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형욱 정두리 기자] 정부가 지난 주말 이어진 미국과의 산업·통상장관 간 ‘연장 협상’ 끝에 미국에 제시할 수 있는 대부분 카드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제 남은 건 오는 3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기로 한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의 최종 담판이다.
통상 전문가는 대체로 31일 직후 일본이나 유럽연합(EU) 수준으로 한·미 관세협상도 타결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협상 결렬 땐 당장 8월1일부터 전 품목에 대한 25%의 상호관세 부과 충격이 현실화한다.
美에 어떤 제안 건넸나
27일 정부와 통상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24~25일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여한구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을 통해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에 약 2000억달러(약 277조원) 안팎의 산업협력 패키지를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진행 중이거나 기발표한 1000억달러 규모의 투자에 더해 1000억달러를 보탠 것이다. 일본의 투자약속 5500억달러에는 못 미치지만, 경제규모가 3분의 1 수준인 걸 고려하면 미국 측이 납득할 만한 규모라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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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일환 기자] |
특히 직접투자에 집중한 일본과 달리 현지 조선 인프라 투자에 더해 조선분야 기술 이전과 인력양성 방안을 통해 무너진 미국 조선업 재건을 돕겠다는 제안을 함으로써 미국 측 호응을 이끌어낸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실은 지난 26일 “조선 분야에 대한 미국 측의 큰 관심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반도체와 자동차 등은 물론 미국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사업 참여나 미국산 LNG 수입 확대, 원자력 협력 등 부문에서도 일본 안이나 기존안보다 업그레이드한 제안을 건냈으리란 분석도 뒤따른다. 알래스카 LNG 사업에 대해 대만은 투자의향서(LOI)를 제시하고 일본은 미·일 조인트벤처 설립 안을 제시했다면 우리는 여기에 더한 플러스 알파가 있었으리란 것이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김 장관이 미국 상무장관 외에 에너지장관이나 국가에너지위원장과 면담했다”며 “산업뿐 아니라 에너지협력에서도 일본과 차별화된 제안을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수출입은행 등 정책금융기관을 활용한 우리 기업의 대미 투자 금융지원 카드도 거론된다. 정책금융기관은 원칙적으로 외국 지원이 어렵지만, 국내 기업의 해외사업 수주나 수출에 대한 간접지원은 가능하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일본이 미국 투자에 5500억달러 투자 펀드를 결성했다고는 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선 미·일의 설명이 서로 다른 상황”이라며 “우리도 이 같은 기술적 협상으로 (실제 투자가 아닌) 금융지원안을 카드로 쓰는 게 좋은 방법일 수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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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지난 23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에너지부 회의실에서 크리스 라이트 미국 에너지부 장관과 면담하고 있다.(사진=산업부) |
미국 측이 줄곧 강조해 온 농산물 시장 개방의 명분을 제공하면서도 실질적인 국내 농가의 우려를 최소화하는 방안을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처럼 쌀 전체 수입량은 유지한 가운데 미국산 쌀 수입 물량만 확대하고, 민감성에 비해 실효가 크지 않은 30개월 이상 소고기 수입제한은 유지하는 등의 절충 가능성이 거론된다.
31일(현지시간)로 예정된 한·미 재무장관 간 협상에선 안보 문제도 다뤄질 전망이다. 정부는 통상협의와 안보 문제가 서로 별개라며 공식적으론 선을 그어 왔지만, 실질적으론 국방비 증액 등 안보 협력을 통해 관세 분야 협상력을 극대화하려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 “日·EU 수준 타결 낙관”
지난 25일 한·미 재무장관 간 협의가 구 부총리의 출국 직전 취소되는 등 양국 고위급 만남의 잇따른 불발로 우려가 커지고 있지만, 통상 전문가들은 협상 타결 가능성을 대체로 크게 보고 있다. 우리가 일본 못지않은 제안을 건넸고, 미국으로서도 한국이 중국과 EU, 일본 다음으로 주요한 협상 국가라는 게 그 근거다.
허윤 교수는 “중국 의존도를 낮추려는 미국으로선 제조업 강국인 한국이 충분히 중요한 협력 파트너”라며 “우리가 미국 측 압력에 휘둘리지 않는다면 오히려 유리한 위치에 설 여지도 있다”고 말했다. 장상식 원장 역시 “협상 결과가 주말(~8월3일)까지 늦어질 순 있지만 결국 일본이나 EU와 비슷한 선에서 협상이 타결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협상 낙관론과 함께 협상 타결을 위해 너무 많은 카드를 내주리란 우려도 뒤따른다. 아무리 급해도 뭘 주고 뭘 지킬 지에 대한 철저한 계산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구기보 숭실대 글로벌통상학과 교수는 “현 시점에선 (일본 수준의) 협상 타결 가능성은 낙관적으로 보고 있지만, 자칫 타결을 위해 너무 많은 걸 내줄 수 있다”며 “이제부턴 새로운 카드를 제시하기보다는 지금까지의 안을 잘 묶어서 미국 측에 시너지 효과를 강조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협상 결과와 별개로 한·미 정상회담도 서둘러야 한다는 제언도 뒤따른다. 조현 외교부 장관이 31일 루비오 국가안보보좌관 겸 국무장관을 만나 이를 논의한다. 허윤 교수는 “미국으로선 이재명 대통령이 앞으로 계속 한미 동맹을 굳건히 가져갈 지에 대한 궁금증이 있을 것”이라며 “빠른 정상회담으로 우리 정부가 미국과의 관계를 흔들림 없이 가져가려 한다는 것을 확인시켜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