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선언 세계 최고의 투자자 워런 버핏의 투자 역정
대학원생 때부터 투자 재능 남달라… ‘가치투자 아버지’ 그레이엄 만난 덕
섬유회사 매수해 지주회사 전환… 시즈캔디-코카콜라 등 투자 성공
“5년 뒤 모습 그려져야 투자” 철학… 2016년 사들인 애플 현재 5배 수익
韓 증시엔 IMF 외환위기 후 관심… “가치투자자의 천국” 평가하기도
버크셔해서웨이 주주총회에서 버핏의 은퇴와 후계자에 대한 질문이 처음 나온 것은 2006년이다. 당시 76세였던 버핏은 “내가 떠나더라도 버크셔해서웨이의 기업문화는 여전히 건강할 것”이라고 답했고 이후 19년을 더 이끌었다. 버핏은 “CEO로서 쓸모가 있는 한 맡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그 기간이 이렇게 길어진 것이 놀랍다”고 말했다.
버핏은 1965년 직물회사였던 버크셔해서웨이를 인수해 이를 투자지주회사로 탈바꿈시킨 뒤 ‘가치투자’라는 전설을 만든 투자자로 꼽힌다. 버핏이 이룬 성과는 그의 공식 전기 제목인 ‘스노볼’(눈덩이)이 상징하는 것처럼 투자와 인생이라는 긴 언덕에서 작은 눈덩이를 굴려 거대한 눈바위를 만들어낸 ‘복리의 마법’ 덕분이다. 훌륭한 회사를 적정 가격에 사서 평생 들고 있어야 한다는 그의 지론은 지금도 많은 투자자들의 ‘바이블’로 자리 잡고 있다.
● “서른에 부자가 되지 못하면 뛰어내리겠다”던 소년
전설적인 주식투자자의 첫 투자는 성공적이진 않았다. 11세에 시티서비스 주식을 주당 38달러에 샀는데 28달러까지 떨어져 마음고생을 심하게 했고, 40달러로 회복되자마자 팔았다. 이 주식은 몇 년 뒤 200달러가 넘게 올랐다.
유년기에 이미 지역 도서관의 투자 서적을 모두 다 읽었다던 버핏이지만, 하버드 경영대학원에선 떨어졌다. 그 대신 진학한 컬럼비아 경영대학원에서 ‘가치투자의 아버지’ 벤저민 그레이엄과 만나며 그의 투자 재능이 꽃을 피웠다. 다만 그레이엄과 함께 일하던 초기 버핏의 투자는 저렴한 주식을 매수한 뒤 금방 매도하는 방식이었다. 마치 피우다가 만 담배꽁초를 주워 한두 모금 더 피운 뒤 버리는 방식이었다.오마하로 돌아온 버핏은 친구와 가족 7명의 돈을 모아 투자조합을 시작했고 1959년부터 1969년까지 운영하며 연평균 30%의 수익률을 올렸다. 멍거와의 인연도 이때부터 시작됐다. 버핏은 “멍거를 만난 뒤 ‘적당한 기업을 좋은 가격에 사는 것보다 좋은 기업을 적당한 가격에 사는 게 낫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버핏은 1962년 주당 7.51달러에 섬유회사 버크셔해서웨이의 주식 매수를 시작했다. 1964년 버핏이 보유한 지분을 11.5달러에 매수하겠다던 버크셔해서웨이 경영진이 약속을 어기고 11.375달러로 말을 바꾸자 버핏은 공격적인 지분 매입에 나섰다. 주당 0.125달러 차이에 불과했고, 11.375달러에 팔았더라도 50%가 넘는 수익을 거둘 수 있었지만 약속을 어겼다는 이유에서다. 버핏은 1965년 버크셔해서웨이의 경영권을 확보했다.
하지만 막대한 자본이 계속 들어가는 데다 시장은 계속 줄어드는 섬유사업은 버핏의 투자철학과 맞지 않았다. 버핏은 싸다는 이유로 사양산업인 섬유회사를 인수한 것을 ‘인생 최악의 투자 결정’으로 꼽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버크셔해서웨이는 투자 성공의 상징으로 남았다. 버크셔해서웨이를 투자로 지분을 소유하되 경영에는 간섭하지 않는 ‘투자지주회사’로 전환해 글로벌 식품, 철도, 정보기술(IT), 보험, 금융 등을 거느리고 있기 때문이다.
● ‘가치’에 눈뜬 투자 ‘시즈캔디’와 ‘코카콜라’
최고급 재료를 사용한 초콜릿 사탕을 파는 시즈캔디는 강력한 고객 충성도에 바탕을 둔 가격 결정력을 갖고 있었다. 버핏은 “밸런타인데이에 애인에게 ‘시즈캔디 대신 그냥 싼 거 샀어’라고 선물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시즈캔디가 가진 ‘경제적 해자’를 설명했다.
시즈캔디의 성공 경험은 코카콜라 투자로 이어진다. 버핏은 1988년 13억 달러에 코카콜라 지분 9%를 인수했다. 이는 현재 기준으로 약 270억 달러 규모다. 코카콜라는 63년 연속 배당을 늘려온 대표적인 ‘배당귀족’ 주식이다. 버크셔해서웨이는 투자 원금을 진작 배당으로 회수했다. 하루에 코카콜라를 다섯 캔씩 먹는 것으로 알려진 버핏은 “코카콜라는 소비자 독점력이 세계에서 가장 강력하고 가치가 절대적으로 높은 브랜드”라고 극찬했다.
