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욱의 고전 읽기] 타락한 정치 속에서 핀 이상 국가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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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아테네 학술원 앞에 있는 플라톤 동상.  Getty Images Bank

그리스 아테네 학술원 앞에 있는 플라톤 동상. Getty Images Bank

플라톤은 거인이다. ‘서양철학은 플라톤의 각주에 불과하다’는 철학자 앨프리드 화이트헤드의 평은 사족에 불과하다. 플라톤을 키운 것은 참혹한 시대상이었다. 그는 펠로폰네소스전쟁이 발발한 지 3년 후(기원전 428/427년)에 태어났다. 조국 아테네가 스파르타에 패망하는 것을 목도했고, 과도정부인 ‘30인 참주’가 들어서 과두정 쿠데타를 일으키는 것도 경험했다. 그의 생애는 전쟁과 정치적 혼란이 끊이지 않은 격변기였다.

무엇보다 스승 소크라테스가 ‘부당한 판결’로 죽은 것은 플라톤의 사고에 큰 흔적을 남겼다. 그는 조국이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를 곱씹었다. ‘실패 국가’ 아테네의 정치적 혼란 속에서 플라톤의 정치사상이 싹텄다.

[책마을] 타락한 정치 속에서 핀 이상 국가의 꿈

혼돈을 벗어나고자 플라톤이 갈구한 것은 ‘탁월함’(아레테)이었다. ‘가장 뛰어난 자’의 리더십을 중시했다. 그의 대표작 <국가>에서도 이런 사고가 두드러진다. 플라톤이 이상적 국가에 필요한 지도자 모델로 정치권력과 철학을 한 몸에 구체화한 ‘철인 왕’을 제시한 것은 널리 알려진 사례다. <국가>는 플라톤 철학의 총체가 담긴 작품이다. 이 책은 양육 이론과 정치 질서, 윤리, 법률, 정부의 정당성 등을 다룬다. 음악 이론과 신학, 심리학까지 포괄한다. 눈에 띄는 것은 ‘정치의 타락’에 대한 경고다. 플라톤은 정부 형태를 ‘내림차순’으로 분류했다. 가장 바람직한 정체(政體)로 거론되는 것은 아리스토크라티아다. 흔히 ‘귀족정’으로 옮겨지지만, 원래는 ‘최선자의 지배’라는 의미다.

하지만 ‘최고의 국가’는 영원할 수 없다. 통치자 개인의 야망과 의지가 커지면서 금권정치(티모크라티아)로 타락한다. 이는 다시 통치자와 피치자 간 ‘이해관계의 다툼’으로 전락한다. 이를 플라톤은 “각자의 금고가 금권정치를 무너뜨린다”고 표현했다. 그 결과 과두정(올리가르키아)이 부상한다. 과두정은 “필연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의 나라와 부유한 사람들의 나라”로 나뉘어 갈등이 증폭된다.

과두정은 ‘모든 욕구를 차별 없이 해소하는’ 것을 앞세운 민주정(데모크라티아)에 자리를 내준다. 플라톤이 말한 데모크라티아는 법치주의와 권력분립에 기초한 현대 민주주의와는 별개로 ‘중우(衆愚)정치’에 가깝다. 그마저도 무정부 상태가 빚어져 손쉽게 참주정(티라니스)으로 변질된다.

대립의 끝은 폭정(참주정)이었다. 권력을 쥔 강자가 그들에게 이익이 되는 법을 제정했다. 올바른 것이란 ‘더 강한 자의 편익’에 불과했다. 이런 타락의 과정을 플라톤은 ‘아름다운 나라’(칼리폴리스)가 고름이 부풀어 오른 듯한 ‘염증 같은 나라’(플레그마이누사폴리스)로 전락하는 것으로 그렸다.

플라톤이 모색한 해법은 무엇일까. 올바른 공동체를 세우기 위해 올바른 지배자를 세우는 것이었다. 바로 ‘철학자의 지배’였다. 또 “자기 일을 하는 것”이라는 문구처럼 모든 이가 전체의 성공을 위해 자기 능력에 맞는 업무를 완수하고, 재능에 따라 계층이 배정되길 바랐다.

이 책은 대화체로 쓰였다. 스승 소크라테스처럼 플라톤도 자신의 철학을 문자화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타협책이 대화 형식이었다. 해석은 독자의 몫이 됐다. ‘엘리트 사회’부터 ‘전체주의 원조’까지 2500년간 플라톤은 시대에 따라 달리 받아들여졌다. 지금도 여전히 새롭게 읽힌다.

한경BP 편집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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