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보공단 작년 수지 1.7조원 흑자지만
정부 지원 12조원 빼면 적자 10조 이상
경제학회 “세대간 형평성 고려해
소비세에 추가 과세 해야”
지난해 건강보험(건보)이 현금흐름 기준 1조7000억원 가량의 당기수지 흑자를 냈지만 정부 지원금 12조원을 제외하면 10조가 넘는 손실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건보 재정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경제학계에서는 재정 확충을 위해 다양한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오고 있다.
7일 건보공단은 현금흐름 기준 지난해 건강보험 재정이 1조7244억원 당기수지 흑자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건보 재정은 ‘총수입’에서 ‘총지출’을 뺀 수지로 나타낸다. 총수입은 가입자들이 내는 보험료수입과 정부지원금, 기타수입으로 이뤄진다. 총지출은 보험급여비와 기타사업비로 구성된다.
흑자를 이끈 것은 정부 지원금이다. 지난해 건보에 지원된 정부지원금은 12조1658억원으로 전년(10조9702억원) 대비 11% 늘어났다. 지원금을 제외하면 건보 재정은 총 10조4414억원 가량의 적자를 본 셈이 된다.
반면 보험료수입 증가 속도는 둔화됐고, 보험료급여비 규모는 더 커졌다. 지난해 보험료 수입은 전년 대비 2조4340억원(3%) 증가한 83조9520억원으로 집계됐다. 2022년 이후 증가율이 계속 둔화됐는데 이는 지난해 명목임금 상승이 둔화됐기 때문이다. 지역보험료 역시 전년 대비 3.1% 줄어들었다. 지난해 2월부터 재산보험료 기본공제 기준 금액이 5000만원에서 1억원으로 확대되고, 자동차보험료 부과도 폐지됐기 때문이다.
총 지출은 97조3626억원으로 전년 대비 6조5789억원(7.2%)이나 증가했다. ‘의료공백’에 따라 비상진료체계를 지원하고 수련병원에 보험급여를 선지급하면서 전년 대비 급여가 6조4569억원(7.3%) 늘었기 때문이다.
급격한 인구구조 변화로 건강보험 당기 수지는 오는 2026년부터 적자 전환이 예상된다. 국회예산정책처는 ‘2024~2033년 NABO 중기재정전망’에서 건강보험 재정 수지가 2026년부터 적자로 전환되고, 2031년 누적 준비금도 소진될 것으로 예상했다.
건보 재정 고갈이 가시화된 상황에서 관건은 재정 확충을 위한 재원을 어디서 끌어올 것인지로 향한다. 소득이 많은 청장년 세대들이 건보 재정에 기여하는 비율이 높고, 건강보험 이용은 고령층이 대다수인 상황에서 추가 재원을 누구에게 걷을지에 따라 건보 재정 확보 논의가 자칫 세대 갈등으로 비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제학계에선 현재 건보료 수급방식인 소득세가 아닌 소비세를 늘려 재정을 늘리는 것이 필요하다는 제언이 나왔다. 최근 한국경제학회 학술지에 게재된 ‘건강보험 재정건전화 방안의 세대별 후생효과’ 논문에선 추가 재원을 마련하는 방식으로 △의료비 자기부담률 상향 △건보료율 인상 △노동소득세 기반 과세 △소비세 기반 과세 등 4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연구는 이중 소비세에 추가 과세를 통해 건보재정을 늘리는 것은 세대간 형평성과 후생 측면에서 가장 낫다고 봤다. 우선 현재 건보료와 같이 노동소득세에 추가적인 부담을 지우는 것은 현재의 근로 세대에 부담이 크다는 입장이다. 한국 근로시장 여건상 근로소득은 45~50세에 가장 높고 65세에 급감하는 등 생애주기별 등락이 있는데, 건보료를 인상하면 혜택을 받는 현재 고령세대는 추가 부담이 없는 반면 다음 세대는 부담이 커 형평성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같은 맥락으로 건보료율 인상도 혜택과 부담의 형평성 측면에서 후순위로 평가 받았다.
의료비 자기부담률 상향은 의료비 지출이 큰 현재 고령세대에게 큰 부담이란게 연구진의 시각이다. 개인이 부담할 의료비가 커지면 소득과 자산이 부족한 고령세대에게 타격이 가장 크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