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목 우거진 길엔 사람 자취 없고, 깊은 산 어디선가 종소리 들려온다.
샘물은 험한 바위에 목메고, 햇살은 푸른 솔 사이에 서늘하다.
저녁 어스름 텅 빈 연못가, 참선 속에 마음의 독룡을 다스리노라.(不知香積寺, 數里入雲峰. 古木無人徑, 深山何處鐘. 泉聲咽危石, 日色冷靑松. 薄暮空潭曲, 安禪制毒龍.)
―‘향적사를 찾아서(과향적사·過香積寺)’ 왕유(王維·701∼761)
시인은 향적사를 찾아 나서지만 정작 절은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 대신 구름 낀 봉우리, 고목 우거진 숲길, 먼 종소리, 험한 바위 위의 샘물, 서늘한 소나무 빛이 차례로 펼쳐진다. 절은 보이지 않는데도 그 존재는 외려 더 또렷해진다. 시는 또 ‘없는 것’과 ‘들리는 것’을 절묘하게 엮는다. 길은 있으되 인적은 없고, 절은 보이지 않는데 종은 울린다. 바위에 부딪힌 샘물은 목멘 듯 흐르고, 소나무 사이의 햇빛은 이상하리만큼 차갑다. 소리와 빛이 살아 있는데도 시의 정조는 더 깊이 가라앉고, 청각과 시각의 선연한 대비가 인상적이다. 역대 비평가들이 이 두 구를 ‘잘 다듬어진 시구의 본보기’라고 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텅 빈 못가에 이른 시인은 마침내 내면의 소요(騷擾)와 마주한다. 불교 고사 속 독룡(毒龍)은 전설 속 괴물이면서 동시에 마음속 번뇌이기도 하다. 결국 시인이 찾아간 것은 명찰(名刹)이 아니라, 자기 내면을 잠재울 한 자리였다. 절보다 먼저 고요에 닿는 일, 왕유의 시는 그 오래된 비밀을 조용히 일러 준다.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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