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교 통상교섭본부장이 14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한국은 미국 관세의 4배' 발언과 관련, 이를 근거로 상호관세가 고려되어서는 안 된다고 미국 통상 당국에 설명했다고 밝혔다.
정 본부장은 이날 워싱턴DC 주미한국대사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의 면담 내용에 대해 이같이 설명했다.
한국과 미국은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상대국 수입품에 거의 관세를 부과하지 않아 평균 관세율이 0%대이다.
미국 측은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지 않고 있는데, 공개된 자료들로 최대한 추정해 보면, 지난달 로이터 통신이 세계무역기구(WTO) 회원국끼리 매기는 평균 관세인 최혜국(MFN)대우 세율을 근거로 했을 가능성이 높다.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13.4%, 미국은 3.3%이지만, 한미 양국은 FTA에 따라 실효 관세율은 0%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명백한 오류라는 점을 강조했다는 게 정부 고위 당국자의 설명이다.
이날 한미 양국 통상 당국 수장 간 면담은 이날 오전 약 90분간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 본부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지난 미 의회 연설에서 '한국은 미국 관세의 4배' 발언에 대해 양측 인식차가 있는 부분에 대해 사실관계를 정확히 설명하고, 이를 근거로 상호관세가 고려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미국 측도 한미 FTA에 따라 양측 관세는 0%에 가까운 수준임을 인식하고 있었다"면서 포괄적 경제협력 틀로서의 한미 FTA 유용성에 대해서도 공감했다"라고 했다.
정 본부장은 "이번 협의를 통해 상호관세를 비롯한 미국 정부의 보호무역 조치와 관련해 보다 구체적인 동향을 파악할 수 있었다"면서 "오는 4월 2일에 예정대로 상호관세가 부과된다는 전제하에 우리에 대한 관세 면제 또는 적어도 주요국들에 비해 비차별적 대우를 해 달라고 요청했다"라고 밝혔다.
이어 "이번 면담 계기에 우리 측은 FTA를 통해 관세뿐만 아니라 미국 측이 문제를 제기하는 우리의 비관세조치도 상당 수준으로 해소되거나 관리되고 있으며, 양국 간 교역이 양적, 질적으로 확대되어 왔음을 적극 설명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 측도 한미 FTA에 따라 양측 관세는 0%에 가까운 수준임을 인식하고 있었다"라면서 "포괄적 경제협력 틀로서의 한미 FTA의 유용성에 공감하며, 관세 조치 등에 대한 실무 협의를 지속해 합리적이고 상호 호혜적인 진전방안을 모색하기로 합의했다"라고 밝혔다.
이달 12일부터 25% 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한 철강과 관련, 정 본부장은 "우리 철강 수출이 미국의 산업안보에 위협이 되지 않으며, 오히려 미국에서 생산이 부족한 품목의 공급 등을 통해 공급망 안정화와 하방산업 경쟁력에 기여하고 있음을 설명했다"면서 "한국 철강 관세 면제 필요성을 전달했다"라고 말했다.
특히 이번 면담에서 중국이 한국을 대미 우회 수출 통로로 삼을 수 있다는 우려를 미국 측이 표한 것으로 전해진다.
정부 고위당국자는 "중국산의 한국 우회 수출은 큰 틀에서 협의가 있었고, 미국으로서는 중국산 물품의 우회 수출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의미의 발언이 있었다"라고 전했다.
이어 "한국이 미국으로 수출하는 철강은 원소재가 중국산이 아니라는 점을 일일이 검사하고 있고 이를 인증해 미국으로 수출하고 있다는 점을 자세하고 명확하게 설명했다"라고 부연했다.
이날 정 본부장은 "한국은 경제안보, 무역통상, 산업에너지 등 전 분야에 걸쳐 미국 신행정부 정책방향을 실현하는 데 가장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있는 국가이며 대미 투자를 통해 미국 경제에 크게 기여 중임을 강조했다"라고 했다.
무역수지 불균형에 대한 미국 측 우려에 대해서는 "대미 투자에 따른 현지 생산 확대, 에너지 수입 확대 등을 통한 양국 간 교역 불균형 문제가 점진적으로 완화할 수 있을 것임을 설명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 정부는 이번 방미에서 구축한 한-미 통상당국 간 신뢰관계를 바탕으로 관세 조치를 포함한 주요 현안에 대해 우리 입장을 최대한 반영하고 기업이 직면하는 불확실성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대응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정 본부장은 그리어 대표 외에도 앤드류 김 상원의원(민주, 뉴저지)과 만나 한미 간 협력 심화 방안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 포스코, 현대제철 등 미국에 진출한 철강 업계와도 간담회를 관세 대응 전략과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또 허드슨 연구소 및 현지 로펌 등 전문가와도 만나 미 행정부의 경제 통상 분야 정책 방향을 살펴보고, 조선, 반도체, 에너지 등 핵심 분야를 축으로 한-미 협력 강화에 관한 제언을 청취했다.
한편 한국의 농산물 수입 제한에 대해서는 미국 측이 언급했지만, 30개월 이상 연령의 미국산 소고기의 한국 측 수입제한을 특정해서는 언급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최수진 한경닷컴 기자 naiv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