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홍정수]보냈지만 닿지 못한 지원… 미얀마에 5월은 잔인한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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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정수 국제부 기자

홍정수 국제부 기자
5월은 미얀마에 악재가 겹치는 달이다. 3월 28일 강진이 사가잉과 만달레이 등 중부지역을 뒤흔든 지 한 달여가 지난 지금, 피해 복구가 미미한데 열대 계절풍(몬순)이 홍수까지 불러온다면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이다. 지금껏 발생한 여진도 150차례가 넘는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진으로 인한 사망자가 3800명, 부상자 5100명, 실종자가 116명이라고 지난달 30일 집계했다. 240만 명에게 의료 지원이 시급하지만, 조치를 받은 사람은 4분의 1도 되지 않는다. 한낮 체감기온이 섭씨 40도를 넘는 극심한 더위에도 이재민들은 천 하나로 하늘만 가린 임시 천막에서 살고 있다.

더 큰 어려움은 내전으로 인한 복잡한 정치 상황에서 비롯된다. 세계 26개국이 지원을 보냈지만, 대부분 군부의 통제와 내부 갈등에 가로막혔다. 폐쇄적이기로 악명 높은 미얀마 군부는 지진 직후 이례적으로 국제 사회에 손을 내밀고 반군에는 지난달 말까지 휴전을 선언했다. 하지만 그 자세는 오래가지 않았다.

군정이 강진 이후 한 달간 반군 통제 지역을 공격한 횟수는 최소 243회라고 유엔은 밝혔다. 이번 지진의 진앙은 공교롭게도 2021년 쿠데타 이후 반군 진영의 핵심지로 떠오른 지역이기도 하다. 군부가 이곳에 구호 대신 폭격을 이어가면서 민간인 피해는 더욱 극심해지고 있다. 군부는 중국, 인도, 러시아 등 동맹국의 지원은 환영하면서도 대만의 구조대는 거부하는 ‘선택적 수용’에 나서기도 했다.

분초를 다퉈야 할 재난 구호를 제쳐두고 어떻게 이런 일들이 자행될 수 있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국제 사회의 고질적인 관심 부재를 지목한다. ‘로힝야족: 미얀마의 숨겨진 집단학살의 내부’의 저자 아짐 이브라힘 박사는 “권위주의 정권은 지정학적인 공백 덕분에 원조를 통해 입지를 강화할 수 있다”며 군부가 해외 원조를 지지 기반 강화와 반대 세력 약화에 활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미얀마의 기능 마비를 인정하고 인도적 지원 시스템 자체를 재고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미얀마의 한 분쟁 전문가는 “미얀마는 실패한 국가”라며 현재와 같은 지원 방식은 불안정한 정치 환경에 적합하지 않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우리나라 외교부도 강진 발생 직후 국제적십자위원회(ICRC)를 통해 200만 달러(약 28억 원)를 지원했고, 지난달 초부터 추가적인 구호 물품 200만 달러어치를 차례로 보내고 있다. 200만 달러는 미얀마에서는 빈곤층 80만 가구의 한 달 생활비에 육박하는 큰 금액이지만, 얼마나 실질적인 도움으로 닿을지는 의문이다. 미얀마 현지 적십자사인 미얀마 적십자사(MRCS)는 오랫동안 군부와 유착하며 현지의 독립적인 인도주의 단체의 노력을 훼방한다는 비판을 받는 조직이다. 원조국에도 책임이 있다. “우리는 도리를 다했다”며 손을 턴다면, 그건 반쪽짜리 책임일 뿐이다. 시급성에 따라 돈을 보냈다면, 그 돈이 어디에 쓰였는지까지 살펴야 한다. 살피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압박이라도 해야 한다. 지금 미얀마가 겪는 고통은 자연재해만이 아니라 외면이 낳은 인재(人災)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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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정수 국제부 기자 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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