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기관은 물론 사법부 역시 향후 폭동을 일으킨 이들에게 엄정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45년 만의 비상계엄이 한국 사회에 불러온 충격파가 한동안 지속될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추가적인 소요를 막기 위해서라도 엄벌은 불가피하다. 실제 법원은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 등으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이들에게 대다수 영장을 발부하며 강경한 처벌 의지를 드러냈다. 이러한 방향은 정치권에서도 여야 모두 이견이 없는 듯하다.
그런데 이러한 사회적 공기를 접하는 일선 경찰들의 마음은 마냥 달갑지만은 않다. 집회 시위에서 경찰관을 다치게 한 이들에게 엄벌을 내려야 한다는 정치권의 합의를 본 기억은 드물다는 것이다. 집회에서 피 흘리고, 다치는 경찰관들은 외면당해 왔다는 정서가 일선 경찰관들에게 적지 않다.
서부지법 사태가 벌어지기 불과 16일 전의 사건도 별다른 조명을 받지 못했다. 그날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에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소속 집회 참가자가 경찰 무전기를 빼앗아 경찰관의 머리를 향해 던지는 일이 있었다. 무전기를 맞은 경찰관은 머리가 3cm가량 찢어졌다. 정치권에서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민노총은 오히려 강경하게 나갔다. 민노총은 경찰 익명 게시판에 해당 경찰관이 ‘혼수상태’라는 글이 올라왔다며 글 작성자를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동료가 다친 경찰관들에게 사과 대신 고소를 한 것이다.
이런 일은 경찰관들의 일상이다. 집회 시위를 막다 다친 경찰관은 지난해 100명을 훌쩍 넘어섰다. 지난해 11월 ‘윤석열 정권 퇴진 1차 총궐기’ 집회에서 발생한 부상자가 105명이나 됐다. 부상자 가운데는 골절, 인대파열 등 큰 부상을 입은 경찰관도 있었다. 연간 집회 및 시위 도중 부상을 입는 경찰관이 100명을 넘어선 것은 2017년 이후 7년 만의 일이다. 당시 법원은 검찰이 청구한 1차 총궐기 시위 참가자 4명에 대한 구속영장을 모두 기각했다.
정치권에선 당시 ‘경찰 규탄론’까지 비등했다. 경찰의 관련자 전원 구속 방침에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이 크게 반발한 것이다. 한 야당 의원이 집회에 참가했다가 다친 것이 경찰 때문이라는 것이 근거였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폭력적인 경찰의 모습으로 대한민국이 얼마나 퇴행하는지 증명돼 가는 것 같다”고까지 했다.
그 틈바구니 속에서 다친 105명의 경찰관 얘기는 사라졌다. 서부지법의 유리창과 판사실, 그리고 국회의원의 건강이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가 아니다. 적어도 같은 무게로 경찰관들이 흘린 피도 다뤄져야 한다. ‘제2의 서부지법 사태’가 없으려면 말이다.황성호 사회부 기자 hsh033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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