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 첫 집권당 대표 선거는 대놓고 “더불어이재명”을 외친다. 수직적 당정관계로 폭망한 국민의힘도 여당 때 대놓고 충성 경쟁을 벌이진 않았다. “이재명 대통령 눈빛만 봐도 통한다”(박찬대 의원), “나는 안 봐도 안다”(정청래 의원) 같은 말이 난무한 이번 선거는 국힘과 비교해도 가볍고, 그래서 더 겁난다.
지금까지 나온 충남과 영남 권리당원 투표 결과는 정청래 63%, 박찬대 37%다. 수해로 순회경선이 연기돼 2일 전당대회날, 1일까지 실시된 국민여론조사와 당일 대의원 선거를 합산해 최종 결과를 발표한다. 대의원 15%, 권리당원 55%, 국민여론조사 30% 방식이다.
정치 고관여자가 아닌 사람은 여기서 나처럼 헷갈릴 것이다. 대의원은 뭐고 권리당원은 또 뭔가. 힌트를 드리자면, 2023년 이 대통령의 당 대표 시절 혁신위원회는 대의원제 무력화를 주장했다. 이번엔 정청래가 대의원 투표권 폐지를 공약했다.
● 누가 누가 더 쎈가…‘개딸빠시즘’ 경쟁‘당원중심주의’라는 말은 ‘국민주권정부’라는 이재명 정부 주장처럼 아름답다. 하지만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주요 국가에선 대의원 권한이 상대적으로 강하다(국회입법조사처 2024년). 당원 참여 확대에 치중하는 민주당은 자칫 개딸빠시즘(개딸+‘빠’+파시즘)으로 치달을 공산이 크다. 국회가 밉다고, ‘국민주권정부’라고 , 국회를 없애고 직접민주주의 할 순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당 대표 선거가 갈수록 강성으로 치닫는 것도 대의원 비중이 줄고 권리당원 비중이 늘어나서다.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 강선우 사퇴 17분 전, 박찬대는 자진사퇴를 요구했다. 그게 ‘명심’으로 알려지자 정청래는 “당심만 믿고 간다”고 외쳤고 그의 지지자들은 박찬대를 ‘수박’이라고 공격했다. 개딸들의 ‘아빠’가 이 대통령이었다(그런데 지금은 ‘명심’이 당심보다 유연한 것처럼 보인다). 흥미진진하지 않은가. 이번에 개딸들은 누굴 택할지. ● “싸움은 정청래” “대화는 박찬대” 안 되나개딸은 여야개싸움을 원할지 몰라도 다수 국민은 그렇지 않다. 투표하는 권리당원이 많다해도 민주당 지지자는 그보다 많다. 중도와 온건보수층은 훨씬 더 많다. 민주당은 개딸만의 당이 아니란 말이다.
민주당이 당비 내는 당원들만의 정당이라고 권리당원들은 믿고 싶겠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내가 낸 혈세도 민주당에 정당보조금으로 들어간다. 2024년에도 당신들이 낸 당비(342억원)보다 국고보조금(438억원)이 더 많았다. 그렇다면 당 대표 선거에도 개딸 투표를 55%나 반영할 게 아니다. 일반국민 투표를 더 반영해야 형평에 맞는다. 여론조사 말고 국민참여경선 같은 진짜 투표말이다.
● 강성 지지층 때문에 정치 극단화-양극화
정치가 갈수록 극악스러워지는 것도 강성 지지자 탓이 크다. 당원이 급격히 증가했지만 정당은 극단적 지지층만의 결집 공간으로 축소되는 양상이다(윤왕희 2024년 논문 ‘당내 민주주의의 전개 양상과 당원의 대표성’). 경선 룰을 바꿔 쉽게 당선된 당 대표는 강성 당원 지지자를 기반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정서적 양극화를 극대화하는 손쉬운 선거전을 벌이고 있다.
개딸의 힘과 윤석열의 뻘짓과 어마무시한 행운이 겹쳐 이 대표는 대통령에 등극했다. “이재명 정부의 성공을 돕겠다”는 여당 대표도 개딸에만 의지할 것인가. 그래도 여당 시절 국힘 대표는 지금의 민주당 같진 않았다. 대통령과 맞서다 쫓겨날지언정 국민 앞에 직언을 강조하는 염치가 있었다.
● 과거 국힘 대표 선거에선 “직언” 강조
이들 윤핵관과 대통령실의 노골적 지지로 2023년 3월 당 대표에 당선된 김기현은 그러나 국민이 보는 데선 직언을 내세울 줄 알았다. 후보자 TV토론회에서 “당대표로서 대통령 생각이 다를 때는 대통령 생각을 우선할 것”이라는 서술문에 안철수·천하람·황교안 후보는 모두 O 팻말을 든 반면 김기현만 X를 든 것이 한 예다.
김기현은 그해 말 결국 물러났다.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공천에도 윤심 개입 의혹이 불거져 있다. 만약 당시 여당 대표 김기현이 당차게 X했더라면, 혹시 아는가. 윤석열이 개과천선하고 그리하여 역사가 달라졌을지.
● 민주당 선택지에는 직언이 없다
아무리 이재명 일극체제로 다져진 민주당이지만 명색이 여당으로서 첫 대표를 뽑는 이번 선거에선 귀를 씻고 들어도 ‘직언’ 소리가 없다. ‘쓴소리’는 있었다. 16일 첫 TV토론에서 ‘대통령에게 쓴소리하는 여당 대표가 될 수 있는가’라는 공통 질문에서다.
정청래는 투사이자 호위무사답게 “대통령과 한 몸처럼 움직이겠다”고 굳이 서론을 붙이고는 “쓴소리할 때는 하겠지만 성공을 위해서만 노력하겠다”고 했다. 박찬대는 안정적 관리자 라는 이미지답게 “꼭 필요한 쓴소리가 있다면 과감하게 말씀드릴 수 있다” 하고는 “물론 공개적으로 말씀드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굳이 덧붙였다.
쓴소리와 직언은 비슷하지만 다르다. 쓴소리는 ‘듣기에는 거슬리나 도움이 되는 말’인 반면, 직언은 ‘옳고 그른 것에 대하여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기탄없이 말함’을 뜻한다. 대통령에게 쓴소리를 할 때는 이 말이 거슬릴지, 과연 도움이 될지 몇 번씩 따져봐야 할 판이다.
● 간신 돌격대장 하려면 정당보조금 없애라
여당 대표의 직언이 중요한 것은 국힘의 현재만 봐도 알 수 있다. 여당은 대통령을 지원하면서도 견제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걸 못해 저 모양이 된 것이다. 문재인 정권에서 정무비서관을 했던 민주당 김한규 의원도 “여당 대표는 대통령께 직언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자리”라고 했다. 대통령실 참모는 언제든 교체될 수 있어 직언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민주당 대표 선택지에는 직언이 아예 빠져 있다.
지난달 말 열린 마지막 TV토론에선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의 특별 사면을 대통령에게 건의하겠는가’를 묻는 OX 질문이 나왔다. 패기 넘치던 정청래는 팻말을 들지 않았고 박찬대는 가운데로 세워들었다. 소신은커녕 대통령의 ‘고유권한’만 존중하는 딸랑딸랑 뿐이다.
누가 되든 대통령의 충직한 아바타로서, 그저 야당과 싸워 무찌르겠다는 여당 돌격대장을 목도하는 것도 괴롭다. 그럴 바에야 나라 재정도 아낄 겸 정당보조금부터 없애기 바란다. 그거 1980년 전두환 국보위 개헌 때 들어간 조항이다.
김순덕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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