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개봉한 영화 ‘해운대’에서 거대한 쓰나미가 부산을 집어삼키는 장면이 생생하게 묘사된다. 그러나 그 직전까지 경보는 제대로 울리지 않았고 시민들은 아무런 대비 없이 참사를 맞는다. 재난은 언제나 예고 없이 찾아오고 경고가 늦으면 피해는 커진다.
올해 20주년을 맞은 재난문자방송 서비스는 이런 재난 상황에서 귀중한 생명을 살리는 ‘골든타임’을 지키기 위해 도입됐다. 단순한 문자 알림을 넘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수호하는 디지털 조기경보 시스템으로 자리잡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재난문자는 2005년 5월 15일 시행 초기부터 끊임없이 진화해 왔다. 2013년 모든 휴대폰 수신이 의무화됐고 2016년에는 위급문자, 긴급재난문자, 안전안내문자 등 3종 채널로 세분화해 차등화한 알림을 제공하고 있다. 2019년 문자 길이가 기존 60자에서 90자로 늘었으며 2023년 발송 범위가 읍·면·동 단위까지 정밀화됐다.
국립재난안전연구원에 따르면 국민 10명 중 7명 이상이 “재난문자가 위기 상황 대처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된다”고 했다. 2024년 여름 집중호우 때 경북 안동에서는 긴급재난문자를 받은 주민이 이웃 청각장애인을 대피시켜 생명을 구했다. 2017년 포항 지진 당시 신속하게 발송된 재난문자 덕에 골든타임 내 대응이 이뤄졌다. 경찰청에 따르면 실종문자를 활용하면 실종자를 약 일곱 배 빠르게 찾을 수 있었다고 한다.
경제적 효과도 주목할 만하다. 송헌재 서울시립대 교수 등의 연구에 따르면 재난문자를 1회 발송할 때 절감되는 피해 복구비가 약 1억원에 달했다. 이는 재난문자가 국가 재정에도 기여하는 비용 효율적 수단임을 보여준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재난문자 발송 건수가 급증하면서 국민 피로감이 높아졌다. 스마트폰 사용이 어려운 정보 취약계층의 사각지대도 해결 과제로 떠올랐다.
행정안전부는 이를 위해 중복·반복 발송을 차단하는 자동 필터링 기능을 연내 도입할 예정이다. 문자 길이를 157자로 늘려 재난 상황과 행동 요령을 상세히 제공할 계획이다. 다국어 서비스를 기존 5개에서 19개 언어로 확대하고 청각장애인 수어영상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접근성도 개선한다. 초고속으로 확산하는 산불과 같은 재난 상황에서는 마을방송·인편 등 다양한 전파 수단을 활용하는 체계를 마련할 방침이다.
재난문자 경보음은 생명을 살리는 사이렌이다. 작은 실천이 나와 내 가족 그리고 이웃의 생명을 지킨다. 재난문자가 단순 알림 서비스를 넘어 재난 상황에서 정부와 국민이 효과적으로 소통하는 채널로 한 단계 도약해야 할 시점이다. 재난문자 20주년이 국가 재난정보 전달 체계의 새 혁신을 여는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