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야흐로 인공지능(AI) 시대다. “오늘 점심 메뉴 추천해줘” 같은 소소한 질문부터 우주 생성의 비밀을 묻는 심오한 탐구까지, AI는 우리 곁의 '만능 해결사'처럼 자리매김하고 있다. 챗GPT가 정교한 보고서를 작성하고, 미드저니가 순식간에 예술 작품을 창작하며, 깃허브 코파일럿은 개발자의 코딩 작업을 돕는 충실한 보조 역할을 한다. 이처럼 AI는 이미 우리 일상과 업무 깊숙이 스며들어 그 영향력을 빠르게 확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 눈부신 기술 발전의 이면에서 우리는 근본적인 질문에 직면한다. AI는 과연 인간 지능의 한계를 뛰어넘게 하는 위대한 증폭기일까, 아니면 인간의 자리를 위협하는 냉정한 대체자일까? 이 거대한 기술 앞에서 우리의 이해와 활용 준비는 충분한지 끊임없이 되물을 수밖에 없다.
AI의 활약상은 실로 경이롭다. 의료 현장에서는 수백만장의 의료 영상을 학습한 AI가 인간 의사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초기 암을 진단한다. 제약 분야의 '알파폴드' 같은 AI는 단백질 구조 예측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시켜 신약 개발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법조계 역시 AI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않다. 방대한 판례와 법률 문서를 순식간에 분석해 변호사의 업무 효율을 극대화하고, 계약서의 잠재적 위험까지 알려준다. 창작의 영역에서도 AI는 인간의 감성을 자극하는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작곡한다. 최근 마이크로소프트(MS), 메타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이 AI 도입을 이유로 대규모 인력 감축을 단행하는 모습은 AI가 가져올 사회경제적 변화의 단면을 보여준다. AI의 발전이 인간의 지능을 넘어서는 전환점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AI가 분석, 예측, 심지어 창작까지 넘보는 시대에, 인간 전문가의 고유한 가치는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단순히 AI를 잘 다루는 기술, 즉 '프롬프트 엔지니어링' 능력만으로는 부족하다. AI가 제시하는 결과물이 아무리 그럴듯해 보여도, 그 안에 숨겨진 편향성이나 논리적 오류를 간파하는 비판적 사고력, 그리고 그 결과를 현실 세계의 복잡다단한 맥락 속에서 해석하고 적용하는 통찰력이야말로 AI가 넘볼 수 없는 인간 전문가의 핵심 역량이다.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하지만, 데이터가 담지 못하는 세상의 미묘함이나 윤리적 딜레마 앞에서는 엉뚱한 답을 내놓거나 판단을 유보하기 일쑤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인간의 깊이 있는 성찰과 책임감 있는 결정이 절실히 요구된다. 따라서 AI 시대의 전문가는 AI를 단순한 도구로 취급하는 것을 넘어, AI의 한계를 명확히 인지하고 그 잠재력을 최대한 발현시킬 수 있는 'AI 기획자'이자 'AI 윤리학자'로 거듭나야 한다. 어떤 데이터를 학습시키고, 어떤 질문을 던지며, AI의 결과물을 어떻게 검증하고 활용할 것인지 결정하는 주체는 결국 인간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융합하고 AI를 협업 파트너 삼아 기존에는 해결하기 어려웠던 복잡한 문제에 도전하는 '융합형 문제 해결사'로서의 역할이 핵심으로 부상할 것이다.
이러한 AI와의 성공적인 공존을 위해서는 개인, 교육, 사회 시스템 전반의 변화 또한 요구된다. 개인은 AI 기술의 원리를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는 AI 리터러시를 함양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배우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특히 AI가 대체하기 어려운 인간 고유의 역량인 창의성, 공감 능력, 소통 능력, 복합적 문제 해결 능력 등을 키우는 데 집중해야 한다.
교육 시스템 또한 근본적인 혁신이 필요하다. 주입식 지식 전달에서 벗어나, 학생들이 AI를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스스로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책을 찾아나가는 자기 주도적 학습 능력과 협업 능력을 배양해야 한다. 사회적으로는 AI 기술의 발전이 야기할 수 있는 일자리 문제, 프라이버시 침해, 데이터 편향성, 알고리즘의 불투명성 등과 같은 윤리적·사회적 문제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와 함께 선제적인 규제 및 지원 정책 마련이 필수적이다.
AI는 인간을 대체하기 위한 경쟁자가 아니라, 인간의 지능과 창의성을 무한히 확장할 수 있는 강력한 파트너이자 '위대한 증폭기'가 될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AI가 제시하는 무한한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탐색하되, 그 한계와 위험성을 명확히 인지하고 대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이 강력한 도구를 어떻게 활용해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 것인가에 대한 우리의 끊임없는 고민과 주체적인 선택이다. AI와의 공존은 이미 시작됐다. 지금 당신의 분야에서 AI는 어떤 질문을 던지고 있는가? 그리고 당신은 그 질문에 어떤 답을 준비하고 있는가? AI라는 거대한 파도에 휩쓸릴 것인가, 아니면 그 파도를 타고 새로운 미래를 항해할 것인가? AI 시대의 미래는 기술이 스스로 정하는 운명이 아니라, 그것을 올바르게 이끌어갈 우리의 지혜와 윤리적 선택에 달려 있다.
서용철 국립부경대 교수·전 부산과학기술고등교육진흥원장 suh@pk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