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미국 소비자물가(CPI)가 전년 동월 대비 3.0% 상승했다. 시장 예상치(2.9%)를 뛰어넘은 수치다. 물가와의 전쟁이 상당 기간 길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12일(현지시간) 미국 노동부 발표에 따르면 1월 소비자물가는 지난해 6월 이후 7개월 만에 3%대로 올라섰다. 미국 중앙은행(Fed)의 물가 안정 목표치인 2%를 훌쩍 뛰어넘었다.
주거비와 서비스 부문을 비롯해 달걀 등 식료품 가격이 급등해 물가가 뛰었다. 미국 경제가 다른 선진국 대비 ‘나 홀로 호황’을 이어가고 고용시장도 호조를 보여 물가 상승세가 쉽사리 꺾이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1월 CPI 3.0%로 '깜짝 상승'…7개월 만에 최고
근원 CPI도 3.3%, 예상치 웃돌아…주거비 상승세가 물가 끌어 올려
미국의 1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전년 동월 대비 3.0%를 기록하며 7개월 만에 3%대로 올라섰다. 물가 안정 목표치(2%)를 훌쩍 뛰어넘는 데다 시장 전망치(2.9%)보다도 높다. 시장에써는 올해 미국 중앙은행(Fed)의 기준금리 인하가 당초 예상한 두 차례(0.25%포인트씩 총 0.5%포인트)가 아니라 한 차례(0.25%포인트)에 그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시장 예상치보다 높은 물가
12일(현지시간) 미국 노동부 발표에 따르면 지난달 미국 소비자물가는 전월보다 0.5% 상승해 시장 예상치(0.3%)보다 높았다. 변동성이 큰 에너지와 식품을 제외한 근원 소비자물가도 전년 동월 대비 3.3%, 전월보다 0.4% 올랐다. 이 역시 시장에서 전망한 3.1%와 0.3%를 웃도는 수치다.
1월 물가를 끌어올린 최대 요인은 주택 유지비다. 미국의 1월 주택 가격은 전월 대비 0.4% 뛰어 전체 물가 상승 폭의 약 30%를 차지했다. 특히 자가 주거비가 대폭 올랐다. 자가 주거비는 주택 소유자가 집을 빌려준다고 가정할 때 받을 수 있는 예상 임대료다. 이 수치는 전월 대비 0.3% 상승하고, 연간 기준으로는 4.6% 뛰었다. 에릭 놀랜드 시카고상품거래소(CME)그룹 수석이코노미스트는 CNBC에 “높은 모기지(주택담보대출) 금리로 집을 구매하지 못하는 미국인이 임대 시장에 몰리며 주택 비용 상승이 인플레이션의 주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말했다.
식료품 가격도 물가 상승의 주범으로 꼽힌다. 식료품 가격은 전월 대비 0.4% 상승했다. 가장 큰 원인은 달걀값 폭등이다. 미국에서 조류독감 확산에 따라 닭 수백만 마리를 살처분하면서다. 달걀 가격은 전월 대비 15.2%, 전년 같은 달보다 53% 폭등했다. 미국 노동통계국은 이 같은 달걀 가격 상승폭이 2015년 6월 이후 최대라고 밝혔다. 가정용 식료품 가격 상승의 약 3분의 2를 차지한다.
미국 역사상 최대 피해를 남길 것으로 전망되는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 산불도 인플레이션을 자극했다. 피해 지역에서 임시 거처를 찾는 주민들로 호텔 숙박 수요가 급증하면서다. 산불로 소실되거나 손상된 자동차가 많아지면서 차량 구매 수요도 늘었다. 실제 신차 가격은 변동이 없었지만 중고차와 트럭 가격은 2.2% 상승했다. 이 밖에 일부 기업이 올해 순차적으로 이뤄질 추가 관세 부과를 감안해 제품 가격을 올린 것도 원인으로 분석된다.
◇금리 동결 길어질 듯
지난달 물가 지표가 발표되자 시장에선 금리 인하 기대가 줄어드는 분위기다. 통상 기업은 1월 물가를 보고 제품 가격을 조정하는 사례가 많다. 지난달 물가가 예상 밖으로 높게 나오면서 이런 움직임이 활발해질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월가에선 Fed가 연내 기준금리를 1회 인하하는 데 그칠 것이라는 쪽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작년 말 Fed가 경제를 전망할 때 2회 내릴 것으로 예상된 것과 대비된다. 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금리 선물 시장에선 Fed가 오는 5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때 기준금리를 현 수준인 연 4.25∼4.50%로 동결할 확률을 약 87%로 보고 있다. 연내 기준금리가 동결되거나 한 차례 낮아질 확률은 69%에 달했다. 인하 시점도 일러야 9월(인하 확률 41%)로 전망됐다. 제롬 파월 Fed 의장도 최근 상원 청문회에서 “기준금리 인하를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금리 동결이 상당 기간 길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채권 시장에서도 이런 분위기가 반영되고 있다. 10년 만기 미국 국채 금리는 소비자물가 지표 발표 후 10bp(1bp=0.01%포인트) 급등하며 연 4.63%까지 뛰었다. 한 달여 만에 최고 수준이다. 통화 정책에 민감한 미국 국채 2년 만기 금리도 연 4.36%로 7.50bp 뛰었다. 오스턴 굴즈비 시카고 연방은행 총재는 1월 소비자물가 지표에 대해 “정신을 번쩍 들게 한다”며 “이 같은 수준의 결과가 몇 달간 이어진다면 Fed 임무가 아직 완수되지 않았다는 점에 의문의 여지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인엽 기자/뉴욕=박신영 특파원 insi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