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장원재]장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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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교포 야구 선수 장훈은 2년 전 지팡이를 짚고 도쿄돔에서 시구를 했다. 허리 수술로 몸이 불편했지만, 평생의 라이벌이자 친구였던 ‘일본 야구의 전설’ 오 사다하루(왕정치)의 기념 경기를 맞아 그라운드에 선 것이다. “기어서라도 오려 했다”는 게 장훈의 말이었다. 이를 두고 일본 언론은 “의리를 중시하고 지기 싫어하는 그답다”고 평가했다. “일본 프로야구사에 불멸의 발자취를 남긴” 장훈이 9일 세상을 떠났다. 향년 86세. ▷1940년 히로시마에서 태어난 그는 가난과 장애, 재일 한국인이란 어려움을 오직 실력으로 이겨냈다. 네 살 때는 화재로 약지와 새끼손가락이 붙고 엄지와 검지가 굽었다. 오른손잡이였던 그가 왼손 타자가 된 것도 이 때문이었다. 배트를 잡고 글러브를 끼기도 불편한 손으로 그는 일본 프로야구에서 23년 동안 3085개의 안타를 때렸다. 45년째 깨지지 않는 최다 안타 기록이다. ▷프로팀에 입단할 때는 외국인 쿼터 때문에 구단주가 “양자로 입양돼 귀화하라”고 제안했다. 하지만 “조국을 팔아 야구 선수가 될 필요는 없다”는 어머니 말을 듣고 거절한 뒤 한국 국적으로 프로 무대에 섰다. 이후 역대 한 시즌 최고 타율(0.383) 기록을 세웠고, 타격왕 타이틀을 7번이나 차지했다. 은퇴할 때까지 손이 피에 젖도록 매일 300개 이상의 배팅 연습을 했다는 얘기는 유명하다. ▷프로 선수 시절 감독에게 불만이 있으면 숙소의 유리 창문을 배트로 모두 부술 정도로 다혈질이었다. 게다가 재일 한국인 차별이 심하던 시절이라 안티 팬도 많았다. 타석에 들어서면 관중석에서 “조선으로 돌아가라” “마늘 냄새가 난다”는 야유가 쏟아졌다. 그는 그때마다 “나를 응원하는 소리”라며 이를 악물었다. 그를 오래 담당했던 한 일본 기자는 “장훈에게는 세상의 불합리에 야구의 힘으로 당당히 맞서는 기백이 있었다”고 돌이켰다. ▷1981년 은퇴 후에는 이듬해 출범한 한국 프로야구의 기틀을 잡는 데 힘을 보탰다. 지난달 세상을 떠난 ‘불멸의 4할 타자’ 백인천 전 감독을 MBC 선수 겸 감독으로 추천한 것도 그였다. 한국 야구 후배들에게도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일본 진출 후 슬럼프에 빠졌던 이승엽에게는 “내리찍는 스윙을 하라”고 당부해 타격감을 되찾는 데 도움을 줬다. ▷그는 자신의 불운한 과거를 입에 잘 올리지 않았지만, 어쩌다 히로시마 원폭으로 잃은 큰누나 이야기가 나오면 “피부가 하얗고 예뻤다”며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은퇴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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