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ㅠㅠ’ 적힌 사과, 무릎은 판사 앞에서만”…유족의 분노 [e글e글]

5 days ago 2

중앙선 침범 후 140m 역주행…10대 희생
父 “아들 살릴 수 있다면 20억도 줄 수 있다”

2024년 5월 19일 부산 역주행 사고 당시, 차량 블랙박스. (영상=독자 제공/최강주 기자 gamja822@donga.com)

2024년 5월 19일 부산 역주행 사고 당시, 차량 블랙박스. (영상=독자 제공/최강주 기자 gamja822@donga.com)

지난해 5월, 부산에서 발생한 역주행 사고로 16세 오토바이 운전자 조현서 군이 숨진 가운데, 가해자가 재판 과정에서 보인 태도가 논란을 빚고 있다. 유족 측은 “돈보다 진심 어린 사과와 책임 있는 태도를 원한다”고 말했다.

■ 140m 역주행 후 충돌…피해자에게 “왜 박았냐” 적반하장

사고는 2023년 5월 19일 오전, 부산진구 가야고가교 아래 도로에서 발생했다. 가해자 A 씨(60)는 중앙선을 넘은 채 약 140m를 역주행하다가, 맞은편에서 정상적으로 주행 중이던 조 군의 오토바이와 충돌했다. 이 사고로 중상을 입은 조 군은 한 달 뒤인 6월 16일 끝내 숨졌다.

목격자에 따르면, 사고 직후 A 씨는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던 조 군에게 “오토바이를 그렇게 몰아서 차를 박았냐”며 소리를 지르며 삿대질을 해 주변을 경악하게 했다.

제출된 A 씨의 휴대전화 통화기록 6건 중 119 신고는 없었다.

■ “가난하다”, “용서해달라”…유족 향한 반복된 읍소

A 씨는 6월 27일, 조 군의 아버지에게 처음 전화를 걸어 “가난하다”, “용서해 달라”, “자신을 살려 달라”는 말만 반복했다. 유족 측은 조 군 사망 이후 가해자와의 합의 의사가 없다고 밝혔다.조 군의 아버지는 “오히려 제가 10억이든 20억이든 줄 테니 아들을 살려 달라고 말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재판을 받고 죗값을 치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A 씨가 메시지로 보낸 손편지 사진 (사진=독자 제공/최강주 기자 gamja822@donga.com)

A 씨가 메시지로 보낸 손편지 사진 (사진=독자 제공/최강주 기자 gamja822@donga.com)

같은 해 9월, A 씨는 조 군의 아버지에게 문자 메시지로 자필 편지를 촬영한 사진을 보냈다.

그러나 문자 본문은 비어 있었고, 사진 속 편지에는 조 군의 이름도 없었으며, ‘ㅠㅠ’와 같은 이모티콘도 포함되어 있었다.

■ 법정선 무릎 꿇고 사과…유족에겐 침묵

사진=조현서 군의 어머니가 올린 SNS 게시글 캡처.

사진=조현서 군의 어머니가 올린 SNS 게시글 캡처.

조 군의 아버지는 “첫 재판에서 A 씨는 유족에게는 단 한 마디의 사과도 하지 않았고, 오직 판사 앞에서만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했다”고 전했다.

당시 A 씨는 노란색으로 염색한 머리와 인조 속눈썹을 한 채 법정에 출석해 유족의 분노를 다시 샀다. 조 군의 아버지는 “사고 당일, 첫 재판, 5월 2일 판결 때도 그런 모습으로 나왔다”고 했다.

A 씨는 정신적 충격을 이유로 경찰 조사를 미루기도 했다. 또 제출한 정신병원 진단서는 모두 첫 공판일 이후 발급된 것으로, 유족은 “처벌을 피하기 위한 목적의 자료로 판단된다”고 반발했다.

