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 새로운 대한민국, 혁신생태계를 위한 경제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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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재광 한국핀테크연구회장·인스타페이 대표배재광 한국핀테크연구회장·인스타페이 대표

◇경제위기와 대통령 선거, 1997년 IMF 데자뷔

다시 경제가 어렵다. 1997년 IMF 경제위기 당시 나는 사법연수원 28기 연수생이었다. 당시 조흥은행(현 신한은행)의 연이율 22%는 변호사도 아닌 연수생들에게는 잔인한 기억이었다. IMF 경제위기는 1990년 초반부터 시작된 인터넷 생태계, 김대중 대통령이 발빠른 결단과 대처, 벤처활성화 정책을 폄으로써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다.

5월 18일 저녁 8시, 21대 대통령후보자들의 경제분야 토론이 있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 권영국 민주노동당 후보(이하 당명 생략)가 참석했다. 자신들이 공약한 내용을 알리고 상대방 정책과 발언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했다. 국민들이 이해할 만하고 귀에 쏙 들어 올만한 내용이 많지 않았다는 것이 시청자들의 일반적인 의견인 것 같다. 전임 대통령 탄핵으로 인한 조기 대선이라 이재명 후보를 제외하고는 각 당이 미처 준비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였다.

18일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제21대 대선 1차 후보자 토론회 중계방송을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18일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제21대 대선 1차 후보자 토론회 중계방송을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2025년 우리 앞에 닥친 경제위기는 간단하지 않다. 김대중 정부 이후 모든 정부들은 지난 20여년간 혁신을 지속하지 않았다. 인터넷과 디지털 경제를 지나 모바일을 거쳐 인공지능(AI) 네이티브 시대다. 그간 정부의 선제적인 진입 규제강화로 도전적인 스타트업 부재는 위기를 심화시켰다. 외환위기와 미·중 패권 경쟁 등 외부적인 경제환경도 우호적이지 않았다. 국내 경제정책의 우선 순위가 부동산 투기 등에 경기 활성화에 초점을 맞춘 관행이 지속된 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대한민국의 경제위기와 사회위기는 시작됐으며 이제 진행형이다. 6·3 대선이 중요한 이유다. 강을 건너는 과정에서 배를 갈아 탄다는 것은 그만큼 위험하다. 위기에 대처할 만한 경험과 준비가 필요한 이유다. 경기가 어렵다고 손쉬운 건축경기 활성화를 들고 올 수는 없다. 일부 후보자의 공약은 구태의연하고 위험하기까지 하다. 정책적으로 준비되지 않았으며 작금의 경제위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후보였다. 후보들의 공약을 구체적으로 살펴 보기 전에 경제위기 극복과 AI 네이티브 시대에 적합한 최소한의 원칙에 대해 정리해 보자.

한국과 미국의 가계자산 구성 비교한국과 미국의 가계자산 구성 비교

◇무엇으로 돈을 벌게 할 것인가

일단 현재 국민대차대조표상 가계자산과 소득 구성을 살펴 보자.

미국의 경우 가구 전체 자산(USD165,318B) 중 주식 등 금융자산이 68%, 주택 등 비금융자산이 31.9%이며, 부채는 전체 자산의 11.5%다. 가계 소득은 임금소득이나 사업소득 외에도 주식이나 펀드 등 금융소득이 20% 이상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가구별 전체 자산 5억2727만원 중에서 예금 등 금융자산이 24%인 1억 2587만원이며, 주택 등 비금융자산이 76%인 4억140만원이다. 자산 구성에서 부채는 전체 자산의 17.4%인 9186만원이다. 2023년 총가계소득 6762만원에서 근로소득이 4390만원으로 64.9%에 달하며, 재산소득이 428만원으로 6.4%, 그 중 금융소득은 175만원으로 2.6%에 불과하다.