버핏은 “훌륭한 기업을 인수해서 영원히 보유하는 방식을 좋아한다”고 표현하며 장기투자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코카콜라와 함께 버크셔의 오랜 투자 목록에 올라 있는 기업으로는 신용카드사 아메리칸익스프레스(아멕스)가 꼽힌다. 오래 투자해야 ‘복리의 마법’을 누릴 수 있고, 중개 수수료 손실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철학이었다.
애플에 투자한 것은 버핏의 투자 철학을 입체적으로 만들었다. 버핏은 ‘능력범위’를 항상 강조했다. 아무리 훌륭한 경영자가 이끌더라도 5년 뒤 모습을 그릴 수 없다면 투자 대상에서 배제해왔다. 그래서 아마존과 구글(알파벳)에 투자할 기회를 놓쳤다. 버핏은 빌 게이츠와 절친한 사이지만 마이크로소프트(MS)에는 투자하지 않았다. 다만 MS, 아마존, 구글과 달리 애플은 버핏에게 있어 소비재 기업이었다. 버핏은 2020년에야 스마트폰을 처음 사용할 정도로 기술에는 문외한이었지만, 애플의 브랜드와 생태계를 찾는 소비자들의 행태는 이해할 수 있었다.
버핏은 2016년 투자를 시작해 애플에 총 400억 달러를 투자했다. 두 차례의 분할을 반영하면 주당 40달러도 안 되는 가격에 매입했다. 현재 애플의 주가는 200달러가 넘는다. 한때 애플은 버크셔해서웨이의 포트폴리오 중 절반을 차지하기도 했다. 이후 애플 주가가 급등하자 지분을 줄이긴 했으나 현재까지도 포트폴리오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크다.
고평가된 시장에서는 현금 확보를, 시장 하락기에는 기회를 포착하라는 그의 투자 철학도 유명하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미국 기업 주식을 사라는 취지의 뉴욕타임스(NYT) 기고문을 통해 “시장이 탐욕스러울 때 두려워하고, 시장이 두려워할 때 탐욕스러워하라”는 자신의 철학을 밝힌 바 있다. 그는 당시 파산 직전의 골드만삭스, 뱅크오브아메리카에 투자해 향후 막대한 이득을 얻었다. 반대로 지난해 현금을 쌓아두기 시작하고 인공지능(AI) 기업 투자에 보수적인 태도로 일관해 시장에선 “버핏도 나이가 들었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올해 초 기술주 조정기에 현금 보유량을 높였던 버핏의 전략이 빛을 발해 다시 주목을 받았다.
95세까지 투자를 계속해 온 버핏은 “탭댄스를 추면서 출근한다”고 할 정도로 일을 사랑했다. 그는 투자 성공의 비결로 끝없는 학습을 강조했는데, 매일 5∼6시간 동안 신문 5종과 보고서, 책을 읽으며 보냈다. 그는 집에서도 기업 보고서를 읽다가 가구에 부딪힐 정도로 무언가를 읽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멍거는 “버핏이 애플에 투자한 것은 끊임없이 배운다는 증거”라고 말하기도 했다.
버핏은 검소한 삶으로도 유명했다. 1958년 3만1500달러를 주고 산 집에서 60년 넘게 살고 있다. 버핏은 서른이 되기 전 부자가 되겠다는 목표를 달성했지만 그의 자산 중 90% 이상은 65세 이후 쌓은 자산이다. 그는 특별한 안목보다 일관된 원칙과 반복 가능한 시스템에서 성과를 내고자 했다. 지루한 습관을 통해 복리의 기적을 만들어낸 것이다.
● 워런 버핏과 한국의 인연
버핏은 2004년 대한제분 등 20여 개 기업에 자신의 자산 1억 달러를 투자하면서 한국 증시와 첫 인연을 맺었다. 2007년에 버크셔해서웨이 본사에서 미국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생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한국 증권시장에 관해 이야기하다가 이 같은 사실을 밝혔다. 추후 버핏이 대한제분 외에도 기아, 신영증권, 현대제철 등에 투자한 것이 알려졌다.
버핏이 한국 기업에 관심을 가졌던 시기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후 국내 증시의 회복기로 다수의 우량한 기업들까지 저평가받고 있었다. 버핏은 국내 증시에 대해 ‘가치투자자의 천국’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버핏은 버크셔해서웨이를 통해 2006년 3분기(7∼9월) 무렵 포스코 주식 4%를 매입하기도 했다. 버핏은 포스코에 대해 “믿어지지 않는 놀라운 철강회사”라며 여러 차례 추켜세웠다. 버크셔해서웨이는 첫 투자 이후 약 9년 뒤인 2015년 포스코 지분을 전량 매각했다.
국내 증시에서도 버핏이 투자한 회사로 밝혀지거나, 자금을 회수했다는 소식만으로 주가가 등락을 나타냈다. 2007년에 버핏이 기아에 투자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당일 기아 주식이 6년 만에 상한가를 달성했다. 포스코의 경우 버크셔해서웨이가 주식을 전량 매각했다는 소식에 신저가를 기록했는데, 당시 포스코에서는 “버크셔해서웨이 측은 ‘아직 상당량을 보유하고 있다’고 알려 왔다”며 해명에 나서는 해프닝도 있었다.
버핏은 2007년에 버크셔해서웨이의 손자회사인 대구텍이라는 절삭 공구 전문업체를 방문하기 위해 한국을 처음 방문했다. 당시 한국에 대해 “제조업 강국으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하고 있다”면서 “한국 주식시장은 매력적인 투자 대상”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2011년에 두 번째 한국 방문에서는 “한국에 훌륭한 기업이 많다”며 “한국 기업 인수를 고려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홍석호 기자 will@donga.com
이동훈 기자 dh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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