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멕시코 태국과 함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세계를 상대로 벌이는 관세 전쟁의 충격을 가장 크게 받을 것으로 예측됐다. 대미 무역 의존도가 높을수록 더 큰 피해를 본다는 이유에서다. 중국보다 미국의 성장률 둔화 폭이 더 커질 것으로 전망됐다. 유럽 국가들이 받는 충격파는 상대적으로 크지 않았다.
◇무역 갈등으로 세계 소비·투자 위축
IMF는 22일 공개한 ‘4월 세계 경제 전망’에서 세계 주요국의 올해와 내년 경제 성장률을 줄줄이 하향 조정했다.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1%로 전망했다. 지난 1월의 2% 성장 전망을 3개월 만에 절반으로 낮췄다. 내년 성장률도 1월 전망치(2.1%)보다 0.7%포인트 낮은 1.4%로 제시했다.
다른 나라의 성장률도 대부분 내려갔다. IMF는 올해 세계 성장률을 3.3%에서 2.8%로 낮췄다. 글로벌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과 중국의 올해 성장률은 각각 1.8%, 4.0%로 낮춰잡았다. 3개월 전과 비교하면 미국은 0.9%포인트, 중국은 0.6%포인트 내려갔다. 유럽 국가의 피해는 상대적으로 덜했다. 영국(1.1%) 독일(0.0%) 프랑스(0.6%) 등 주요 유럽 국가도 전망치가 0.2~0.5%포인트씩 떨어졌다.
IMF는 “무역 갈등 등 정책 불확실성 확대에 따른 소비·투자 위축”을 성장률 조정의 원인으로 제시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촉발한 관세전쟁이 세계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분석한 것이다. IMF는 “소비와 투자 위축, 재정·통화 정책 여력 부족, 금융과 외환시장의 높은 변동성 등을 세계 경제를 둔화시킬 위험 요인”이라고 경고했다.
IMF는 이번 분석에서 기존의 단일 전망 대신 전망 기준일에 따라 다른 전망치를 내놨다. 미국 정부가 발표한 관세 정책이 기준점이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일 세계 모든 수입품에 10%의 기본 관세를 부과하고, 한국 등 57개국에 11~50%의 상호관세를 부과했다. 상호관세는 9일부터 적용될 예정이었으나 중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에 대해 90일간 유예됐다.
IMF는 미국이 상호관세를 발표한 2일 이전 기준으로는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을 3.2%로 지난 1월 전망치(3.3%)보다 0.1%포인트 하향했다. 하지만 9일 이후 상호관세 유예와 미·중 보복관세 조치를 반영한 성장률은 2.8%로 종전보다 0.5%포인트 낮춰잡았다. 2026년 세계 성장률도 3.3%에서 2.9%로 하향했다.
◇내년에도 관세전쟁 충격 이어져
눈여겨볼 부분은 우리나라의 조정폭이다. 우리나라의 성장률 하향 폭은 멕시코(1.7%포인트)와 태국(1.1%포인트) 다음으로 컸다. IMF는 우리나라의 성장률을 떨어뜨린 이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국내총생산(GDP)의 약 90%를 교역에 의존하는 경제 구조로 인해 관세전쟁의 영향을 더 크게 받는다고 분석했다.
한국(25%)과 비슷한 상호관세를 적용받은 일본(24%)의 성장률 전망치는 1.1%에서 0.6%로 수정됐다. 조정폭이 한국의 절반 수준이다. 일본 경제에서 무역이 차지하는 비중은 45%로 우리나라의 절반가량이다.
국내외 기관과 투자은행(IB)들도 장기화하는 정치적 불확실성과 관세전쟁 충격을 이유로 한국의 성장률을 줄줄이 끌어내리고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 2월 성장률 전망치를 1.9%에서 1.5%로 하향했고, 다음달 추가 조정을 예고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1%에서 1.5%로,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2.0%에서 1.2%로 낮췄다. JP모간은 8일 우리나라 성장률 전망치를 0.7%까지 끌어내렸다.
IMF는 높아진 불확실성과 성장 둔화에 대응하기 위해 “예측 가능한 무역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무분별한 산업 보조금을 자제하고, 지역·다자 간 무역협정 확대를 통해 무역의 분절화를 방지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정영효 기자 leew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