍게 ‘기분이 좋아지는 책’ 정도에 그치려 하지 않았다. 전 세계의 문헌을 뒤져 효과적인 트레이닝 방법을 찾고 감정이 삶과 일에 미치는 영향을 증명하려 했다”고 말했다.
책 말미에 수록한 ‘감성지능 측정 설문지’가 눈에 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침착함을 잘 유지하는지, 자신은 상황대처에 충동적인지 등 50개의 자가진단 문항을 수록했다. 점수를 매겨보고 자신의 감성지능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가늠해볼 수 있다. 송 회장은 “학부모 대상 강연이나 상담 때 자주 활용하는 문항들”이라며 “자녀가 학업을 잘 하려면 부모가 행복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훈련과 루틴으로 감정 다스려라
내 자녀가 역경과 고난에 강하길, 단단한 정신으로 세상을 헤쳐나가길 바라는 마음은 어느 부모나 같다. 하지만 치열한 경쟁의 입시 환경에 노출되면 지식 위주의 학습으로 자녀를 내몰기 바쁘다. 두 사람이 메타필링을 키워드로 내세운 것도 이 때문이다.
김 교수는 “현재 한국은 감정적으로 화가 나 있는 상태”라며 “양극화와 불평등 등으로 인해 욱 하는 사회가 된 지 오래”라고 짚었다. 감정조절에 어려움을 겪는 사회가 되지 않기 위한 해답도 제시했다. 그는 “대학 강의 때 수업 중 핸드폰이 울리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 강의에 집중하지 못하고 딴짓을 하더라도 옆 사람을 방해하지 않는 것 등 배려와 공감의 훈련이 부족한 학생들이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인공지능이 딥러닝으로 거듭나는 만큼, 인간은 ‘딥 필링(Deep feeling)’ 훈련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책에는 회복탄력성을 기르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도 제시했다. 송 회장은 “루틴과 생활 습관이 정말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자기방을 정리하거나, 잠자기 3시간 전에는 물 외에 아무것도 먹지 않으려는 노력, 밥 먹을 때 수저를 먼저 놓아주려는 것 등이 대표적인 루틴이다.
또 하나는 전폭적인 지지와 응원이다. 그는 “부모나 선생님이나 친구 등 주변인 중 단 한사람이라도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자녀는 안심해도 된다”고 덧붙였다. 앞서가라고 가르치는 ‘학부모’가 되지 말고 함께 가라고 가르치는 ‘부모’가 되라고도 조언한다. 지식 축적 기반 교육을 받았던 한국의 전통 엘리트들 시대가 지나고 있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송 회장은 “까라면 까는 식의 상명하복 시대가 저물고 있다”며 “상대를 높이는 겸손과 경청, 바른 질문과 적극적인 감사 표현 등이 미래 한국을 이끌어갈 엘리트들에게 필요한 자질”이라고 말했다.
두 사람이 4년 전부터 매주 쌓은 ‘지식 브로맨스’는 최소 몇년은 더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메타필링에 이은 다음 시리즈 책을 준비하고 있어서다. 메타인지와 메타필링 능력을 모두 갖춘 인간, ‘메타 캐릭터’를 구축하는 방법에 대해서다. 고대 그리스어로 ’~를 넘다. 초월하다‘는 뜻의 메타를 미래를 대비하는 키워드로 띄우겠다는 구상이다.
김 교수는 “나만의 세계에 갇힌 사람이 아닌, 사회 속에서 잘 살아가는 법을 공유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다음 저서 취지를 설명했다.
송 회장은 교육 기업을 운영하며 얻은 통찰을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계속 쏟아부을 예정이다.
“학원업을 하다보니 교육과 사업을 동시에 해야 했는데, 올바르게 교육하겠다고 마음먹으니 사업은 저절로 따라왔습니다. 교육은 득심(得心), 학생의 마음을 얻는 과정이라고 늘 강조합니다. 메타인지와 메타필링을 잘 훈련한 메타 캐릭터로 학생들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박종필 기자 j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