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축구대표팀 지소연이 16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대만과 E-1 챔피언십 최종전에서 2-0 승리 후 우승한 뒤 트로피를 들어올리고 있다.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선수들에게 제가 먼저 이야기했죠. 아무도 트로피 건드리지 말라고요.”
지소연(34·시애틀 레인)은 그만큼 우승에 간절했다. 여자축구대표팀의 ‘살아있는 전설’인 그가 마침내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20년 만의 첫 번째 경험이었다.
한국은 16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대만과 2025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 최종 3차전에서 2-0으로 승리하며 대회 정상에 올랐다. 1승2무(승점 5)를 기록한 한국은 일본, 중국과 승점 동률을 이뤘지만, 3팀 동률 시 적용되는 상대 전적 및 다득점 규정에 따라 3골로 중국(2골), 일본(1골)을 제치고 우승을 차지했다.
이번 대회는 지소연의 존재감이 빛난 무대였다. 1차전 중국전에서 종료 직전 중거리포로 극적인 동점골을 터트리며 2-2 무승부를 이끌었고, 이날 대만전에서도 후반 25분 페널티킥으로 선제 결승골을 넣으며 팀을 정상으로 이끌었다.
A매치 169경기 74골로 남녀 통틀어 한국축구 최다출전·최다득점이라는 금자탑을 쌓은 그지만, ‘우승’은 유독 멀게만 느껴졌던 단어였다. 2006년 10월 캐나다와 피스퀸컵에서 A매치 데뷔전을 치른 그는 3차례 월드컵(2015·2019·2023)은 모두 조별리그에서 고배를 마셨고, 아시안게임 최고성적은 동메달, 올림픽 무대는 번번이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여자축구대표팀 지소연이 16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대만과 E-1 챔피언십 최종전 도중 동료에게 작전을 지시하고 있다.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지소연은 “대표팀에서 우승컵 들어올린 건 처음이다. 이 순간을 굉장히 기다려 왔다. 그 시간들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오늘 다시 한 번 느꼈다. 지금까지 버텨온 나 자신에게 고생했다고 말해주고 싶다”고 소감을 전했다.
2011년 고베 아이낙(일본) 유니폼을 입고 프로 생활을 시작해 첼시 위민(잉글랜드)에서 5번의 리그 우승을 경험하며 세계 무대에서 인정받은 한국 여자축구의 상징적인 존재다. 이후 수원FC 위민을 거쳐 현재는 시애틀 레인(미국) 소속으로 활약 중이다.
이번 대회는 단지 승리 그 이상의 의미였다. 후반 교체돼 벤치로 돌아온 지소연은 “선수들에게 ‘트로피는 아무도 먼저 건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그랬더니 후배들이 ‘트로피는 당연히 언니들이 들어야죠’라고 말해줬다”며 훈훈한 뒷이야기를 전했다.
이어 “20년 동안 남의 우승에 박수만 쳤다. 오늘은 우리가 우승하니 선수들이 조금 어색해했다. 그래서 우승 세리머니가 좀 길었던 것 같다. 앞으로 더 나아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전설 지소연은 그렇게 오랜 기다림 끝에 대표팀 커리어의 마지막 퍼즐을 채웠다.
여자축구대표팀 지소연이 16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대만과 E-1 챔피언십 최종전 후반 25분 페널티킥을 성공시킨 뒤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다.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수원|백현기 기자 hkbaek@donga.com
수원|백현기 기자 hkbae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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