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우라늄 99%는 핵분열 못 해… 원심력 이용해 U-235 농축
전력 공급, 의료, 우주 탐사에도 이용되지만
우라늄은 지구 암석과 토양, 물, 심지어 생물체 안에도 미량 존재하는 방사성 원소다. 1789년 독일 화학자 마르틴 클라프로트가 천왕성(Uranus) 이름에서 따와 ‘우라늄’이라고 명명했으며,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원자폭탄의 핵심 물질로 자리 잡았다.
우라늄의 핵분열은 본질적으로 연쇄 반응이다. U-235 동위원소가 중성자 하나를 흡수하면 2개의 더 가벼운 원소로 쪼개지면서 열과 함께 중성자 여러 개가 방출된다. 이 중성자들이 주변의 다른 U-235 원자에 도달하면 반응이 연속적으로 이어지면서 폭발적인 에너지가 발생한다. 원자로는 이 과정을 제어된 속도로 유지해 전력으로 바꾸는 장치다.
천연우라늄의 약 99.3%는 반응성이 낮은 U-238이고, 실제로 핵분열을 일으킬 수 있는 U-235는 약 0.7%에 불과하다. 이처럼 희소한 U-235 비율을 인위적으로 끌어올리는 작업이 바로 ‘농축(enrichment)’이다.우라늄 농축은 민간과 군사 분야 모두에서 활용되는 대표적인 이중 용도(dual-use) 기술이다. 원자력발전소는 3~5%로 농축된 저농축우라늄을 사용해 전 세계 전력의 약 10%를 제공하고 있다. 암 치료용 방사선, 의료 영상 장비, 해군의 핵추진 잠수함과 항공모함에도 농축우라늄이 활용된다. 최근에는 소형모듈원전(SMR), 우주 탐사용 방사선 동력 시스템, 고속 증식로 같은 차세대 원자로 기술에서도 우라늄 연료의 가능성이 주목받고 있다.
농축도가 20%를 넘으면 ‘고농축우라늄(HEU)’으로 분류되며, 농축도가 높아질수록 핵분열 연쇄 반응의 속도와 폭발성도 함께 커진다. 90% 이상이면 핵무기 제조에 필요한 ‘무기급(weapons-grade)’으로 간주된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따르면 이란은 60% 농축우라늄을 400㎏ 이상 비축 중이며, 이를 사용하면 핵탄두 약 10기를 만들 수 있다. 추가 농축 시 단기간에 무기급으로 전환될 수 있어 국제사회는 이를 군사 전용 가능성이 큰 고농축 단계로 본다.
우라늄 농축 기술은 특정 국가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미국, 러시아, 중국, 프랑스, 영국 등 공식 핵보유국은 물론 인도, 파키스탄, 북한도 핵무기를 보유 중이며 일본, 독일, 네덜란드 등은 민간 원자력산업을 기반으로 고급 농축 기술을 갖추고 있다. 반면, 한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는 자체 농축 시설 없이 저농축우라늄을 수입해 원자력발전에 사용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핵물질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어떤 외교적 맥락과 통제체계 속에서 운용되느냐는 점이다.
이란은 나탄즈, 포르도, 이스파한 등에 우라늄 농축 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이들 시설은 IAEA 사찰 대상이지만, 최근 몇 년간 이란은 사전 통보 없는 점검을 거부하거나 영상 삭제 등으로 감시체계를 흔들어왔다. 특히 2023년 이후 IR-6 기종의 고속 원심분리기를 큰 규모로 운용 중이고 올해는 수천 대를 가동한 정황이 포착되면서 미국의 타격 대상이 되기에 이르렀다.
원심분리는 가장 널리 사용되는 우라늄 농축 기술이다. 우라늄을 육불화우라늄(UF6)이라는 기체 형태로 전환한 뒤 고속으로 회전시키는 과정에서 동위원소 간 미세한 질량 차이를 이용해 농축한다. 더 무거운 U-238은 원심력에 의해 바깥쪽으로 밀려나고 가벼운 U-235는 중심 쪽에 남는다. 이 과정을 반복해 U-235 비율을 점진적으로 높여나가고자 기기 수백~수천 대를 연속해서 연결한 ‘캐스케이드(cascade)’ 구조로 운용한다.
이란의 최신형 원심분리기인 IR-6와 IR-9은 분당 수만 회전이 가능한 고속 로터, 자기부상 베어링, 탄소섬유 복합 소재를 적용해 높은 회전 속도와 내구성을 동시에 확보했다. IR-6는 고성능 스포츠카 엔진보다 10배 이상 빠른 속도로 회전이 가능하며, IR-9은 연간 50 SWU(Separative Work Unit) 이상의 농축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IAEA는 이러한 우라늄 농축 기술이 핵무기로 전용되는 것을 막고자 감마선·중성자 검출기, 환경 시료 분석, 위성 영상, 열 감지 센서 등 첨단기술을 활용해 농축 활동을 감시하고 있다. 하지만 IR-6 이상의 고성능 원심분리기는 크기가 작고 열·소음 방출이 적어 기존 감시체계를 회피할 가능성이 크다. 방사선 피폭, 환경오염, 테러 악용 등 다양한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농축 설비의 안전 시스템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최근에는 고순도 저농축우라늄(High-Assay Low-Enriched Uranium·HALEU)이 차세대 원자로 연료로 주목받고 있다. 기존 상업용 연료보다 에너지 밀도가 높고 원자로를 소형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U-235의 농도가 5~20%에 달해 핵 확산 위험도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미국 MIT 핵 안보 및 정책연구소 소장인 스콧 켐프 교수는 로이터 통신과 인터뷰에서 “추가 농축이 필요 없는 HALEU의 등장은 국제 핵안보체계에 중대한 과제를 던지고 있다”며 “우라늄 농축 기술이 국제 감시체계를 벗어나는 순간 핵 확산 위험은 급격히 높아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기사는 주간동아 1497호에 실렸습니다》
이종림 과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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