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ESG] 키워드 포커스 ③ 그린 클레임 지침
지난 2023년 3월 EU 집행위원회는 ‘그린 클레임 지침(Green Claims Directive, GCD)’을 입법 예고했는데, 이 지침은 제품 및 서비스의 환경 관련 주장에 대해 엄격한 검증과 투명한 정보제공을 요구한다. 2025년 하반기 최종 입법안 도출 이후 각 회원국은 24개월 내 자국 법령으로 이행해야 하며, 실제 발효는 2027년 말부터 2028년 초로 예상한다.
GCD는 기존 부당 상업적 관행 지침(UCPD)과 소비자 권리 지침(CRD)을 보완하는 별도 단일 지침으로, ‘환경 주장’에 초점을 맞춘 독립적 체계 방식이다. EU 디렉티브 형식으로, 각 회원국이 국내법으로 전환해야 하지만, 그 요구사항이 구체적이라 대부분 직역에 가까운 방식으로 법제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는 자발적 환경 주장을 명시적으로 규율하는 첫 EU 법률안으로, 소비자 정책이 ‘권리 보장’에서 ‘시장 신뢰성 구축’으로 전환되는 상징적 사례다. 기업의 환경 커뮤니케이션은 ‘표현의 자유’에서 ‘검증의 책임’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미 일부 회원국은 기존 UCPD 또는 광고 관련 법령 내 환경 주장을 제한하는 기준을 두었지만, GCD가 채택되면 이러한 규정은 EU 차원에서 통일된 형태로 정비되고 상위 법적 효력을 갖게 될 전망이다.
GCD, 기존 지침과의 차이는
GCD는 기존 UCPD(2005)와 CRD(2011)의 한계를 보완한다. 기존 지침은 소비자 권익 침해를 억제하고 선택권을 보호하는 사후적 규제였지만, 환경정보의 정확성이나 검증에는 제한적 효과를 보인 것이다. UCPD는 기업이 소비자를 오도하거나 기만하는 상업적 관행을 금지하는 원칙적 조항을 중심으로 구성되며, 일반 조항을 통해 환경 주장 같은 표현도 간접적으로 규제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반면 GCD는 환경 주장에 대해 과학적 근거 기반의 수명주기 분석(LCA, 전과정평가), 제3자 검증, 정보공개 문서 확보 등을 사전 요건으로 명시하며, 이를 충족하지 않을 경우 해당 주장 사용 자체를 제한한다. 이는 소비자를 단순히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신뢰 가능한 정보를 바탕으로 적극적인 친환경 선택을 할 수 있게 하자는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GCD는 ‘소비자의 녹색전환 역량 강화 지침(ECGT)’과 전략적으로 연결돼 있다. ECGT는 제품 선택 시 제공되어야 할 지속가능성 관련 정보의 항목과 표현 방식을 규정하고, GCD는 그 정보가 검증 가능하도록 보장한다. 규제 집행 구조도 사후적 감시에서 사전적 기술 기반 규제로 전환된다.
GCD는 환경 주장을 과학적 근거와 검증을 통해 정당성을 확보해야 하는 정보 행위로 재정의하며, 다음 4가지 유형을 규제한다. ▲ 일반 환경 주장: ‘친환경적’, ‘지속가능한’ 등 구체적 설명이 없는 표현 ▲구체적 환경 주장: ‘100% 재활용 소재 사용’ 등 계량적 수치를 담은 표현 ▲비교 환경 주장: ‘타사 제품 대비 에너지 사용량 30% 절감’ 등 비교 표현 ▲시간 기반 주장: ‘지난 5년간 CO₂ 배출량 절반 감소’ 등 개선 실적 강조 표현 등 4가지다. 이러한 표현은 수명주기 기반 데이터와 제3자 검증을 거쳐야 합법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특히 GCD는 ‘기후 중립적(climate neutral)’이라는 표현은 탄소상쇄만을 근거로 삼을 경우 사용이 제한될 것으로 보인다.
2024년 초, EU 집행위원회는 네슬레와 이노센트 드링크의 ‘지속가능한 포장’, ‘친환경 배송’ 등 표현을 문제 삼았다. 또 2023년 조사에서 EU 내 기업의 환경 주장 중 53.3%가 모호하거나 과장되었으며, 40% 이상이 검증을 거치지 않았다고 밝혔다.
GCD, 기업에 미치는 구조적 영향은
GCD는 기업의 내부 운영과 외부 커뮤니케이션 전반에 구조적 개편을 요구하며, 5가지 핵심 구조에 변화를 가져온다. 첫 번째는 조직 구조 및 기능 분장 재편이다. 환경 주장은 마케팅뿐 아니라 법무, ESG, 데이터 분석, 제품개발 부서가 함께 관여하는 다기능 협업 체계로 전환이 필요하다. 두 번째는 내부 정보 시스템 강화다. 모든 환경 주장에 대해 수명주기 기반 데이터, 탄소배출량 근거 등 입증이 필요하며, 이를 위한 정보 인프라 통합이 필수적이다.
세 번째는 기업 내 규정 체계 제도화다. 환경 주장에 대한 검토, 승인 절차는 준법 감시 체계와 연결되어야 하며, 표준 운영 절차 제정이 필수적이다. 네 번째는 공급망 정보 투명성 확대다. 제품의 환경 주장은 공급망 전반의 정보에 기반해야 하므로 환경정보 기반 공급망 관리 체계로 재편이 필요하다. 다섯 번째는 제품 및 서비스 전략 재설계다. 환경 주장의 전제가 되는 ‘실질적 친환경성’은 전체 수명주기에서의 환경적 개선 효과를 포함해야 한다.
GCD는 기업이 환경적 가치를 실제로 내재화하고 정량적으로 증명할 수 있도록 구조 변화를 요구한다. 이는 국내 기업에 ESG 경영의 실질성과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한 전환 계기가 될 수 있다. 단순 리사이클 소재 사용이 아닌, 전체 수명주기에서의 환경적 개선 효과를 포함해야 한다. 이는 제품 개발 단계부터 폐기 후 처리까지 설계 단계에서 고려되지 않으면 정당한 환경 주장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환경 주장은 제품 설계부터 폐기까지 전 생애주기에서 환경적 영향 개선이 객관적으로 확인되어야 정당한 주장으로 인정된다. 이는 ESG가 브랜드의 수식어가 아닌, 제품 자체의 구조적 속성이 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기업 대응의 중심축은 정량적 데이터를 중심으로 한 가치사슬 전반의 ESG 내재화다. 구매·생산·물류·판매 전 과정에서 환경 정보를 수집하고, 검증 가능한 구조로 통합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과 조직 체계 정비가 핵심이다.
내부적으로는 환경 주장에 대한 명확한 기준과 책임 분장이 필요하며, 모든 커뮤니케이션은 사전 검토, 제3자 검증, 문서화된 근거를 기반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궁극적으로 제품과 기술, 서비스 전략 자체가 ESG 기준에 맞춰 재구성되어야 한다. 이러한 변화는 단기적으로는 체계 정비와 비용 부담이 있지만, 선제적으로 준비한 기업은 세계시장에서 신뢰를 기반으로 한 경쟁우위를 선점할 수 있다.
유준혁 한국 딜로이트 그룹 One ESG 파트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