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골드러시가 시작됐다.”
프랑스 월간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는 최근 금값 상승세를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19세기 각국 노동자가 금을 채취하려고 미국 캘리포니아로 몰렸듯 전 세계 자금이 금으로 쏠리고 있다는 겁니다. 13일(현지시간) 금 선물 가격은 사상 처음으로 트로이온스당 3000달러를 돌파했습니다. 이러한 '골드 러시'의 배경은 무엇일까요.
이날 뉴욕상품거래소(COMEX)에서 금 선물 가격은 장중 한때 전 거래일보다 0.59% 상승한 트로이온스당 3005.9달러를 기록했습니다. 금 가격은 올해 들어 14%, 지난해 대비 38% 이상 올랐습니다.
금 가격이 상승한 이유는 우선 가치 상승의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우선 미국 중앙은행(Fed)이 곧 기준금리를 인하할 것이라는 기대 심리가 금 가격에 반영됐다는 해석이 나옵니다. 무이자자산인 금의 가격은 실질금리가 내리면 상승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실질금리가 높을 때는 국채같은 이자를 주는 자산이 더 매력적이기 때문에 금 보유 가치가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애기입니다.
최근 미국 경제지표는 '금리 인하'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이날 발표된 2월 미 생산자물가지수(PPI)넌 전년 동월 대비 3.2% 오르는데 그치며 시장 예상치(3.3%)를 밑돌았습니다. 전날 나온 2월 소비자물가지수(CPI)도 전년 대비 2.8% 오르며 에상치(2.9%)를 하회했습니다.
여기에 무역전쟁 충격을 피하려는 투자자의 안전자산 선호도 금 가격을 밀어 올렸습니다. 지난해 랠리를 펼쳤던 미국 S&P500 지수는 최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조치로 흔들리고 이있습니다. 전고점인 지난달 19일부터 이날까지 10% 넘게 떨어지며 조정장에 진입했습니다. 데이비드 윌슨 BNP파리바 수석 원자재전략가는 “미국과 글로벌 성장 기대가 둔화하면서 안전자산인 금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세계금협회(WGC)에 따르면 지난달 글로벌 실물 금 기반 상장지수펀드(ETF)에는 94억달러(약 13조6500억원)가 순유입됐습니다. 3년 만의 최대 유입세인데요. 지역별로는 북미 투자자들이 68억달러(약 9조9000억원)어치를 매수했습니다. 미국이 수입 금에 관세를 매기기 전 런던에서 뉴욕으로 금을 옮긴다는 소식에 뉴욕상품거래소(COMEX) 금값이 뛰자 투자자들도 추격 매수에 나선 결과입니다. 중국에서는 사상 최대 규모인 19억달러가 넘는 자금이 금 ETF에 몰렸습니다.
각국 중앙은행도 공격적으로 금을 비축하며 ‘골드 랠리’를 이끌고 있습니다. WGC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중앙은행은 글로벌 금 수요의 약 5분의 1 수준인 1044t의 금을 매입했습니다. 15년 연속 순매수가 이어진 겁니다.
중국은 2013년부터 꾸준히 미 국채를 파는 대신 금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중국은 금 보유량을 44톤(t) 늘린 반면 미 국채 573억달러를 매도했습니다. 작년 말 중국의 미 국채 보유량은 7590억달러로 2009년 이후 최저치입니다.
이를 두고 미국 제재를 피하고 달러 패권을 흔들려는 행보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그간 달러 중심의 경제질서를 유지하게 했던 달러 보유량을 줄이고 중립적인 금 보유량을 늘리겠다는 구상이라는 것이죠. 왕칭 동방금성 수석 거시분석가는 “인민은행의 금 보유 증가는 주권 화폐의 신용을 강화하고 위안화의 국제화 과정을 추진하는 데 유리한 조건을 창출할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중국 인민은행은 지난해 5월 중단한 금 매입을 6개월 만에 재개했습니다.
중국의 금 보유량은 지난해 2279t으로 2000년 대비 3배 이상 늘었습니다. 같은 기간 러시아 금 보유량도 422t에서 2322t으로 증가했습니다.
지난해 금을 가장 많이 매수한 나라는 뜻밖의 나라, 폴란드입니다. 작년 90t을 사들였습니다. 폴란드는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 이후 안전자산 확보를 위해 금을 공격적으로 매입하고 있습니다. 폴란드는 러시아의 동맹국 벨라루스와 국경을 맞대고 있어 유럽에서 러시아의 위협에 가장 노출된 국가로 꼽힙니다. 아담 글라핀스키 폴란드 중앙은행 총재는 “금은 경제를 재앙적 사건으로부터 보호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기간 폴란드의 금 보유량 순위는 세계 23위에서 15위로 뛰었습니다.
수키 쿠퍼 스탠다드차타드은행 귀금속 담당 애널리스트는 “금 ETF를 통해 강한 금 수요가 이어지고 있다”며 “여기에 각국 중앙은행의 지속적인 금 매입, 지정학적 불안, 관세 정책 변화 등 요인이 금 가격을 계속해서 자극하는 상황”이라고 진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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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엽 기자 insi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