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구체적 요구 확인 못한채
6개 분야 협상 범위 정리 그쳐
내주 범정부 대표단 방미해
협상 테이블 오를 안건 정리
美中 입장차 못좁힌 신경전속
APEC "WTO 다자무역 복원"
기대를 모았던 양국 간 고위급 관세협상에서 한미 양국의 깜짝 발표는 나오지 않았다. 논의해야 할 세부 의제를 확인하고, 향후 일정을 확인하는 선에서 논의가 끝났다. 중국을 포함한 19개국과 동시에 관세협상을 벌이고 있는 미국의 제반 사정과 대선을 눈앞에 둔 한국의 정치적 상황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16일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이날 오후 제주 서귀포시 제주컨벤션센터에서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관세협상을 진행했다. 그리어 대표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통상장관회의 참석을 위해 방한했고, 우리 정부는 전날 정인교 통상교섭본부장에 이어 연이틀 미국과 고위급 양자회담을 진행했다. 한미 관세협상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안 장관은 "그리어 대표에게 국가별 관세와 품목별 관세 일체에 대한 면제를 재차 요청했다"며 "미국과는 다음주 워싱턴DC에서 2차 기술협의(실무협의)를 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안 장관은 다음주부터 미국과의 본격적인 협상이 이뤄질 것으로 관측했다. 이번 협의에서는 △균형 무역 △비관세 조치 △경제 안보 △디지털 교역 △원산지 △상업적 고려 등 6개 분야로 향후 협상 주제를 확정하는 선에서 논의가 끝났다. 그마저도 6개 분야는 미국이 현재 협상을 전개하고 있는 19개 국가에 공통적으로 제시한 관세협상의 틀이다.
두 차례에 걸쳐 고위급 접촉을 했지만 미국 측이 관세협상 차원에서 한국에 요구하는 '우선순위'와 '필수 조건'을 확인하는 작업이 이번에도 이뤄지지 못했다는 얘기다.
안 장관은 "국내에서 농산물 문제와 구글 지도 반출 문제 등이 거론되고 있지만 협상 테이블에 구체적으로 무엇이 올라올지는 두고 봐야 한다"며 "미국이 이야기하는 게 뭔지를 확정 짓는 작업이 다음 기술협의에서 이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 장관은 "6개 분야는 많은 국가들과 협의하는 과정에서 미국이 제시한 규격화된 틀"이라며 "원산지와 상업적 고려는 우리에게 크게 이슈가 될 분야는 아니고, 디지털 교역에는 구글 맵 같은 사항들이 포함될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 정부는 미국과의 협의 결과에 따라 다음주 범정부 대표단을 미국에 보낼 계획이다. 농림축산식품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관계부처가 참여하는 만큼 소고기 월령 제한이나 구글 지도 반출 금지 같은 구체적인 사안을 두고 미국과 협의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안 장관은 2차 고위급 회담은 대선 이후인 6월 중순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한편 빈손으로 끝날 위기였던 APEC 통상장관회의는 이날 막판 합의로 공동선언문을 채택하며 막을 내렸다. APEC 회원국들이 공동 채택한 공동선언문에는 △다자무역체제를 통한 연결 △무역 원활화를 위한 인공지능(AI) 혁신 △지속가능한 무역을 위한 공급망 구축 협력 등의 내용이 담겼다. 공동선언은 회원국들의 컨센서스를 담아 발표하는 협의 성과물이다. 회원국 간 의견이 일치되지 않으면 공동성명 대신 의장성명으로 이를 갈음한다. 회의 종료 30분 전까지만 해도 미·중 간 의견차로 공동채택 무산 가능성이 컸지만 '보호주의 반대' 등의 내용을 빼면서 막판 타협을 이뤄냈다.
[제주 유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