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의 진짜 목적? ‘최선을 다하는 삶의 자세’ 배우는 것[오은영의 부모마음 아이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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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5〉 공부를 너무 싫어한다면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오은영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오은영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얼마 전 올해 중학생이 된 아이를 둔 부모가 찾아왔다. 공개수업을 다녀왔는데 아이가 수업 시간에 꾸벅꾸벅 졸고 있어 깜짝 놀랐다고 했다. 집에서도 공부를 한다고 책상 앞에 앉아 졸기는 하지만, 수업 시간에 그것도 공개수업 시간에 조는 모습을 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했다. 아이는 초등학생 때에도 공부에 관심이 없었다. 중학생이 되면 좀 나아지겠거니 했는데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며 걱정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아이가 공부하기를 너무 싫어할 경우 중학교 2학년 정도까지는 공부 말고 다른 걸 시켜 보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공부를 너무 싫어하는 아이는 아무리 책상 앞에 앉혀 놓아 봤자 금세 거짓말하고 나가 버린다. 학원도 자꾸 빠진다. 이럴 때 부모가 눈여겨보고 걱정해야 할 것은 떨어지는 학교 성적이 아니다. 아이가 생활 속에서 성취감이나 보람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그렇다면 공부 말고 어떤 걸 시키는 게 좋을까? 일단 아이가 하고 싶어 하는 걸 하도록 지원한다. 아이가 연예인이 되고 싶어 하면 보컬 트레이닝을 받아 보게 하거나 방송댄스를 배워 보게 하는 것도 좋다. 게임도 마찬가지다. 아이가 게임에 빠져 있다면 아예 게임대회에 나가 보게 하는 것이다. 보통 그런 대회에 나가면 열에 아홉은 다 지고 온다. 그러면 아이 스스로 “저는 게임은 그냥 취미로만 해야 할 것 같아요” 하고 스스로 선을 긋기도 한다. 물론 “더 열심히 해야겠어요”라며 의욕을 보이는 아이들도 있다. 그런 아이들은 충분히 독려하고 지원해 준다. 사춘기에는 공부도 중요하지만 매일매일 자기가 정한 목표를 실행에 옮기고 성취감을 느끼는 경험도 아주 중요하다.

그 대신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시켜줄 때는 반드시 약속 하나는 받아두는 게 좋다. 예를 들어 이유 없이 그냥 학교를 빠져서는 안 된다고 일러두는 것이다. 학교에 가서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는 건 상관없지만 결석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설명해 준다. 그리고 학교에 간 이상, 수업 시간에 대놓고 엎드려 자선 안 된다고도 당부한다. 이것은 기본적인 태도의 문제다. 상대에 대한 예의의 문제이기도 하다. 너무 졸려서 견딜 수 없으면 최소한 졸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자세라도 보여줘야 한다고 가르친다.

가장 고민스러운 상황은 아이가 그 어떤 것에도 재미와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경우이다. 무엇이든 아이가 재미있어 하는 게 한 가지라도 있으면 그것을 열심히 하도록 지원해 주면 된다. 하지만 세상에 재미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하면, 그 아이는 무엇을 좋아하는지 찾는 일부터 해야 한다. 아이들이 재미없다고 느끼는 건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자기와 너무 안 맞기 때문이다. 자신이 원하고 좋아하는 것과 어른들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의 괴리가 너무 큰 것이다.

이런 아이들은 우선 “넌 어른이 되면 뭘 하고 싶니?” 혹은 “너는 뭘 할 때 가장 신나고 재밌니?”라고 물어봐서 자기 생각과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해줘야 한다. 그러려면 아이에게 일상생활을 찬찬히 돌아보며 자신이 조금이라도 재미있다고 느끼는 게 무엇인지 노트에 적어 보라고 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그 일들 사이의 공통점을 찾아보는 것이다. 아이는 이런 과정을 통해 조금씩 자기 자신을 파악해 나가기 시작할 것이다.

부모는 아이가 공부를 너무 안 하거나 나름대로 하는 것 같은데 성적이 너무 안 좋을 때도 걱정이 많다. 이런 경우, 공부를 잠시 접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부모와 관계가 좋았다면 그 관계를 바탕으로, 그게 아니라면 이번 기회에 관계를 회복하면서 아이와 부모가 함께 노는 것이다. 방학 동안에는 여행도 가고 주말마다 봉사활동도 해본다. 이렇게 말하면 부모들은 어떻게 이 중요한 시기에 공부를 손에서 놓을 수 있느냐며 놀란다. 지금 이 아이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정말 공부일까? 사춘기 때는 공부를 조금 잘하고 못하고보다 부모와 원만한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게 인생 전체를 봤을 때 더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일 수 있다.

아이들에게 공부를 시키는 이유는 최선을 다해 삶을 살아가는 자세를 가르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공부로 그것을 가르치자니 아이는 공부를 너무 싫어하고, 그것 때문에 부모와 갈등이 생기는 일도 많다. 갈등만 많고 성취는 적은 공부를 억지로 시킬 필요가 있을까. 다른 활동을 하다 보면 오히려 공부에 대한 동기가 생길 수 있다. 공부가 너무 싫은 아이에게 ‘공부’로 그것을 가르치겠다고 무리하게 욕심을 내면 결국 실패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 아이는 ‘최선’, ‘성실함’ 같은 중요한 삶의 태도를 어른이 될 때까지 못 배울 수도 있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오은영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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