토론에서 이재명 후보는 사실상 유일하게 단기적인 경제위기 해법과 장기적인 혁신과제를 구분해 제안했다. 김문수 후보는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건설사 불경기에 대한 경기부양을 주된 경기 대책으로 공약했다. 이준석 후보와 권영국 후보는 단기적인 경기 대책에 대해 특별한 공약을 제시하지 않았으며, 이전소득에 대한 비판(이준석 후보), 분배 문제를 지적(권영국 후보)했다.

사실 경제위기의 본질은 잠재성장율의 지속적인 하락과 혁신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경제주체인 가계는 생산의 주체인 기업에 노동을 제공하고 임금을 지급받는다. 현재 소비가 부족한 이유는 기업 활동이 위축돼 가계에 지급할 임금과 기업 이윤이 감소해 가처분 소득이 줄어 든 것이 소비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특히 자영업 비율이 전체 사업자의 40%가 넘는 우리나라로서는 소비위축이 피부에 직접 닿고 충격은 중첩적일 수 있다.

경제위기의 이면에는 우리나라의 독특한 경제구조적인 문제도 있다. 통계청에서 발표하는 국민대차대조표를 읽어 보자. 대변의 소득원을 보면 우리 가계 소득의 97.4%가 실질적으로 임금소득이고, 2.6%가 금융소득으로 구성돼 있다. 기업들이 고용을 늘리지 않고 기존 고용도 줄이고 있기 때문에 가계는 임금소득이 급격하게 감소하고, 금융소득이 거의 없기 때문에 임금소득의 상실을 보전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고용감소가 바로 가족 생존의 문제가 된다. 대차대조표상 현금화할 수 있는 자산인 금융자산도 30%에 불과하기 때문에 실제 위기가 6개월 이상 지속될 경우, 가족 구성원의 기초생활 조차 위기를 맞게 된다. 당연히 주거비, 식품비, 교육비 등 필수 비용 외에는 지출을 줄일 수 밖에 없다. 외식비, 문화생활 등을 위한 지출은 감소된다. 기업의 초과 이윤에 기댄 법인카드 사용, 아파트 가격 상승에 따른 자산효과에 기댄 높은 소비지출도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

현재 경제 위기가 혁신의 부재, 생산성 하락, 가계자산의 부동산(아파트) 편중이라는 구조적인 면과 단기적인 소비 감소 등에 따른 경기하락이라는 중첩적인 위기의 결과라는 점을 고려할 때, 단기적인 대책과 장기적인 대책을 함께 고려해야 할 것이다. 구조적인 문제 중에서 혁신, 생산성 문제 등 경제성장 문제는 국가경쟁력과도 밀접한 사안이라는 점에서 혁신생태계 자체의 문제로 귀착된다. 또 당면한 위기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과거처럼 다시 같은 위기가 반복되지 않도록 근본적인 해결책이 나와야 할 것이다. 단기적인 대책으로 소득을 보전하기 위하여 지역화폐 등 이전소득을 지급하더라도 가계소득에 승수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하고, 자산의 구성과 축적이 불경기 등 경제 위기를 대처하는데 적절해야 한다.

국민가계대차대조표상 소득원은 위기에 대비 금융소득 등으로 다양해야 한다. 현재와 같이 임금소득에만 기댄다면 위기는 중첩적으로 올 수 밖에 없다. 비부동산 자산(금융자산)의 비율이 최소 70%이상이 되어야 위기에 견딜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주거용 부동산(아파트)을 소득용 자산, 실제로는 투기형 자산으로 생각하고 보유하느라 주식 등 금융상품을 보유할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하게 해서는 안될 것이다.

◇후보자들의 정책공약의 적절성을 살펴 본다

김문수 후보는 건설사의 위기를 중요하게 생각해서인지 부동산 경기, 특히 미분양 아파트를 정부가 구매해서 경기를 부양해야 한다는 정책을 제안했다. 미분양 아파트 구매 방법, 기대효과 등에 대해 구체적인 설계를 발표하지 않아서 지금 시점에서 정책의 당부에 대해 논하기는 어럽다.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에 대한 금융구제로서 대여원금과 이자 감면을 공약하고 있다.