故 조현서 군의 사진은 유족 동의하에 공개합니다. (사진=독자제공/최강주 기자 gamja822@donga.com)

故 조현서 군의 사진은 유족 동의하에 공개합니다. (사진=독자제공/최강주 기자 gamja822@donga.com)

경찰 조사에서 A 씨는 “월 150만 원의 수입 외에는 별다른 재산이 없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이후 법정에서는 ‘18년간 의류업계에서 인정 받은 매니저’라며 자료를 제출했고, 월 수입은 200만 원이라고 했다.

유족 측은 “우수한 실적을 인정받은 경력이 있음에도 최저 임금에 못 미치는 월 수입” 주장에 신빙성과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가난을 강조하던 A 씨는 부장판사, 부장 검사 출신으로 이루어진 법인 소속의 변호사를 새로 선임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A 씨의 변호인은 법정에서 3000만 원짜리 수표를 내보이며 “어렵게 마련한 공탁금”이라고 주장했지만, 정작 공탁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조 군의 아버지는 “우리는 돈을 요구한 적이 없다. A 씨가 공탁을 하면 받지 않겠다고 공탁 회수 동의서까지 준비했지만, 그는 공탁조차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 가해자 가족, ‘지식인’에 사고 묘사…“형량 낮출 방법 묻기도”

사고 이후 네이버 지식인에 게시된 글. (사진=독자제공/최강주 기자 gamja822@donga.com)

사고 이후 네이버 지식인에 게시된 글. (사진=독자제공/최강주 기자 gamja822@donga.com)

사고 직후 A 씨의 가족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포털사이트 ‘지식인’에 사고를 구체적으로 묘사한 질문을 올린 정황도 포착됐다.

해당 글은 사고 다음 날인 5월 20일과 27일에 게시됐다. 피해자 나이, A 씨의 생년 정보, A 씨 진술 내용 등이 실제 사고 상황과 일치했다.

질문 내용에는 “구속 가능성“, ”조금이라도 형을 낮출 수 있는지“, “올해 안에 해결될지 궁금하다”는 문구도 포함돼 있었다.

이 글은 올해 2월 A 씨가 국선 변호인을 해임하고 사선 변호인으로 교체한 시기와 맞물려 삭제됐다. 유족은 해당 글 작성자가 가해자 측 인물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사고 이후 네이버 지식인에 게시된 글. (사진=독자제공/최강주 기자 gamja822@donga.com)

사고 이후 네이버 지식인에 게시된 글. (사진=독자제공/최강주 기자 gamja822@donga.com)

유족은 조 군 관련 뉴스를 검색하던 중 이 글을 발견하고 진정서를 제출했다. 조 군의 아버지는 “변호사가 A 씨에게 물었으나 이를 부인했고, 그 뒤로 갑자기 글이 삭제됐다”고 설명했다.

■ “차라리 나중에라도 진심으로 사과했더라면…”

故 조현서 군과 어머니의 카카오톡 대화 내용. (사진=독자제공/최강주 기자 gamja822@donga.com)

故 조현서 군과 어머니의 카카오톡 대화 내용. (사진=독자제공/최강주 기자 gamja822@donga.com)

조 군의 아버지는 “잘못을 했으면 인정하면 되는 일이다. ‘어린 마음에 엄마가 걱정돼서 글을 올렸다’고 사과했다면 끝날 일이었다”며 “이들은 벌 받는 것이 두려운 것이지, 우리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은 없어 보인다”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조 군은 예술중학교를 졸업한 뒤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음악 교육에 비용이 많이 든다는 것을 알고는 부모의 부담을 덜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유족은 “가족을 먼저 생각하던 아이였다. 너무 기특해서 말리지 못했다”고 회상했다.

또한 “블랙박스 영상에서 사고 직전까지 브레이크 제동이나 핸들 조작의 흔적이 없었다. 스마트 크루즈 기능을 켜두고 딴짓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전문가에게 정밀 감정을 의뢰했다.

사건은 조 군의 부모가 소셜미디어(SNS)에 사고 이후 1년 간 재판 과정과 심경을 올리며 재조명됐다. 검찰은 A 씨에게 징역 3년을 구형했으며, 선고는 오는 5월 30일 내려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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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주 기자 gamja82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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