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하우스 미술관장 구정순
고가의 미술·디자인 작품이 있다니 가까이하기 어려울 것 같지만, 이 집 문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습니다. 그 안엔 비싼 작품만 있는 게 아니라 유쾌한 색채의 플라스틱 디자인도 있고, 세월의 흔적이 담긴 낡은 물건도 있죠.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16년 7월 1일 개막식도 없이 문을 열었지만 입소문으로 유명해진 집 같은 미술관, ‘구하우스’의 구정순 관장을 2일 만났습니다.
질문을 만드는 예술품의 집
구하우스는 실제로 구 관장이 살고 있는 집이기도 합니다. 벽난로 옆에서 책을 볼 수 있는 거실도 있고, 마당에는 온갖 채소가 자라는 텃밭도 있죠. 영리한 스탠더드 푸들, ‘융’은 미술관 오픈 시간이 되면 입구에 앉아 관객과 인사합니다. 작품 감상을 마치고 정원으로 나오면 공놀이하자고 다가오기도 하죠.
“어린 시절 어떤 분이 제 등을 쓰다듬으며 ‘자네는 돈을 많이 벌고 자선 사업을 하겠어’ 했는데, 그 말이 이상하게 기억에 남았어요. 정말로 사업으로 큰돈을 벌었고, 마흔 살 무렵 ‘미술관을 해야겠다’ 생각했죠.”
구 관장은 1세대 그래픽 디자이너로 KB국민은행과 CGV, COEX 등 유명한 기업 로고를 탄생시켰습니다. 성공한 사업가의 미술품 수집이 뭐가 특별하냐고 할 수도 있지만, 구하우스 소장품엔 독특한 면이 있습니다. 구 관장은 ‘젊은 관객이 보고 질문할 수 있는 작품’이 소장 기준이었다고 설명합니다.
“‘이것도 작품이야? 이건 왜 예술이지?’ 생각할 수 있는, 스토리가 있거나 콘셉트가 강한 작품을 좋아해요. 그래서 저는 단색화가 하나도 재미가 없는 사람이죠. 전문가는 좋아할지 모르겠지만, 보는 사람에게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고 생각하진 않거든요.” 이런 생각 때문에 작품 옆에는 아주 자세한 설명이 적혀 있습니다. 미술관 입구 쪽 복도에는 수십 개의 의자가 전시돼 있는데, 모두 검은색입니다. 색을 통일해 의자의 선이나 소재에 따라 달라지는 감각을 비교해 보자는 의도입니다.돈, 어떻게 쓸 것인가?
최근 구 관장은 ‘백만장자’로 미디어의 조명을 받았습니다. 정작 본인은 자신이 나온 방송을 보지 못할 정도로 노출을 즐기지 않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한국 사회도 이젠 ‘돈을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느껴 방송 출연에 응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구하우스는 유지하는 데 매달 수천만 원의 비용이 듭니다. 구 관장은 “누군가는 이것을 ‘적자’라고 하겠지만, 금전적 가치를 넘어 발생하는 무형의 여러 가치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 가치란 구하우스를 찾은 관객들이 집으로 가져가는 저마다의 질문, 그리고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오랜 시간 맺는 조용하고도 느슨한 ‘관계’입니다.
구 관장은 부를 과시하기 위해, 또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소장하는 사치품과 예술품은 다르다고 말합니다.
“제 컬렉션에는 유명하고 잘나가는 작품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작가 이름도 모르고 사는 경우도 많아요. 그래서 때로는 컬렉션을 잘못한 것도 있지만 앞으로도 그 실수는 할 거예요. 재테크가 아니니까 실패라고 할 수 없죠.”그러면서 ‘돈 벌 방법’만 이야기하는 작금의 분위기가 과연 맞는지 의문이 든다고 합니다.
“주변에 나이 들어 안정적인 부를 갖게 된 사람이 많은데, 이 나이에도 ‘어떻게 하면 돈을 더 벌까’를 얘기하고 자존심을 버려가며 돈을 벌기 위한 선택을 하는 걸 보며 아쉬울 때가 있어요. 이런 분위기가 과연 옳은가 하는 생각이 든 거죠.”
이런 구 관장의 마인드엔 아버지의 영향도 있습니다. 경남 마산에서 태어나 평생을 그곳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며 일종의 장인 정신과 원칙적인 삶을 중요시했다고 합니다. 돈을 밝혀서는 안 된다고 여겼던 아버지는 팔순 잔치에 초대받은 손님들이 준 봉투를 모두 감사하다 인사만 하고 돌려주기도 했다고요. 어린 조카가 ‘할아버지 차가 너무 낡아서 용돈으로 사드리고 싶다’고 할 정도로 허름한 차를 탔지만, 아버지는 그저 “차는 잘 움직이면 된다”고 했답니다.
이런 맥락에서 구하우스는 구 관장이 디자이너로 수십 년간 살아오면서 갈고닦은 취향과 정체성을 통해 세상과 관계 맺는 공간으로 보입니다. 누구나 올 수 있고, 저마다의 질문을 가질 수 있으며, 그 질문이 하나의 ‘의미’가 된다면 얼마든지 함께할 수 있는. 1일 오래된 인연들을 초대해 조용히 10주년 행사를 치른 구하우스의 ‘앞으로 10년’은 어떻게 펼쳐질까요? 구 관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10년 동안 제가 가장 많이 한 일은? 바로 ‘풀 뽑기’예요. 그냥 집에서 소장품을 보여주면 된다고 생각하며 시작한 미술관이지만 이제는 책임감을 느낍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를 발굴하고, 그 작품으로 관객과 질문을 이어나가는 공간이 된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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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 문화부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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