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체포영장 기한(6일 밤 12시)이 임박한 가운데 야당과 시민단체가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최 권한대행이 윤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에 협조하도록 대통령경호처를 지휘하라는 요구다. 하지만 최 권한대행은 첨예한 정치 갈등에는 개입하지 않고 경제·외교 등 국정 현안과 민생 관리에 주력하겠다는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5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최 권한대행은 이날 “어려운 상황에서 공무 수행 중인 공무원이 다치는 일은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된다”며 “법 집행 과정에서 시민들과 공무원이 다치는 일이 없도록 각별히 신경 써달라”고 말했다. 이 발언은 기재부 대변인실이 언론 공지를 통해 전달했다. 이 같은 성명을 낸 구체적 배경은 언급하지 않았지만, 지난 4일 윤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는 집회에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측과 경찰 간 물리적 충돌이 불거진 상황을 언급한 것으로 해석된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지난 4일 최 권한대행에게 윤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에 협조하도록 대통령경호처를 지휘해달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 6당도 “최 권한대행은 이 사태에 큰 책임이 있다”며 “체포영장이 집행될 수 있도록 경호처를 지휘하라”고 요구했다. 최 권한대행은 이와 관련한 공식 입장을 내지 않았다. 대신 법집행 과정에서 시민과 공무원이 다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원론적 발언만 내놓은 것이다.
정부 안팎에선 최 권한대행이 공수처와 야당의 잇단 압박에도 대통령경호처에 체포영장 집행에 협조하라고 지시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할 것으로 본다. 윤 대통령 체포를 둘러싸고 여야 및 찬반 세력 간 갈등이 극심한 상황에서 섣불리 개입했다가 국론 분열을 조장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 권한대행은 무안 제주공항 참사 수습과 경제·외교 관리에만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의지가 강하다는 것이 측근들의 설명이다.
최 권한대행은 매주 거시경제·금융현안간담회(F4 회의)도 직접 주재하겠다는 계획이다. 탄핵 정국 속에 대통령 권한대행을 경제팀 수장이 맡아 경제 위기 관리에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세간의 우려를 일축하려는 행보라는 분석이 나온다. 오는 8일부터 14일까지 부처별 업무보고도 받는다. 각 부처 장·차관 보고 및 토의 형식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국정 공백을 최소화하고 국민 생활 안정에 만전을 기하겠다는 최 권한대행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정부도 최 권한대행에게 적극적으로 힘을 실어주고 있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국가안보소통보좌관은 지난 3일 브리핑에서 “최 권한대행이 국정 안정에 집중하는 점을 주목하고 평가한다”고 밝혔다. 이어 “양국이 공유하는 가치와 공통의 이익을 진전시키기 위해 한국 정부와 긴밀히 협력하는 데 전념하고 있다”며 “한국 정부와 모든 급에서 소통 채널을 열어둘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미 국무부가 최 권한대행과 일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힌 데 이어 재차 신뢰를 표명한 것이다. 5일 한국을 찾은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부 장관은 6일 최 권한대행과 만날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와 기재부에 따르면 블링컨 장관은 이날 조태열 외교부 장관과 오찬을 겸한 한·미 외교장관 회담을 연 직후 최 권한대행과 만날 예정이다.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뿐 아니라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도 한·미 동맹은 굳건하다는 점을 과시하기 위한 행보로 풀이된다.
강경민/김동현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