이에 반해 이재명 후보는 민주당의 과거 경험에 비추어 부동산에 대한 실수요 진작 정책조차 정부가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일관성 있게 집행하지 않는 경우 부채증가, 아파트 거래 투기화 등 부작용만 두드러질 것이므로 특별한 정책을 공약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간 정부가 아파트를 구매할 수 있도록 정책자금을 제공하거나 은행 등 금융회사가 과도한 아파트 담보대출을 함으로써 투기성 가수요로 아파트 가격을 올려서 주택건설을 활성화해야 고용 증대나 생산성 향상, 혁신 등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은 사실상 전무한데 비해, 가계자산에서 부동산(아파트)이 차지하는 비율만 높여서 위기를 중첩시킬 것이라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지역화폐 발행,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에 대한 부채탕감, 정책자금 집행을 제안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국민들은 각 후보들의 공약을 충분히 고려해서 한표의 주권을 신중하게 행사해야 한다. 후보들의 부동산 정책이나 단기적인 경기 처방이 국민대차대조표를 왜곡하는 결과를 가져 오면 안될 것이므로 경제정책의 내용은 실행 효과를 고려해 신중하게 발표돼야 할 것이다. 자산항목에서 부동산(아파트) 비중은 낮추고, 비부동산(금융자산) 비중은 높이는 방향으로 개선될 수 있게 결정되어야 한다.

◇인구 감소, 국가 소멸의 위기

지역 소멸이 아니라 국가 소멸을 고려해야 한다. 후보들은 경제 공약만이 아니라 정치, 사회, 문화 등 모든 공약에 다음 두가지를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하나는 우리나라 혁신기업 비율이 OECD 최하라는 점과 합계출산율이 유엔통계 244국 244위인 0.72라는 사실, 지역소멸이 아니라 국가 소멸을 고려해야 한다는 의미다. 지난 4월 2일 독일 유명 과학유튜브 채널(Kurzgesagt)이 '한국은 끝났다(South Korea is over)'라는 제목의 영상에서 한국의 인구는 4세대 만에 현재의 20분의 1로 감소해 255만명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유튜브 채널 'Kurzgesagt' 화면 캡처.유튜브 채널 'Kurzgesagt' 화면 캡처.

물론 지금까지의 추세가 유지된다는 가정이긴 하지만 현재 우리사회는 인류 사상 유례없는 내부적 요인에 의한 소멸 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6·3 대통령 선거에서 선출되는 대통령은 결과적으로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상황에 직면할 대통령이다. 그의 공약과 행보 하나하나가 국가의 미래와 공동체 구성원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다. 국가소멸 위기에 대해 종합적이고 신뢰성 있는 공약을 제시하고 국민에게 국가 소멸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어야 한다.

이번 경제정책 공약에서는 국가 소멸의 위기에 대한 유효한 방안을 제시한 후보가 눈에 띄지 않았다. 그나마 이재명 후보가 지방거점 도시 중심의 대학, 연구 집중, AI컴퓨팅 센터 개설 등으로 지역 소멸 대책을 제시한 것 정도였다. 모든 후보들은 5월 23일 사회, 27일 정치 분야 토론회에서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공약을 제안하고 서로 경쟁해야 할 것이다.

◇2025년 6월 4일, 완전히 새로운 대한민국

길고 긴 터널을 지나 봄을 맞았다. 머지않아 여름이 올 것이다. 새정부는 AI와 함께 시작할 것이라 한다. 성공을 기원하는 것은 모두 한마음이다. 혁신은 사람으로부터 시작된다. 후보들의 모든 공약은 사람에 의해 실행되고 실현된다. 누가 담당하느냐에 의해 결정된다. 2100년 대한민국을 준비해야 한다. 서로를 미워하고 증오할 시간도 없다. 6월 4일이 지나면 선의의 경쟁, 진짜 대한민국을 위한 경쟁이 있을 뿐이다.

배재광 한국핀테크연구회장·인스타페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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