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계에선 4, 5세기 도래인(渡來人)이 발전된 철기나 토기 등을 일본(당시 왜·倭)에 전파하며 일본이 중앙집권국가로 발돋움하는데 기여한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이에 더해 가야계를 중심으로 한 도래인이 군사·사회 시스템 같은 ‘소프트웨어’도 전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이 나왔다.
조성원 국립경주문화연구소 연구원은 한국고대사학회가 16, 17일 여는 세미나 ‘동북아 국제정세와 한국 고대의 이주·정착’에서 ‘고고 자료를 통해 본 4~5세기 한반도에서 일본열도로의 이주와 정착’을 발표한다. 조 연구원은 이 발표문에서 “4, 5세기 가야계 도래인들은 기술자의 역할만 조명된 탓에 일본 고대사의 주체가 아닌 보조로 인식되고 있다”며 “하드웨어가 올바르게 작동하도록 하기 위해선 소프트웨어가 필요하며, 이것이 도래 문화 전파의 본질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발표문에 따르면 4세기 일 야마토(大和) 정권은 동북아시아 교역의 중심지인 금관가야로부터 철기 및 선진문물을 독점 입수하며 권력을 강화해 나갔다. 학계에선 대체로 일본의 철기와 스에키(須惠器·고대 일본의 도질 토기)가 도래인으로부터 비롯됐다고 본다.400년 고구려의 남정(南征)으로 금관가야가 붕괴하자, 한반도로부터의 도래는 더욱 본격화됐다. 이 시기 일본 기나이(畿內· 수도 주변) 지역 집락 유적에서 한식계(韓式係) 토기가 다량 발굴되는 것이 방증이다. 이때부터 일본에선 각종 철제 무기류가 대량생산됐고, 무덤엔 대량의 무구(武具)와 무기가 부장되기 시작했다.
조 연구원은 “금관가야와 신라에서는 3세기 대부터 나타났던 모습”이라며 “가야계 도래인이 일본에 철기 생산 기술뿐 아니라 고대 군사조직의 운영 및 통솔과 관련된 소프트웨어도 전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도래인은 일본의 일상도 바꿨다. 일본열도에 말의 존재와 관련된 흔적은 5세기 대부터 확인되는데, 관련 유적에선 도래인과 연관된 이동식 아궁이와 시루 등 토기가 출토됐다. 도래인이 말과 말을 키울 수 있는 기술을 가져 왔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말은 운송과 경작에 적지 않은 변화를 가져왔다.야마토 정권은 독점한 도래 문화를 활용해 권력 기반을 다지는 한편, 선진 문물을 각지의 수장층에 배분하며 지배를 유지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조 연구원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4세기 후반~5세기 전반 일본은 고훈시대(古墳時代·3세기 중후반~7세기 무렵)가 중기로 접어들면서 정치 사회적 변화가 적지 않았다”며 “고대국가로 성장하던 가야계 도래인이 백제계보다 앞서 이런 변화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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