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주택담보대출의 최대한도를 6억원으로 제한하고 대출 만기도 30년 이내로 축소하는 등 전례 없는 대출 규제(6·27 부동산 대책)를 내놓으면서 부동산 시장의 매수·매도 움직임이 일시 정지했다. 당장 대출받아 주택을 매수하려던 수요자는 계약금을 배상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고, 매도자 역시 매수 문의가 끊기면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여기에 은행은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높이고 정부가 추가 대책 가능성을 내비치면서 전문가들은 “현금을 동원할 수 있는 일부를 제외하면 당분간 시장 상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반응이다.
연소득 2억원도 대출은 ‘6억’
5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27일 정부가 내놓은 대출 규제 이후 서울에서 부동산 거래가 가장 활발했던 강남과 서초, 송파 등 강남 3구와 ‘한강 벨트’로 불리던 마포·용산·성동 내 아파트 거래가 끊기다시피 감소했다. 성동구의 한 공인중개 대표는 “대출 규제가 적용된 지난달 28일 이후 매수 문의가 단 한 건 있었다”며 “그마저도 대출받지 않아도 되는 현금 부자였고, 대출받아야 하는 대부분의 매수자가 매입 계획을 포기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번 대책으로 실제 아파트 매수자가 받을 수 있는 주택담보대출 한도는 최대 절반 이상 줄었다. 연소득 1억원인 차주가 수도권 내 10억원 아파트를 구매할 때 기존엔 6억9800만원을 대출받을 수 있었지만, 대출 규제 강화 후 한도가 9800만원 줄어들었다. 고소득자가 고가 아파트를 매수할 땐 영향이 더 크다. 연소득이 2억원인 차주가 20억원 가격의 주택을 매수할 때 기존 13억9600만원이었던 대출 한도가 7억9600만원 줄어든 6억원으로 제한된다.
일선 중개업계에선 고소득자의 매수세가 강했던 한강 벨트 단지가 가장 큰 타격을 받고 있다고 보고 있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성동구의 아파트 평균 시세는 16억3975만원이다. 기존에는 고소득자의 경우 LTV(담보인정비율) 70%를 적용받아 최대 11억4783만원의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 정부의 조치로 대출 한도가 6억원으로 줄어들면서 아파트 매수를 위해 필요한 현금은 최소 10억3975만원까지 늘었다.
전문가들은 중저가 주택을 희망하는 서민층도 이번 대책으로 주택 구매가 어려워졌다고 평가한다. 양지영 신한 프리미어 패스파인더 전문위원은 “소득이 낮은 이들은 6억원이라는 한도에 도달하기 어렵다”며 “중저가 주택을 희망하는 계층은 소득 요건과 한도 양쪽에서 발이 묶이며 주택 매수에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자금조달 계획 신중해야”
대출 규제 이후 매수자의 계약 취소를 접한 공인중개사는 “당분간 매수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서울 강남구의 한 공인중개 대표는 “6억원 제한 이후에 대출받으려던 예비 매수자가 높은 이자와 까다로워진 조건에 매수를 포기한 사례를 봤다”며 “보수적으로 대출 계획을 잡으면서 매수엔 신중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했다.
현금 여력이 충분한 매수자라면 집주인 중 상급지 갈아타기를 위해 매도 호가를 낮추는 경우를 노려볼 만하다는 조언도 있다. 마포구의 공인중개 관계자는 “기존 대출이 없던 집주인 중 35억원 상당의 아파트를 33억원에 내놓은 경우가 있다”며 “일시적으로 저가 매물이 나온 사이에 갈아타기 하려는 수요가 있어 이를 노려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시장 상황에 따라 추가 규제를 내놓을 수 있다고 예고하면서 시장 불안은 더 커지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3일 기자회견에서 “최근의 대출 규제는 맛보기에 불과하다”며 추가 대책이 나올 수 있음을 언급했다. 업계에선 한강 벨트 등을 대상으로 토지거래허가구역을 추가 지정하는 방안과 수도권까지 규제지역을 확대하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수도권 내 신규 분양단지 청약을 생각 중인 신혼부부나 청년이라면 자금조달 계획에 신중해야 한다. 앞으로 공고될 분양 단지는 잔금 대출 한도가 6억원으로 제한되기 때문이다. 분양업계 관계자는 “내년 수도권 분양 단지는 지금보다 가격이 더 오를 가능성이 높고 하반기 공급 부족 속에 청약 경쟁률도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면서도 “잔금대출 규모를 생각하지 않으면 입주를 앞두고 아파트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어 자금 계획을 따져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유오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